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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오피스
요즘 형식적 헌정 대 물질적 헌정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데 한번 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형식적 민주주의 대 실질적 민주주의의 대립과 같은 것일까? 보통은 그렇게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질적 헌정은 고대정치를 특징짓는 것이다. 계급적 이해의 관철이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즉 계급의 물질적 이해관계가 헌정에 직접 반영되었다. 이 때문에 고대정치에서 계급투쟁은 정체의 종류를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헤로도투스의 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국가건립에 관련된 일화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심지어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군주정(1인지배)/과두정(소수자지배)/민주정(다수자지배)의 갈등을 중심으로 돌아갔었다. 1789..
이 글은 약 20년 전에 쓴 것이지만, 출판되지는 않은 글입니다. 비트겐슈타인 초기와 후기 사이에는 큰 단절이 있습니다. 이 글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 대해 쓴 글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바디우는 초기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한 듯합니다만, 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이더군요. 이런 저의 관점은 라캉에 대한 또 다른 글에서도 엿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물론 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입장입니다). 어쨌든 카벨을 따라 오스틴과 비트겐슈타인 간의 쟁점을 살펴 봅니다. 즐독 되시길. 카벨의 관점에서 본 오스틴과 비트겐슈타인 최 원 1. 들어가며『이성의 주장들(Claims of Reason)』에서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은 존 랭셔 오스틴(..
* 인터넷 문서의 한계로 고대 그리스어의 소문자 파이는 여기서는 j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라캉적 관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2022)에 대한 몇몇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라캉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라캉과 영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일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라캉은 영화에 대해 거의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후기 세미나 어디에선가 오시나 나기사 감독의 (1976)에 대해 ‘이 영화는 일본에서만 나올 수 있는 영화였다’는 짧은 언급을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것이 전부다. 아마도 사람들이 라캉을 영화와 자꾸 관련시키는 것은 라캉 자신이 아니라 지젝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지젝은 라캉이 아니다. 우리는 라캉 자신의 관점을 알아보고 그 관점에서 영화를 ..
* 20년 전, 뉴 스쿨 대학 석사시절 때 썼던 에세이다. 학술지에 출판된 적은 없다. 헤겔은 정신(Spirit)에 도달하기 이전, 의식이 통과하게 되는 그 모든 형상들은 정신 그 자신의 추상적인 자기-분석을 구성할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 역사는 정신과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헤겔은 정신의 그 긴 여행의 출발점에 ‘허구’의 분석, 즉 소포클레스의 문학작품 『안티고네』의 분석을 위치시킨다. 따라서, 앞서의 진술 속에서 ‘실제’(“실제 역사...”)라는 수식어가 의미하는 바는 통상적인 이해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역사는 의식이나 자아(the Self)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객관적’인 역사를 지시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신은 정확히 자아와 세계가 더 이상 그렇게 대립된..
에서 버틀러는 종종 정신분석에 대해 오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라캉에 대한 오독은 문제가 많다. 이는 특히 지난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에 근본적 단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오히려 라캉이 더 잘 설명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버틀러가 라캉을 오독했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젠더 형성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 자체를 기각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상세한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들어가기 앞서서 중요한 개념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라캉은 성별들의 구조적 위치를 규정하기 위해 두 가지 축을 도입한다. 하나는 사랑의 요구의 축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의 축이다. 여기서 사랑의 요구의 축이란 타자가 자기를 욕망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따라서 사랑의 요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욕..
단국대에서 5년 정도 주디스 버틀러를 강의해 왔고 이번 학기에도 강의했다. 여기 강의 노트 일부를 공유한다. 버틀러의 2부 5장은 게일 루빈에 대한 (양가적인, 즉 비판을 통한 긍정의, 탈구축적인) 논의다. 게일 루빈은 이라는 저서에서 성해방의 관점에서 매우 스캔달적인 주장들을 펼치면서, 심지어 범죄적으로 보이는 성욕(예컨대 소아성애자의 성욕) 까지도 긍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는 80년대 초에 있었던 이른바 sex war의 양진영, 즉 sex positive(섹스는 좋은 것인데, 법 또는 권력이 그것을 억압한다)와 sex negative(섹스는 그 자체로 나쁘고 폭력적이다) 가운데 sex positive의 진영에 속한다. 버틀러는 이 입장을 비판하면서 법 이전적인 성욕, 법을 파괴함으로써 해방시..
2022년 10월에 출판된 저널 (vol. 32, no. 4)에 실린 Pablo Vila, Matthew T. Ford & Edward Avery-Natale의 논문 "Althusserian Interpellations: Intellectual Trajectory and New Avenues"에는 십 년 전에 제가 동일한 저널에 출판했던 "Inception or Interpellation? The Slovenian School, Butler, and Althusser"(vol. 25, no. 1)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저로서는 영광스럽고 매우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논문의 첫 문단만 여기 인용해 봅니다(본격적인 논의는 좀 뒤에 나옵니다). A few years ago, Won Choi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