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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헌정 대 물질적 헌정

marxpino 2024. 12. 18. 01:12
요즘 형식적 헌정 대 물질적 헌정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데 한번 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형식적 민주주의 대 실질적 민주주의의 대립과 같은 것일까? 보통은 그렇게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질적 헌정은 고대정치를 특징짓는 것이다. 계급적 이해의 관철이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즉 계급의 물질적 이해관계가 헌정에 직접 반영되었다.
 
때문에 고대정치에서 계급투쟁은 정체의 종류를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국가건립에 관련된 일화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심지어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군주정(1인지배)/과두정(소수자지배)/민주정(다수자지배)의 갈등을 중심으로 돌아갔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이런 물질적 헌정은 사실상 종결되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형식적 헌정이다. 형식적 헌정은 국가권력을 계급투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분리하여 일정한 보편성/일반성/중립성을 확보하고, 과거에 계급적대가 가졌던 견제 기능을 3권분립(입법, 사법, 행정)으로 전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바로 이 때문에 근대의 형식적 헌정은 바로 '인민주권'의 출현과 분리 불가능하다. 고대와 전근대에 인민은 데모스, 빈민대중, 평민 등을 지칭하는 용어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근대의 형식적 헌정에서 인민은 '만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한다.
 
이는 바로 루소의 인민개념에서 확인되는 바, 인민을 인민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루소는 어떤 예외도 없는 만장일치의 사회계약으로 달성되는 일반의지를 지닌 공통의 자아로서의 인민 개념을 고안했다. (인민이 만인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둘러싸고도 논쟁이 있었다. 특히 헤겔이 보수적인 관점에서 만인으로서의 인민 개념을 기각하려고 시도했다.)
 
따라서 형식적 헌정은 무언가 형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 다시 말해서 자유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면 조금 곤란할 수 있다. 형식적 헌정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민주권의 출현과 더불어 인민이 서로에게 자유평등의 권리를 호혜적으로 부여함으로써 달성되는 자율적인 정치체를 달성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식적 헌정은 당연히 계급적대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기 때문에 루소 자신이 겪었듯이 아포리아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자율성의 정치를 뒤흔드는 정치의 타자로서의 계급적대의 실존이라는 난제(그리고 물론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등장하는 것은 바로 마르크스의 변혁의 정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가 고대 정치의 물질적 헌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다(오히려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는 내 견해로는 인민독재/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통해 고대의 물질적 헌정으로 돌아가고자 시도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근대의 계급투쟁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중반에 서유럽에서 사회적 시민권으로 초점을 옮겨서 진행된다. 즉 정체의 종류를 둘러싼 투쟁이 아니라 이런저런 사회적 권리들을 쟁취하는 방식으로 형식적 헌정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것마저 다시 매우 후퇴하고 있고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이른바 복지국가의 실패).
 
내가 보기에 근대의 형식적 헌정에 대해 물질적 헌정의 차원의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은 고대 로마 공화정의 호민관 제도의 기능을 할 수 있는 현대화된 제도를 발본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발의권, 소환권/탄핵권, 거부권이라고 본다.
 
오래전부터, 정확히는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부터 나는 시민발의 시민소환을 주장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제헌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제헌을 시민발의로 진행하면서 발의된 요구들에 대해 다양한 시민적 토론을 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을 열어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정치의 장은 제헌을 위해서뿐 아니라 제헌 이후에도 늘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노동자 민중만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장이 아니라 그 모든 입장이 경합하는 아곤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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