아마 한겨레에서 김규항 씨와 진중권 씨가 설전을 벌였나보다. 김규항 씨가 진중권 교수를 진보신당 당적을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진중권 교수가 김규항 씨를 좌파바바리맨으로 놀리고 툭탁툭탁 ...
이 와중에 진중권 교수가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가지고 대충 이런 글을 썼단다(이건 이택광 교수 블로그에서 보고 링크를 쫓아가서 읽어봤다).
유물론적 신학에 대하여
근데 진중권 교수가 해석하는 바에 따르면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기껏해야 칸트의 규제적 관념(regulative idea)의 역할 정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그 이상적 상황에 끊임 없이 접근할 수 있지만, 실제로 거기에 도달할 수는 없는, 그런 방향 제시적 역할만을 하는 관념. 더 나쁜 것은 칸트의 규제적 관념과 달리 진중권 교수에게서 그것은 심지어 이 자리에서 실현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으로 금지되고 있다는 것이다(칸트에게 있어서 규제적 관념의 실현은 물론 객관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실현을 위한 '노력'의 금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 ). 그래서 진중권 교수에 따르면 유토피아란 있는 듯 없는 듯 대충 어디 짱박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벤야민의 '난장이' 처럼 . . .?
이 때문에, 진중권 교수가 보기에 '자신의 빨간 유토피아적 이상을 사람들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김규항 씨는 노출증에 걸린 좌파바바리맨에 불과하다. 90년대에 그렇게 유행하던 포스트모던적 반성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은 채 고고하게 80년대식 빨간 책들을 아직꺼정 골방에서 붙들고 앉아서 탐독하다가 가끔씩 사람들 앞에 나타나 자신의 바바리를 펼치고 그 흉칙한 빨간 것을 들이미는....
물론 이 글을 읽고 나서 내가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실제로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가 주장하는 것은 칸트의 규제적 관념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 되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역사철학테제}에서 벤야민은 어떤 미래의 유토피아를 향해 우리가 끊임없이 전진해 나가고 있다는 식의 '진보'의 관념을 비판하면서, 바로 그렇게 우리가 (진중권 교수가 말하듯) 이상향을 향해 지금 조그만한 '구체적인' 개량적 실천들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그러한 개량적이고 목적론적인 진보적 시간관념의 '메시아적 중단'을 역설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벤야민은 과거에 실패한 혁명에 대한 트라우마적 기억을 (다르게) 반복하기 위한, 과거를 향한 호랑이의 도약을 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 않던가? 바로 그러한 한에서, 그는 이를 위해 우리가 메시아적인 신학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던가? 유물론자인 우리가 여전히 이러한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유물론적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한 판 승부를 벌여볼만 하지 않은가 하고 묻지 않던가?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알기로 지젝도 유사한 해석을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과거 80년대의 실패한 붉은 혁명의 기억의 편린을 붙잡고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는 김규항 씨야말로 어떻게 보면 이러한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김규항 씨의 언어가 좀 더 세련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하지만 또한 그의 오래된 투박한 용어법이 때로는 신선하게 들릴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단순한 좌파바바리맨의 홀딱쇼로 놀리는 것이 도대체 지금 어떤 진지함을 가지고 있는 비판인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진겔루스 노부스의 '베냐민'적 무식함이라니! 그것을 옹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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