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루소와 헤겔: 의지(意志)의 철학

marxpino 2022. 1. 18. 15:03

이 글은 2000년대 초반(아마 2003~4년 경)에 썼던 글이다. 원래 영어로 쓴 것을 나중에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출판된 적은 없다. 아마 이대로 출판하지는 않을 거 같다. 

이 글을 여기 올리는 이유는 현재 진행 중인 철학오피스 세미나 교재인 아즈마 히로키의 <관광객의 철학> 2장에서 루소-칸트와 헤겔 간의 쟁점에 대한 아즈마의 논의가 문제가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즈마는 헤겔을 단순히 국가주의자 및 내셔널리스트로 몰아붙이고 있고 게다가 칼 슈미트로 가는 길을 닦았다는 식으로 비난하는데, 이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리바르가 헤겔의 인륜(지틀리히카이트)을 시빌리테의 정치의 가장 중요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는 것은 어떤 견지에서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문제 또는 모순이 여전히 있는 것은 어떤 점에서 그런지 복잡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즈마의 루소에 대한 이해도 나로서는 그리 동의가 안 된다. 아직 읽어나가는 중이므로 전체 저서를 다 읽고 필요하다면 글을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서평 형식이든, 논문 형식이든 간에. 

물론 이것이 아즈마의 책에 대한 단순한 기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루소와 헤겔: 의지(意志)의 철학

 

  최 원

 

 

이 짧은 글은 에티엔 발리바르의 「세 가지 정치의 개념: 해방, 변혁, 씨빌리테」를 읽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쓰여진 것이다.{주1/ Étienne Balibar, "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É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é", La crainte des masses[대중들의 공포], Paris: Éd. Galilée, 1997} 루소와 헤겔 이외에도 맑스, 푸코, 들뢰즈/가타리, 벵슬라마의 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이 글은 단지 그 준비 작업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의지의 철학’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루소 이전에 “의지”는 죄의 원천(성 아우구스티누스)이나 혹은 인식론적 오류의 원천(데카르트)으로 이해되는 등 철학 속에서 부정적인 자리만을 차지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인간의 의지를 전면에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보편성의 구조를 부여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볼 수 있다. 칸트, 헤겔, 맑스 등(그 외에도 많은 이론가들이 있을 것이다)의 정치적, 철학적 이론들은 루소의 그와 같은 의지의 철학이 갖는 문제점들에 대해 답하기 위한 그 만큼의 시도들이다. 나는 이 글에서 루소의 문제설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본 후, 그것을 보충하거나 교정하려는 헤겔의 시도를 고찰해 보겠다.  

 

 

1. 루소의 사회계약 이론

 

『사회계약론』 1편, 6장에서 루소는 다음과 같이 쓴다.{주2/ Rousseau, The Social Contract or Principles of Political Right, in The Essential Rousseau, tr. Lowell Bair, New York: Penguin, 1983. 이후 인용 시 괄호 안에 편수와 장수만을 표시한다.} “나는 자연상태에서의 인간 생존에 대한 장애물들이 그 상태에서 각 개인이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소유하고 있는 힘에 의해서는 극복될 수 없는 저항을 갖는 지점에 인간이 이르렀다고 가정한다.” 이는 루소가 그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상황, 즉 힘에 의거한 문명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인간이 도달한, 끔찍한 불평등과 폭력이 지배하는 상황이다. 루소는 사회계약을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치료제”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누렸으리라 가정되는 자유와 평등의 단순한 회복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계약의 행위를 해결책으로 요구하게 되는 그 가공할 상황이 문명의 자연에 대한 완전한 과잉으로 특징지어지고(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은 “예속을 피해, 그리고 자신의 목을 겨누는 칼을 피해 도망칠 수 있는 곳을 세상 안에서 더 이상 찾을”{주3/ Rousseau, Discourse on the Origin and Basis of Inequality Among Men, in The Essential Rousseau, p. 186.} 수 없게 된다―즉, 자연 안에 문명의 질병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 또 그러한 상황이 루소에게는 자연상태의 반대가 아니라 그것의 반대편에서 발견된 또 다른 자연상태로 인식되는 만큼 루소에게 자연으로의 복귀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대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문제는 문명의 거부가 아니라 그것의 자연상태에 대한 극복의 불충분함, 특히 힘이라는 그 수단의 부적절함을 비판하고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문명이라는 완전히 새롭고 변별되는 개념을 소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루소는 자연주의자가 아니다. 반대로, 그의 사회계약에 관한 이론은, 그가 다양한 형식의 정부를 논의하면서 자연적 요소들을 참조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반(反)-자연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사회계약론』의 처음부터 분명하다. “사회적 질서는 다른 모든 질서들의 기초로 봉사하는 신성한 권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자연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따라서 사회적 합의들에 기초한다.” (1편, 1장) 어떤 종류의 합의들이 문제인가? 여기서 루소의 반-자연주의는 아직 자연주의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로크의 관념을 넘어간다. 다수의 투표에 기반한 모든 합의들은 바로 그 다수결의 원칙을 다른 모든 합의들의 원칙으로 만드는 최초의 만장일치의 합의를 참조한다. 단 한 사람의 제외도 인민(a people)을 인민으로 구성하는 것의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기원적 합의의 행위(act)는 완전한 인간의 행위이고 완전한 인위적(artificial) 행위이다. 이 행위는 인간 의지(意志)에 외적인 그 무엇도 합의의 성사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배제할 뿐 아니라, 그것의 내부성 안에서 인간 의지의 구성으로부터의 그 어떤 개인들이나 집단들의 배제도 마찬가지로 배제한다.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그것은 “일반 의지(the general will)”의 절대적 단일성을 달성한다. 인민은 “공통의 자아moi commun”가 되고, 루소가 심지어 하나의 “정치적 기계”라고까지 부르는 “집단적이고 인위적인 육체(body)”가 된다. 요컨대, 우리는 자연주의의 반대 극단에 있다. 하지만, 이것이 루소가 문화주의자나 전통주의자라는 말은 아니다. 사회계약을 요구하는 상황이 문화에 의해 오염된 자연 상태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만큼, 문화적이거나 전통적인 권위들은 정치체(the body politic)의 구성에 그 어떤 긍정적인 것도 가져다 줄 수 없다. 루소는 자연주의와 문화주의 양자 모두에 반해서 간다.

 

“인민을 인민이게 하는”(1편 5장) 최초의 만장일치의 사회적 합의는 사적 인간과 공적 인간이라는 개인의 두 측면을 구별함과 동시에 결합시킨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자신의 권리들을 “양도”(alienate)하는 실제적으로 구별되는 사회계약의 두 당사자가 존재하자마자 예속의 관계가 발생한다. 이러한 결과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권리들을 양도하는 주체와 그것들을 받는 주체의 구별을 동일한 인격체 내에 도입하는 것이다. 루소는 “전체에 자신을 양도하면서 각자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양도하지 않는다”(1편 6장)라고 쓴다. 동일한 사람이 사적 개인의 측면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들을 양도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전체의 측면에서 받는다. 이러한 행위는 “말하자면, 자기자신과 계약하는”(1편 7장) 행위이다. 그리하여, 개인에 의한 (진정, 모든 개인에 의한) 권리의 전체에로의 총체적인 양도는 자신을 사적 인격체로부터 공적 인격체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놀랍고 심오한 정식화이다. 루소 이전의 모든 정치적 이론들은 예외 없이 권리를 그 권리를 소유하지 못한 자에 대한 특권으로 해석해 왔다. 한 편, 루소는 개인들 사이의 모든 종류의 차별을 폐지할 필요성에 대해 주장함으로써 권리를 단지 자유뿐 아니라 평등 위에 기초시킨다. 즉, 그는 자유와 평등의 “실천적 동일성”{주4/ 에티엔 발리바르는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을 독해하면서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동일성을 “평등-자유(l'égaliberté)”라는 신조어로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최초의 표현이 이미 루소에게서 부인될 수 없는 방식으로 발견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발리바르가 “변혁”, “씨빌리테(civilité)”에 짝을 이루는 “해방”의 정치의 주요한 이론가로서 루소를 지목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 이화숙, 김인식 역, 『맑스주의의 역사』, 윤소영 편, 민맥 및 Balibar, “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É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é”를 참조하라. }을 선언한다: “평등,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어떤 자유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2편 11장). 즉,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이 생기자마자 권리는 특권이 되고 자유는 사라진다.

그러나 사회계약의 루소적 모델 안에는 하나의 논리적 순환이 작동하고 있다.{주5/ 루소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이러한 논리적 순환에 대한 논의는 발리바르의 설명을 참조한다. Balibar, "Ce qui fait qu‘un peuple est un peuple―Rousseau et Kant", La crainte des masses, pp. 103-04. 그러나 발리바르의 논의 자체는 알튀세르의 루소에 대한 독해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Louis Althusser, "Rousseau: The Social Contract (The Discrepancies)", Montesquieu, Rousseau, Hegel and Marx, tr. by Ben Brewster, London: NLB, 1972를 참조하라.}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계약의] 이러한 항들은 적절하게 이해된다면 모두 하나의 항, 즉 자신의 모든 권리들을 동반한 연합인 각자의 전체 공동체로의 완전한 양도라는 항으로 환원될 수 있다”(1편 6장). 하지만 문제는 “공동체”란 사회 협약의 결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협약 이전에는 스스로의 권리들을 동반한 개인들의 양도를 받을 만큼 충분히 “일반적인”, 이미 설립된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루소는 일반 의지와 사적 의지의 차이를 논의하면서, 각각의 개인은 일반 의지에 반하는 스스로의 고유한 의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의지에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그렇게 하도록 강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부터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그가 자유롭도록 강제되리라”(1편 7장). 루소가 여기서 “강제”, 즉 “힘”(for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주목하자. 물론 이러한 “힘”은 그 어떤 특수성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연상태에 존재했던 힘과는 다르다. 그러나, 힘은 오직 사회계약 이후에만 일반적이 된다. 사회계약 이전에는 여전히 미래에 도래해야 할 것으로서의 일반의지의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가 이미 봤듯이 사회계약 이전의 상황은 총체적인 불평등과 폭력이 지배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사회계약의 실현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없다. 

 

이러한 곤란이 루소를 “일반 이익(the general interest)”의 문제설정으로 인도한다. 일반 의지를 “모두의 의지(the will of all)”와 구별(모두의 의지는 개별 의지의 단순한 산술적 합이지만 일반 의지는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공동체 전체를 진정으로 대표하는 의지로 인식된다)한 뒤, 루소는 “의지를 일반적이게 만드는 것은 연루된 개인들의 숫자가 아니라 그들을 통일시키는 일반 이익이다”(2편, 4장)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는 이익을 일반적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일반 이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이익들 그 자체가 서로서로 진실로 양립가능해야만 한다. 이로부터 다시 평등의 필요성이 따라나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형식적 평등(이를테면, 평등한 선거의 권리와 같은 법 앞에서의 평등)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평등이 진정으로 문제가 된다. 비록 루소가 “평등”이라는 용어는 모든 사람이 똑 같은 권력, 똑 같은 재산을 가져야만 한다는 뜻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민도 또 다른 시민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여서는 안되고 스스로를 팔도록 강제될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부자와 빈자의 차이, 즉 계급적 차이가 그 안에서 유지되어야만 하는 어떤 한계가 요구되는 것이다. 또 다시, 무한한 논리적 퇴행이다: 사회 안에서 평등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일이고, 정부는 일반 의지를 전제하고, 일반 의지는 일반 이익을, 일반 이익은 평등을 전제한다, 등등. 

루소가 이러한 논리적 순환과 단절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교육과 계몽이다. 이것이 바로 왜 그가 자신의 텍스트 안에 도덕에 대한 언급들을 삽입하기를 멈추지 않는지의 이유이고, 이는 “시민적 자유”와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도덕적 자유”에 대한 논의(1편 8장)로부터 개인들을 그들의 이성에 따르도록 만드는 “공적 계몽”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2편 6장), 사회체를 붕괴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여론”에 대한 “네 번째 종류의 법”(2편 12장)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루소가 인민의 구성과 보존을 위해 준비하는 이러한 교육과 계몽의 수단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교육시키는 자와 교육받는 자 사이의 분할을 인민의 한 복판에 도입할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들(이것 없이 교육은 불가능하다)을 다시 사회계약 자체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루소는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명백히 의식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의 언어가 아닌 자기 자신의 언어로 말하려고 한다면, 그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게 만들 수 없다 […] 형성의 과정 안에 있는 인민이 건전한 정치적 원리들을 가치 있게 여기고 치국책의 근원적인 규범들을 따르기 위해서는 효과가 원인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제도들에 의해 생산될 수 있는 사회적 정신이 그들의 창조에 거해야 하고, 법이 실존하기 전에 인간들은 그 똑같은 법의 수단에 의해 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입법자는 힘도 이성(reasoning)도 사용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또 다른 종류의 권위에 의존해야 한다 […] 이것이 모든 시대에 걸쳐 민족들을 기초한 자들로 하여금 신적 개입(divine intervention)에 호소하고 자신들의 지혜를 신들에게 귀속시키도록 강제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인민들은 국가의 법에 마치 자연의 법인양 승복하면서 […] 자유롭게 순종하고 공적 복지의 굴레를 순순히 참아낼 것이다. (2편 7장, 강조는 인용자)

 

“법이 실존하기 전에 인간들은 그 똑같은 법의 수단에 의해 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어야만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정확히 『사회계약론』의 목적론이 갖는 역설의 핵심이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정확히 루소가 “유다법”과 “이쉬마엘 자손의 법”, 즉 과거와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오래된 형태들로 돌아가는 곳이다. 이는 우연적인 결과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힘과 이성이 더 이상 사용 가능하지 않다면, 남아있는 유일한 수단은 사회적 관계들의 “씨멘트”(알튀세르)로서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회계약론』이 그 모든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시민 종교(civil religion)”에 관한 장으로 끝맺게 되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이러한 시민 종교는 인민에게 두 가지 권위(국가와 교회)를 부과함으로써 그들을 혼란시키는 “성직자의 종교”로부터 구별되고 국가의 업무들에 간섭하지 않는 “인간의 종교”로부터 구별된다. 종교적 신앙의 기능을 정치체의 구성에 연결시키면서 시민으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자신의 의무들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들고 그에게 공동체로의 특별한 소속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시민 종교이다. 중요한 점은 루소에게 있어 시민 종교를 갖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도 그것들[시민 종교들]을 믿게 강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주권자(the sovereign)는 믿지 않는 자를 국가로부터 추방할 수 있다. 불경건성이 아니라 반사회적이라는 것을 이유로, 법과 정의를 진실되게 사랑하거나 자신의 의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그를 추방할 필요가 있다”(4편 8장). 그렇다면, 시민 종교의 이데올로기를 사회계약에 대한 루소의 구상에 그토록 필연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정치의 자율성을 뒤흔드는 현실에서의 계급들의 특수한 이해의 실존이다. 즉, 경제적 과정이라는 정치의 타자의 실존이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우리는 맑스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러나 맑스 이전에 헤겔이 있다. 그리고 헤겔의 『법철학』{주6/ Hegel, Philosophy of Right, tr. T. M. Knox, New York: Oxford University, 1967. 이후 인용시 괄호 안에 절수만을 표시한다.}은 루소가 마주쳤던 그와 같은 문제에 답하려는 하나의 시도로 보여진다.

 

 

2. 헤겔의 권리의 철학

 

『법철학』에서 헤겔은 이렇게 쓴다.

 

이 개념의 탐구에 대한 루소의 기여가 갖는 장점은 의지를 국가의 원칙으로 설명함으로써 그가 그것의 형식과 내용 양자 모두를 위해 사고하는 원칙, 예컨대 사교적 본능이나 신성한 권위와 같이 [그것을] 형식으로서만 사고하는 원칙이 아니라 그 자신을 생각하는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루소는 나중에 피히테가 그랬듯이 개인적 의지로서의 결정적인 형식 내에서만 의지를 취하고, 보편적 의지를 의지 내의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요소로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적 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개인적 의지로부터 나오는 ‘일반’ 의지로서만 간주한다. 결과는 개인들의 국가 내에서의 통일을 하나의 계약으로 환원하고, 따라서 그들의 자의적인 의지들에 기초한 어떤 것으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 그리고 추상적인 추론(reasoning)은 그 지상권(majesty) 및 절대 권위와 함께 국가의 절대적으로 신성한 원칙을 파괴하는 논리적 추론(inference)을 끌어내는 것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결론들이 권력을 갖게 될 때, 그것들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위대한 현실적 국가 헌정의 전복과 모든 실존하는 주어진 소재(material)의 파괴 이후 오로지 순수 사고에 기초한 국가 헌정의 최초로부터의 완전한 재구성이라는 놀라운 광경을 허락했다. (§258, 강조는 인용자)

 

헤겔이 지적하듯이, 루소의 사회계약의 이론은 국가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데 있어 곤란들을 겪었다. 계급들의 심각한 균열이 사회 내로 도입되자마자 기존의 국가와 인민의 일반 의지 사이의 가시적인 틈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국가구성에 복무하는 일반 의지라는 동일한 원칙이 다시 국가에 대항한 그 사회의 특수한 분파(예컨대, 하위 계급)에 의한 봉기에 사용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요컨대, 루소의 사회계약의 이론 안에는 항상적인 내란이라는 위험한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헤겔은 국가의 형성 및 권리의 형성을 역사화한다.

헤겔에 따르면, 권리의 기초는 의지이고 자유는 의지의 실체다(§4). 이는 루소에게서와 거의 같다 (나는 ‘거의’라고 말했는데, 이는 우리가 이미 봤듯이 루소의 자유 개념은 즉각적으로 평등 개념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 양자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루소와 달리 헤겔은 의지가 권리의 기초라고 말하자마자 그것의 운동에 있어서의 특수한 계기들을 구별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의지는 세 가지 계기를 갖는다: 1) 어떤 결정성으로부터도 스스로를 추상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부정적 자유” (절대적 내부성), 2) “자아의 특수화”: 대상의 결정 혹은 선택 (절대적 외부성), 3) 앞의 두 계기들 간의 통일로서의 개인성으로의 “자아의 자기-결정” (외부화된 내부성, 혹은 객관화된 자아). 의지는 이러한 “부정의 부정”의 자기-복귀의 활동에 의해서만 하나의 의지가 된다.

그렇다면, 왜 의지의 운동을 이렇게 시간적으로 분절시킬 필요가 있는가? 이에 대한 주된 이유는 칸트의 ‘제약으로서의 권리’라는 개념에 대한 헤겔의 비판에서 가장 잘 발견될 수 있다. 권리에 관련해서 칸트가 제기하는 문제는 개인적인 자유들은 그것들이 갖는 자의적인 성격들 때문에 서로에 대해 파괴적이 되고 자발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칸트의 권리에 대한 놀라운 정의가 나온다: “권리는 자유에 장애가 되는 것에 대한 장애다.”(칸트의 『법철학』){주7/ 이에 관해서는 발리바르의 칸트에 대한 설명("Ce qui fait qu'un peuple est un peuple")을 참조하라.}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권리에 대한 칸트의 개념을 “추상적이고 외부적인 보편성의 관념”에 기반한 단순히 “부정적”인 정의라고 비판한다(§29).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헤겔은 이러한 오류의 본질적인 이유는 칸트가 루소의 의지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꿔 말해서, 권리에 대한 부정적 개념의 기원은 궁극적으로 루소 안에 있다는 것이다. 루소에게 있어 의지는 주로 절대적이거나 “합리적인 의지가 아닌 개별적인 인격체의 의지”로 고려되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합리적인 것은 언제나 그러한 개인적 의지에 대해 외부로부터 부과되는 제약으로서만 사고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29). 따라서, 이러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 헤겔은 의지를 자기 자신의 형성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 안에 이미 모든 외적 제약들을 흡수하고 그리하여 합리적 의지의 한층 높은 단계로 지양된 것으로 개념화시킨다. 현실적 의지는 합리적 의지다. 자의적 의지(Willkür)가 아니다. “주관성과 객관성의 모순을 폐기”하는 활동으로서 의지의 자기-복귀의 운동은 동시에 의지의 바로 그 자의성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권리가 제약이 아닌 “관념(Idea)으로서의 자유”로서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러한 운동을 통해서일 뿐이다.따라서, 헤겔의 법철학의 주요한 질문이 ‘어떻게 권리들로 하여금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가’라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주8/ 이것이 바로 헤겔의 씨빌리테의 문제설정이다.}

 

 

도덕적인 것 혹은 윤리적인 것과 권리가 충돌한다고 말할 때 문제의 그 권리는 단지 기초적이고 형식적인 추상적 인격의 권리이다 […] 도덕성, 윤리적 삶, 국가의 이익은 […] 오직 그것들이 권리들로서의 같은 곳에 모두 서있는 한에서만 서로 충돌할 수 있다 […] 하지만 동시에 충돌은 또 다른 계기를 포함한다. 즉 그것이 제약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두 권리들이 충돌한다면 하나는 다른 것에 종속된다는 사실이다.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인 것은 세계-정신의 권리 뿐이다. (§30)

 

사실, 윤리적 삶(Sittlichkeit)(이는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 혹은 합법적인 것과 비합법적인 것 사이의 구별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덕성(morality)과는 확연히 변별된다)이라는 헤겔의 문제설정은 개인들의 모든 자연적, 문화적, 종교적 소속들을 파괴하고 재구성하여 국가의 구체적인 보편성 하에서 상호적으로 양립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사회(혹은 헤겔적 용어로는 “정신”)의 이행적 과정에 관련된다. 그러므로, 국가 설립의 과정은 단순히 특수성들의 폐지가 아니다. 반대로, 국가는 특수성들을 자신 안으로 “흡수”해야만 한다. “정치적 실체로서의 국가의 근원적인 성격은 실체적인 통일성이다 […] 이러한 통일성 안에서 특수한 권력들과 그 활동들은 분해되지만 또 보존된다. 그것들은 보존되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 권력들의 권위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전체의 관념에 의해 규정된 질서와 범위의 것이라는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전체의 힘으로부터 그 권력들이 기원하고, 전체가 그들의 하나의 단일한 자아인 반면 그들은 전체의 유연한 손과 발이다.”(§276) 그리하여, 국가는 단지 그 특수한 권력들을 스스로에게 흡수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을 위계화하고 그 위에 특정한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단일한 자아”의 손발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국가가 된다. 따라서, 루소가 제안한 “공통의 자아moi commun”가 헤겔에게는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개인들의 동일성(identity)들의 “해체”(데리다)라는 기나긴 역사적 과정의 결과일 수 있을 뿐이다. 즉, 그것은 사회계약이라는 단 한번의 행위의 결과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그 특수한 권력들을 단순한 방식으로 억압할 수 없는가? 그것은 특수한 권력들이 국가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국가의 구성원들을 함께 묶어주는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들을 생산하고 또한 보존하는 그 특수한 권력들 없이는 국가 그 자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이 마찬가지로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보편성은 시민 사회 그 자체의 특수성으로부터 지양되어 나와야만 한다(「유태인의 질문」에서 맑스는 이를 교회와 국가 사이의 문제에 관한 헤겔의 논의에 기반해서 다시 설명한 바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보편 계급”의 문제설정으로 인도된다. 헤겔은 시민사회에 종별적인 노동분할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계급을 제시한다: 1) 실체적 혹은 즉자적 계급―농업 계급, 2) 반성적 혹은 형식적 계급―사업자 계급, 3) 보편 계급―시민 봉사자 계급(§202). 이중 보편 계급이란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으면서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 계급을 일컫는다(§205). 비록 보편 계급은 인민의 일부에 의해 구성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두 계급들과 달리 특수한 계급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대표자들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이 거의 형용모순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보편”과 “계급”이라는 두 개의 완전히 상반되는 용어들을 결합함으로써 행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대표’의 공존이라는 역설을 푸는 것이고 이로부터 그의 공화국 개념이 나온다. 그러나 질문들이 뒤따른다. ‘이 시민 봉사자 계급의 보편성의 궁극적 토대는 무엇인가?’ ‘국가가 그들에게 생계수단을 제공해준다는 사실, 즉 사적 노동으로부터 그들이 면제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헤겔은 이 문제를 국가의 “집행부”라는 질문을 논의하면서 다시 거론한다. 사실, 집행부의 대다수를 이루는 계급은 보편계급이다. 문제는 그러한 시민 봉사자 계급에게 부여된 권력 남용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헤겔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해결책은 이전의 것과 동일하다. 즉, 특수한 이해관계로부터의 재정적 자유. 그러나 헤겔 자신이 이러한 해결책의 불충분함을 인식하고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위계적인 조직화와 관직자의 소환가능성. 여전히 이러한 해결책은 충분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 위계제 안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의 부패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헤겔은 세 번째의 가장 심오한 해결책을 준다: “[권력 남용 방지를 보장하는 것은] 또한 [시민사회의] 사회들과 기업들(Corporation)에 주어진 권위 안에도 있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이는 시민 봉사자에게 부여된 권력 내로 주관적 변덕의 침투를 막는 방벽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아래로부터 국가의 통제를 완성하기 때문이다…”(§295, 강조는 인용자). 그러므로, 국가에 대한 통제는 위로부터 그리고 아래로부터 와야만 한다. 이것이 유일하게 보편 계급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길이다. 위로부터는 집행부의 관직자들을 감시하는 주권자(헤겔의 용어로는 ‘군주(monarch)’)가 있어야만 하고 아래로부터는 사회들과 기업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두 방향으로부터의 국가 통제의 권위들과 함께, 시민 봉사자와 또 다른 집행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중간 계급”은 전체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들을 대변하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이러한 헤겔의 ‘보편 계급’에 대한 설명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기만일 뿐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헤겔의 『법철학』 안에 논의되고 있는 계급 분할이 두 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제껏 우리가 쫓아온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록 헤겔 자신에 의해 그렇게 불리지는 않지만) “계급”이라는 용어의 보다 일상적인 의미에 가까이 오는 것으로서의 계급 분할이다. 즉, 부자와 빈자의 분할 말이다.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민의 상당수의 생계 기준이 특정한 생계 수준―사회 구성원에게 필요한 것으로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수준―밑으로 떨어질 때, 그리고 결과적으로 옳고 그름의 의미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노동과 노력에 의한 자신의 관리를 고집하게끔 만드는 자기-존중의 상실이 있을 때, 결과는 극빈자의 하층민의 생성이다. 그것과 함께 동시에 이는 사회적 사다리의 또 다른 끝에서, 소수의 손에 불균형한 부의 축적을 대단히 용이하게 만드는 조건들을 가져온다. (§244)

 

헤겔은 여기서 계급 양극화의 문제를 완전히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가 이러한 빈곤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러한 빈곤이 궁극적으로 국가 그 자체의 기반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는다. 그는 “시민사회는 자신의 부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초과적인 빈곤을 멈출 정도로 충분히 부유하지 않다”(§245)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민 사회의 빈곤문제 해결에 대한 무능력에 대한 헤겔의 치유책은 다른 나라들, “다른 땅들”과의 생산물들의 교환 혹은 무역이다. 여기서 헤겔은 가장 낙관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러한 교환과 무역이 보다 확대된 규모로, 그러니까 세계적인 규모로 빈곤을 재생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이는 더욱 더 정당한 질문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헤겔 자신이 시민사회의 그러한 빈곤의 문제야말로 “식민지 활동”의 바로 그 기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246-48). 따라서, 계급 분할의 질문은 또한 국제적 영역,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역사, 세계-정신에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세계-역사는 고사하고 국가에조차 이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지 않고, 이를 시민사회 내부의 일로 엄격하게 한정한다. 그는 이 문제로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제가 국가의 바로 심장부에서 발생한다. “입법부(Estates)”를 논의하면서 헤겔은 “다수자(the Many)”와 “전체(All)”를 구별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다수자’를 의미하면서 대신 ‘전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당대의 정치적 수사를 비판하면서 헤겔은 ‘전체’라는 표현이 “적어도 어린아이, 여성, 등”을 배제하는 것이라면 그 표현은 진정 부적절하고 전혀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단지 ‘전체’라는 표현의 부정확함만을 문제로 삼고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이는 ‘인민’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기각(혹은 적어도 변형)하려는 그의 준비작업이다: “만일 ‘인민’이라는 것이 시민들의 특수한 부분을 의미한다면, 이는 정확히 자신이 의지(will)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부분을 의미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실이다. 자신이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 그리고 더욱이 절대 의지, 이성이 무엇을 의지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심오한 이해와 직관의 열매이고 이는 정확히 인민적이지 않은 것이다.”(§301, 강조는 헤겔). 이는 실천적으로 아래로부터의 국가권력의 통제라는 것의 의미를 취소하는 것과 같다. 여성, 어린아이 등 뿐만 아니라 무지자들은 입법부를 심문할 권리를 거부당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이다.{주9/ 바로 이 두 가지 문제―즉 경제적 계급 분할과 “인민”(과소인간)의 헌정으로부터의 배제―로부터 맑스의 두 가지 중요한 문제설정이 나오게 된다. 한 편에서, 맑스는 보편계급의 의미를 전위시켜 그것을 더 이상 국가의 공무원 계급을 지칭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해방시킴으로써 다른 모든 계급들을 해방시키는 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름으로 만든다. 다른 한 편에서, 그는 국가 권력의 아래로부터의 통제의 의미를 급진화시키면서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를 전도시킨다. 즉 맑스에게 더 이상 국가는 인민의 교육자가 아니다. 인민이 국가의 교육자가 된다. (「고타 강령 비판」)}

그리하여, 헤겔에게 있어 국가의 안정성은 루소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실제적인 평등을 희생하는 것을 대가로 달성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는가? 즉, 자유와 평등이 끊임없이 분할되는 상황,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가 분리되어 특정한 인간들이 시민으로부터 배제되고 권리가 그것을 소유한 자의 특권으로 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 바로 그 상황으로 말이다. 사실, 나에게는 근대의 정치 그 자체가 자유의 방향으로든 평등의 방향으로든 한 쪽으로만 움직여 나가면서 그 양자의 합류점을 찾지 못한 채 끊임없이 표류해 온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의 진영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진영에서도 이러한 표류의 결과가 자유와 평등 양자 모두의 절망적인 상실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나는 루소가 행했던 오염된 자연상태의 묘사는 사실 그의 시대보다 우리 자신의 시대에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초민족적 금융 독점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는 세계를 말 그대로 마지막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집어삼켰고(그러나 이 말이 그러한 세계화로부터 제외된 사람들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오히려 그러한 제외에 의해 그들은 죽음과 불모, 질병, 야만의 상징이 되어 “인간 종 그 자체로부터” 그리고 세상 그 자체로부터 “내던져”지고 “절단된다”), 인간은 힘과 강제에 의한 문명화로부터의 그 어떤 탈출구도 자연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지경에 다시 한 번, 그러나 더 끔직한 방식으로, 이르렀다. 차이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계약이 세계적인 규모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희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헤겔은 국제적인 영역과 세계-역사에 있어서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지만, 현재의 상황 그 자체가 웅변적으로 말해주듯이, 우리는 마침내 교육만 가지고는 우리가 마주친 딜레마들과 모순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한 단계에 이미 도달했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수단들이 우리에게 남아있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하는 질문이다. 루소와 헤겔이 우리에게 물려준 수단들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충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