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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오피스
십수 년 전에 거의 다 번역해 놨었지만 잊고 있다 컴퓨터에서 발견하고 최근 마무리 지었습니다. 1982년에 출판된 글이니 아주 오래된 글이죠. 특히 마지막 결론 부분은 발리바르의 입장이 변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국가권력장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최근의 에서는 명시적으로 국가권력장악은 국가주의적인 사고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바쿠닌주의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최 원) * 『맑스주의 고증사전 Dictionnaire critique du marxisme』, eds. Labica-Bensussan, PUF, 1982, pp. 85-91. (프루동주의자들과 계속된 논쟁을 제외하면) 1868년 이전에 아나키즘 문제는 맑스와 맑스주의에게 단지 부차적 중요성만을 갖는다..
사이토에 따르면, 말년의 맑스가 러시아에 대해 쓴 텍스트는 그의 생태주의적 관점을 명확히 드러낸다고 한다. 여기 번역해 올리는 공산주의 선언의 러시아판 서문은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공산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겨있다고 알려져 있는 텍스트다(이는 과거에 1980년대 말 한국의 사구체 논쟁 당시에 이미 논의가 된 바도 있다). 그리고 사이토는 이를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잔뜩 기대를 하며 읽어봤지만, 사이토가 얼마간 자의적으로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텍스트 외에 러시아의 자술리치에게 맑스가 보낸 서신도 사이토가 비슷하게 논하는데, 검토해 봤지만 농촌 코뮌(사실 봉건제 붕괴 후에 1~2세기 정도 존재하다 대부분 붕괴했지만 러시아 등에서 살아남은 농촌 코뮌을 가리킨다)..
아래 올린 발리바르 인터뷰와 관련해서 일독해 봐야할 텍스트입니다. 십년도 더 전에 번역한 것이고 제 기억으로 에 실렸던 번역입니다만 자세한 서지 사항은 기억에 없군요. 오래전에 번역한 거라 제가 요즘 사용하는 번역용어들과 차이가 있을 테지만 그냥 그대로 올립니다. 정치의 종언인가, 종언 없는 정치인가? — 맑스와 “공산주의적 정치”의 아포리아 에티엔 발리바르 Etienne Balibar (번역: 최 원) * 2008년 12월 17일 수요일에 연구 집단 “넓은 의미에서의 철학”에서 발표한 이 발표문의 예전 판본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2008년 11월 26~28일에 열린 국제 콜로키움 “공산당 선언 160주년 맑스 사유의 재독해”(Universidad Diego Portales y Universidad Arc..
이 인터뷰는 제 개인적인 필요 때문에 번역해 본 것입니다. 번역한 텍스트는 불어원본이 아니라 버소에 실려 있는 영어번역본입니다. 짧지만, 아래 올린 사이토 관련 몇몇 포스팅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는 인터뷰이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매우 중요한 인터뷰입니다. (퍼가셔도 좋습니다.) (최종 번역 수정 2021년 9월 24일) ‘공산주의는 능동적이고 다양한 집단적 주체성이다’ 에티엔 발리바르와의 인터뷰 (번역: 최원) 제롬 스칼스키(Jérôme Skalski)와의 대담에서 맑스주의 철학자[발리바르]가 역사, 공산주의, 사회주의 간의 연결들을 검토하다. 당신의 두 권의 『에크리(Écrits)』는 종종 대립되는 의념들인 개념과 역사를 결합합니다. 당신의 사유에서 무엇이 이 이중의 관심을 추동하는 것입니까..
이 글은 『문화과학』 84호(2015년 겨울)에 실렸던 글입니다. 앞서 공개한 (2019)와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논의나 인용은 출판된 판본에 준거해 주시길 바랍니다. 표절에 대한 짧은 소회 최 원 20여 년 전에 문학과 약간의 인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후 문학으로부터 줄곧 멀어지기만 해온 내가 문학계에서 벌어진 신경숙 작가의 표절을 둘러싼 논쟁에 말을 보탠다는 것은 솔직히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게다가 나는 신경숙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하다시피하고, 당연히 이번에 논란이 된 작품을 비롯하여 신작가의 어떤 작품도 읽어본 적이 없다. 또한 나는 문학계 내에 형성되어 있는 작가 시스템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이 없으며 그나마 알고 있는 것도 지난 『..
이 글은 2019년 봄호에 출판되었던 글입니다. 여기 공개하는 판본은 편집 이전 본이니, 논의나 인용은 출판본으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예술의 비판 기능과 유희 기능의 종합을 위한 성찰 알튀세르와 블랑쇼를 중심으로 최 원(단국대) 이 글은 이른바 ‘정동 이론’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예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특히 예술의 비판 기능과 유희 기능의 종합이라는 오래된 난제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를 성찰해 보기 위한 글이다. {주1/ ‘정동 이론’에 대한 비판으로서 우리가 준거로 삼는 논의에 대해서는 최원 [‘정동 이론’ 비판: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의 쟁점을 중심으로], {문화/ 과학} 통권86호(2016 여름)를 보라. 이 논문은 최원, 『라캉 또는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적 반역과 반폭력의 정치를 위하..
이 논문은 2021년 여름호에 출판될 예정입니다. 편집 이전 본이므로 인용이나 논의는 출판 본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탈구축과 구조주의 사이에서 -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의 소쉬르 비판을 중심으로 - 최원(단국대) 1. 들어가며 1929년 스위스 다보스(Davos) 철학대회에서 벌어진 카시러(Ernst Cassirer)와의 논쟁에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취했던 입장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이른바 대륙철학(continental philosophy)은 현상학적일 뿐 아니라 감성학적/미학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으며, (칸트적 용어법에 따르자면) ‘개념’에 대한 ‘직관’의 선차성, ‘자발성’에 대한 ‘수용성’의 선차성을 내세웠던 만큼 그것이 과학에 대한 거부감을 자체에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