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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민주주의적 시민권? - 발리바르의 민주주의론

marxpino 2021. 3. 9. 23:53

이 글은 <민족문화연구>(고대 민족문화연구원)에 수년 전에 출판했던 글입니다. 중요한 각주들이 있지만 각주는 생략합니다. 논의나 인용은 <민족문화연구>에 실린 논문에 준거하시기 바랍니다.


 

 

 

민주주의적 시민권?

 

- 발리바르의 민주주의론 -

 

 

최원

 

 

목   차

 

1. 민주주의적 시민권?

 

2. 평등자유: 이소노미아(isonomia), 아나키, 정치의 죽음

 

3. 근대 시민권의 두 국면

 

4. 주체 이후에 오는 것은 누구인가?

 

 

 

 

 

국문초록

 

이 논문의 목표는 󰡔평등자유명제󰡕라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최근 저서 및 몇몇 다른 텍스트에서 전개된 논의에 기초하여 ‘민주주의적 시민권’이라는 일견 자명해 보이는 관념이 가지고 있는 이율배반적 구조를 밝히고, 이로부터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역사적 결합의 조건들을 사고해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소노미아라는 용어가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 활용된 기원적인 용법에서 드러나듯이 기본적으로 아나키적인 원리로 파악될 수 있는데, 정치공동체는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러한 위험한 원리를 내적인 계기로 포함할 수 있는 역량을 발전시킴으로써만 자신의 또 다른 죽음(발리바르가 정치의 ‘프로그램화된 죽음’이라고 부르는)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적 시민권이라는 것은 매우 불안정하고 갈등적이고 정세적인 구성물로서만 실존할 수 있으며 다양한 역사적 형상을 갖게 된다. 근대의 경우 이는 두 번의 근대성의 생산으로 나타난 바 있는데, 본 논문은 이 두 번의 근대성의 내용 및 한계를 살펴보고, 포스트모던한 민주적 시민권의 발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유해야할 과제를 짚어본다.

 

주제어: 발리바르, 민주주의, 시민권, 근대성, 포스트모더니티

 

 

1. 민주주의적 시민권?

이 글은 2010년에 출판된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의 저서 󰡔평등자유명제(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를 중심으로 그의 민주주의론의 몇몇 주요 관념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리바르는 이 책을 「시민권의 이율배반」이라는 제목을 붙인 서론으로 시작하는데, 거기에서 그는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물론 여기에서 시민권이란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상들을 가져왔던 ‘역사적 제도로서의 시민권’을 일컫는 것으로, 발리바르는 시민권이 하나의 형상에서 다른 하나의 형상으로 이행할 때면 언제나 그것이 ‘정치 변혁의 동력(dynamique)으로서의 민주주의’와 맺는 이율배반적인 관계에 의해 추동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발리바르는 정치를 시민권과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을 통해 사고함으로써 그것을 단지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또한 역사적 운동과 세력관계를 포함하는 변증법의 문제 및 이론과 실천의 접합의 문제로서 바라보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발리바르가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체(régime)’로 바라보는 대부분의 정치철학적 전통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하나의 ‘과정’(곧 민주화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스피노자, 맑스, 그리고 현대에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와 같은 이들의 편에(때로는 이들의 명시적인 발언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통해서 도출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역설적 테제의 편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민주주의를 ‘시민권의 헌정(constitution de citoyenneté)’의 어떤 유형에 주어진 이름이 아니라 이른바 ‘민주정’을 포함하여 모든 시민권의 헌정에 적용해야 할 ‘진리’로서 사고한다는 것인데, 이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안일하게 결합시킴으로써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고 드는 ‘민주주의적 시민권’이라는 관념은 (그 말을 부정할 필요야 없겠지만) 정치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진전시키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엄밀하게 보자면 그 자체로 하나의 모순적 표현에 가까워지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또는 그 모순을 사유하는 것이 문제라는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질문이지 해답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발리바르는 이미 2001년에 쓴 「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라는 글에서 ‘민주주의적 시민권’(‘민주주의적 원리,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권리들의 보장, 법치국가에의 소속 및 그 제도들에 대한 참여’라는 의미로 이해된)을 ‘인민주권’보다 선호하는 헌정주의적 경향에 반대하여, ‘인민주권’이 보다 근본적이며 그것이 시민권에 대한 우리의 정의에 늘 유령처럼 들러붙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 바 있다. 결국 발리바르에게 민주주의란 모든 제도화된 역사적 시민권에 대하여 인민주권을 발동하여 ‘평등자유’의 진리를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탈구축하는 문제로 사고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역으로 모든 시민권은 그것이 “민주주의적”이라고 일컬어질 때조차 (세력관계에 따라) 좀 더 민주화되거나 반대로 탈민주화(de-démocratisation)될 수 있는, 전진과 후퇴 뿐 아니라 때로는 소멸까지도 가능한 ‘상대적인 것’으로 사고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다음 절에서 평등자유명제에 대한 발리바르의 사유를 다각도로 검토해보고자 하는데, 발리바르는 이것을 아나키(anarchie) 또는 정치의 죽음이라는 문제와 연관시킨다. 그 다음 절에서 우리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발발한 정치적 진리로서의 평등자유가 근대 정치 안에 전개된 결과로 생산된 두 가지 구분되는 근대성의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평등자유명제에 대해 발리바르가 새롭게 전개하고 있는 비판적 문제의식을 간략하게 짚어볼 것이다.

 

 

2. 평등자유: 이소노미아(isonomia), 아나키, 정치의 죽음

주지하다시피 ‘평등자유(égaliberté)’라는 말은 발리바르가 ‘평등과 자유의 실천적 동일성(identité)’, 곧 그 둘 가운데 하나를 부정하면 반드시 다른 하나마저도 부정하게 되는 사태를 이론적으로 지시하기 위해 만든 합성어이다. 그가 이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했던 것은 1989년 프티 오데온(Petit Odéon)에서 열린 학술대회(Conférences du Perroquet)에서 발표한 「평등자유명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였고, 이 논문은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이라는 또 다른 제목 하에서 󰡔민주주의의 경계들󰡕이라는 그의 1992년 저서에 수록되기도 했다(한국에서도 후자의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다). 20여년이 지난 후 원래의 논문과 동일한 제목의 360쪽에 달하는 저서가 나왔다는 것은 이 합성어가 표현하는 주제의 풍부함과 확장력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등자유라는 말은, 발리바르가 밝히듯이, 원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소노미아(isonomia)’라는 하나의 단일한 단어를 통해 지시하던 것과 정확히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말로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démocratie)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반면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경멸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소노미아’는 현재 통상적으로 ‘평등한 권리’ 또는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고 옮겨지곤 하지만, 사실 그 말의 더욱 정확한 번역어는 ‘평등자유’라고 볼 수 있는데,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는 고대 로마의 정치철학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가 그것을 라틴어로 옮길 때 ‘평등한 자유(aequa libertas)’라고 새긴 것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명제가 단순히 발리바르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제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오랜 시간을 이어져 내려온 풍부한 의미사슬을 발리바르가 신조어를 통해 아주 명료한 방식으로 포착해 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평등자유’라는 말까지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발리바르 이전에도 ‘이소노미아’라는 말을 통해서 평등과 자유의 동일성을 사고하려고 했던 근대적인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이다.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혁명에 대하여󰡕(1963)에서 이소노미아의 의미를 논하면서, “토커빌의 이해를 좇아 우리가 종종 자유에 대한 위험으로 보곤 하는 평등이 기원적으로는 거의 자유와 동일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상호연결(interconnection)”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근대 정치철학자들은 자유와 평등을 대립시키거나 또는 그 둘을 대립시키지 않을 때에도 양자 사이에 어떤 ‘위계’를 도입하려고 해왔다. 자유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론가들은 자유가 평등보다 상위의 범주라고 봤으며, 반대로 사회주의(또는 좌파)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론가들은 평등이 자유보다 상위의 범주라고 봤다. 전자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는 존 롤즈(John Rawls)인데, 롤즈는 󰡔정의론󰡕에서 “평등한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자유를 평등보다 선행하는 원리로 파악하는 ‘사전적 순서(lexical or lexicographical order)’를 도입한 바 있다. 또 더욱 최근의 사례로는 가라타니 고진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철학의 기원󰡕에서 이소노미아를 논하면서 ‘자유가 평등을 만들어낸다’고 봄으로써 자유를 보다 근본적인 범주로 파악한다(가라타니는 자유주의라기보다는 자유지상주의 좌파의 입장에 더 가깝다). 반면 랑시에르나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와 같은 경우 평등을 자유보다 더욱 근본적인 범주로 사고하며, 이 때문에 그들은 불평등과 배제에 맞선 투쟁만을 중시하며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한 투쟁과 자율성의 쟁취를 위한 투쟁과 같은 것은 부차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평등과 자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는 태도는 정치를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변증법적이고 내적인 긴장을 통해 사유하기보다는 정치를 그 중 어느 한 쪽에만 일방적으로 귀속시키려는 경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주로 시민권의 측면만을 특권화함으로써 정치를 제도로 환원하려고 한다면, 반대로 사회주의자들(또는 좌파)은 민주주의의 측면만을 특권화함으로써 정치를 제도 바깥의 어떤 것, 비제도적인 것으로 환원하려고 하며, 이 때문에 그들은 ‘시민권’이라는 언어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등장하는 정체에 대한 세 명의 페르시아인의 유명한 논쟁에서 오타네스(Otanes)는 군주제를 주장하는 다리우스(Darius)와 과두제를 주장하는 메가비주스(Megabyzus)에 반대하여 이소노미아(민주제)를 옹호했지만 투표가 다리우스의 승리로 끝나자 “나는 지배하고 싶지도 않고 지배받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면서, 누가 앞으로 설립될 군주정의 왕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추첨을 기권하는 대신 자기와 자기의 자손만큼은 (본인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왕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발리바르는 바로 이 장면을 논하면서 여기에는 어떤 해석상의 애매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오타네스의 이러한 요구는 그가 설파한 평등주의와는 모순되는 하나의 가족적 특권(게다가 상속되는 특권)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이 하나의 ‘한계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해석은 상반된 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이소노미아의 원리에 따른 시민권의 주장은 그것이 절대적으로 추구될 경우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곧 공동체 자체를 다양한 개별적 요구들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로 분해해 버린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그것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환원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 요구가 투표에서 패하여 말하자면 ‘죽음’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유령이 모든 권위주의적이거나 불평등한 정체들에 들러붙게 된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발리바르가 채택하는 이 두 번째 해석에 따를 경우, 이소노미아 또는 평등자유의 원리란 시민권의 헌정의 긍정적 원리라기보다는 부정적 원리이며, 저항, 불복종, 봉기 등을 통해 그것을 위협하며 부단히 되돌아오는 유령이자 정치 그 자체에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그림자로서의 아나키의 원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an-archie는 정확히 ‘비-지배’라는 의미,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지배받지도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이를 여전히 시민권의 헌정 그 자체 안에 기입되어 있는 내적인 이율배반의 문제로서 바라보고자 한다.

 

민주주의적 시민권이라는 것은 따라서 갈등적인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또한 민주주의적 시민권이—혁명적 에피소드들이 탁월하게 예시하듯이—실제적이거나 가능한 죽음과 어떤 본래적인 관계를 함축한다는 것을 뜻한다. 시민들의 공동체로서 자기 자신을 구하거나 살아남기 위해서 시테(cité)는 자신의 구성원들의 대립 안에서 죽음 또는 아나키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어떤 것도 시테를 그것으로부터 미리 보호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반대자를 범죄자화하거나 양심의 반대에 대해 반역의 혐의를 부과함으로써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시민들의 공동체를 구하거나 살아남게 만드는 것일 수 있는 한에서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정치의 죽음은 두 가지 대립되는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다. 첫 번째 죽음은 발리바르가 정치의 ‘프로그램화 된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과거에는 ‘관리(gestion)’라는 이름을 가졌었고 오늘날에는 ‘거버넌스(gouvernance)’라는 이름을 갖게 된 ‘반정치(anti-politique)’가 전면화 되는 상황을 말하는데, 그것은 주로 공적인 권력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의 불평등한 구조를 확립함으로써 (다수자 계급이든 소수자 계급이든 간에) 한 계급이 정치를 전유하고 사유화함으로써 그것을 파괴할 때에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첫 번째 죽음을 지연시키는 완화제로서 ‘청문회, 법적 절차, 반대할 권리, 소수파의 권리’ 따위의 제도를 만들 수 있지만, 시테가 이러한 프로그램화 된 정치의 죽음을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것이 또 다른 종류의 죽음을 대면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곧 시테가 자기 자신에 맞서 분할되는 갈등적 현실, 바로 아나키적 현실에 대면할 수 있는 역량을 그것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발리바르는 이러한 아나키적 현실을 “민주적 예외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시민권이라는 제도 또는 시민들의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적 권위가 부재한 무정부적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며, 그것이 초래할 상황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일지는 이미 지구 곳곳에서 그러한 상황을 실제로 겪고 있는 사람들의 참혹한 삶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발리바르는 국가주의적 신화의 역의 신화, 곧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이지만 국가 또는 공적 권위가 그들을 타락시켰을 뿐이라는 식의 신화에 우리가 의존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그러한 무정부적 사회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나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 등이 말하는 자기-면역적 사회(따라서 자기-파괴에 이르는 사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발리바르는, 시테 또는 국가가 아나키적인 원리를 자기 안에 하나의 본질적 계기로 포함하고 있지 않을 경우 그것이 자신의 또 다른 죽음(곧 프로그램화 된 죽음)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원칙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종종) 자신을 위협하는 저항권, 봉기권, 시민불복종권 등의 부정적 권리가 시민권의 헌정 자체 안에 기입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예컨대 ‘저항권’을 명시적으로 시민의 권리로 인정하는 프랑스 혁명의 󰡔선언󰡕 뿐만 아니라 대항권력의 존재를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미국 헌정의 전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그 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테가 스스로를 얼마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잠재적 죽음’을 통해서만, 그러한 죽음을 필수적인 자신의 생존의 계기로 상정함으로써만 가능하다면, 결국 발리바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정치란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이율배반과 그 내적 긴장의 영속적인 전개일 수 있을 따름이며, 그 변증법의 어느 한 쪽을 소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자 무용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근대 시민권의 두 국면

1789년 프랑스혁명은 이러한 대립물의 통일(coincidentia oppositorum)로서의 평등자유명제의 역사에, ‘인간과 시민의 동일성’이라는 또 다른 대립물의 통일을 추가함으로써 결정적인 단절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인간과 시민을 등치시키고, 모든 인간은 시민이며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함으로써, 시민의 자격을 둘러싼 논란을 영원히 시효 지난 어떤 것으로 일소해 버린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자연권 사상에 이르는 시민권에 대한 전통적인 사유들이 인간과 동물 및 과소인간(예컨대, 여성, 노예, 어린아이)의 구분을 통해 인간의 자연본성(nature)을 규정하고 또 이로부터 시민의 자격을 도출하려고 시도했다고 한다면, 프랑스혁명의 󰡔선언󰡕은 오히려 시민권을 통해서만 또는 그것의 쟁취를 통해서만 인간이 인간으로 생성될 수 있다고(따라서 시민권 바깥이나 이전에 존재하는 ‘인간’은 없다고) 정반대로 말함으로써 시민권을 즉시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사정을 갖는 어떤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절을 통해 프랑스혁명 이후에 전개된 근대 정치가 앞서 말한 ‘시민권의 이율배반’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며 단지 그것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었을 따름인데, 왜냐하면 󰡔선언󰡕의 의의는 그것이 시민의 자격을 무규정적인 것으로 완전히 열어 놓음으로써 그 이후 모든 배제된 자들이 그 언표의 발화자의 위치에 스스로를 기입하고 이미 거기에 자신의 것으로 선언되어 있는 권리들을 실제로 향유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한 데에서 찾아지는 것이지, 󰡔선언󰡕이 역사적 제도로서의 근대적인 ‘시민권의 헌정’을 보편적인 것으로 명확히 확립하거나 심지어 완성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찾아지는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문제는 봉기(insurrection)와 구성/헌정(constitution)의 변증법이다. 먼저 우리는 근대 시민권의 첫 번째 국면(또는 “첫 번째 근대성”)으로서 “평등자유의 흔적”을 분석하는 발리바르의 논의를 살펴보고, 그것의 두 번째 국면(또는 “두 번째 근대성”)으로서 ‘사회적 시민권’의 전개를 분석하는 그의 논의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발리바르가 말하는 “평등자유의 흔적”이라는 것은 평등자유 명제가 1789년에 선언된 이후 그 시기에만 적절한 어떤 것으로 남아있거나 과거의 유물이 되기는커녕 부단히 현재로 되돌아옴으로써(또는 오히려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시간과 장소로 되돌아옴으로써), 갈등과 제도의 결합이 지속적으로 다시 일어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프랑스 혁명 이후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요구할 때면 언제나 그들은 근대적인 보편적 시민권의 기원에 있는 그 󰡔선언󰡕의 언표행위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인데,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러한 되풀이는 물론 ‘정권교체’나 ‘지배계급의 전복’과 같은 혁명적 사건에서 가장 뚜렷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이지만 그러한 표상에만 제한되지 않는 다양한 역사적 형태를 띨 수 있다. 왜냐하면 권리의 요구(petitio juris)는 그것이 혁명에 미달할 때에도 항상 일정한 “봉기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통해 실현되는 ‘평등자유의 흔적’은 역사 속에서 무한한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유럽에서 시민권이 설립된 민족적 역사들의 다양성, 식민지 해방 운동이 취했던 형태의 다양성, 미국 흑인 해방 운동으로 이어진 내전과 공민권 운동의 독특성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태상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발리바르는 최종심에서 결정적인 것은 갈등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평등자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어떤 기본 품성이 아니고, 지배자들은 자신의 특권과 권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법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평등과 자유에 대한 요구는 따라서 항상 (조건에 따라 폭력적이 되거나 비폭력적이 되는) 투쟁을 통과할 수밖에 없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봉기 속에서 이렇게 ‘갈등’과 ‘부정’을 통해 생산되는 시민적 공동체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구성원들이 마침내 어떤 합의(consensus)에 도달함으로써 생산되는 동질적인 통일체나 달성된 총체성으로 나타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대로 (단지 경제적 필요 및 유용성으로만 묶여 있거나 아니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의 상태만을 공유하고 있는) 원자적인 개인들의 단순한 합으로 나타날 수도 없다. 발리바르는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평등자유의 ‘시민들’(또는 동료-시민들)은 친구도 적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주장한 ‘친구와 적의 구분’으로서의 정치(또는 정치적인 것)라는 규정에 대한 대안적 정식화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다. 이러한 발리바르의 생각은 갈등이 파괴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적이 되는 경합주의(agonism)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샹탈 무페(Chantal Mouffe)의 “민주주의적 역설(democratic paradox)”과 가까워지는 것이자, 동시에 정치와 민주주의는 어떤 미리 주어진 초역사적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견지에서만 파악 가능한 어떤 것이라는 사고, 곧 시민권의 제도는 부단히 갱신되는 형태들을 취하면서 변화하는 규범들, 공간들, 영토들, 역사적 내러티브들, 이데올로기적 구성체들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봉기와 구성의 변증법을 통해 만들어지고 또한 변화하는 시민적 공동체란 순수하게 형식적이거나 법적인 용어들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과 중단, 그리고 영속적인 변혁의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역사적 과정”으로, 따라서 부단히 지속되는 “민주주의적 발명”(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의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이다. 발리바르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렇게 ‘발명’해야 할 어떤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보존’해야 할 어떤 것으로 바라볼 때,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특정한 시민권의 형상을 고수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잃어버리게 되고, 정치는 반-정치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자유의 흔적”이라는 것만 가지고 근대 시민권의 변천을 온전히 묘사하기는 곤란한데, 특히 두 번째 근대성의 국면에서 출현한 사회적 시민권의 전개는 훨씬 더 복잡한 설명을 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리바르가 주목하는 것은 근대 시민권의 헌정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성격이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 공화정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의 헌정들은 권리들을 (군주, 귀족, 평민과 같은) 계급 사이에서 분배하고, 포함과 배제의 규칙을 정하며, 공직자들을 선택하는 원칙과 그들의 책임을 정하고, 권력과 대항권력을 정의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물질적 헌정들(constitutions matérielles)”이었다. 곧 그것은 계급적 세력관계 및 그 힘의 균형을 정체에 (때로는 혼합정체의 형식으로) 반영하는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근대의 헌정들은 “형식적 헌정들(constitutions formelles)”로서, (원칙적으로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다소간 보편적인 방식으로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대신 통치자와 피통치자 간의 분리를 확립함으로써 국가를 사회로부터(따라서 적어도 외양상 계급으로부터) 자율화시키고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능을 독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조직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계급투쟁이 정체의 종류(즉 어떤 계급이 지배하는가)를 쟁점으로 진행된다기보다는, 발리바르에 따르면, 오히려 교육체계 쪽으로 전위되는데, 왜냐하면 교육만이 부르주아 국가 내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신분상승은 물론) 정치적 권력에 접근하거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어느 정도 허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근대에 달성된 공적인 대중교육 체계는 비록 어떤 한계 내에서라고는 할지라도 중요한 민주적 성취라고 여겨질 만한 것이었다. 물론 교육기본권 또는 교육받을 권리라는 것은 단순히 국가 또는 지배계급에 의해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과 인민이 자신들의 투쟁에 의해 아래로부터 강제하거나 쟁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부르주아 계급은 늘 학교라는 공간을 무지한 대중과 엘리트를 구분하고 후자를 자신의 계급적 목적에 동원하기 위한 능력주의적(méritocratique)인 지적 위계의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이에 따라 학교는 또한 정치적 대의제를 엘리트주의 및 우민정치와 결합시키는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해 온 것이 사실이다.

 

T. H. 마셜이 말하듯이, 교육체계는 20세기에 확립된 사회적 시민권의 중요한 한 축을 구성하는 것인데(또 다른 한 축은 ‘사회적 서비스’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민권의 확립은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에 대한 전복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부르주아지에게서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으로 성립된 역사적인 ‘계급타협’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었지만, 그것이 이룩한 사회 전반의 민주화 효과는 여전히 엄청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발리바르가 여기에서 동시에 주목하는 것은 (교육권의 쟁취가 그러했듯이) 사회적 시민권이라는 것 전체가 근대 역사 속에서 어떤 적대의 전위를 통해서 달성되었다는 점이다. 발리바르는 이중의 전위를 지적한다.

 

첫 번째는 사회적 시민권이 노동과 관련된 기본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생산’이 아니라 ‘노동력의 재생산’ 쪽으로 전위시켜 답한 것이다. 원래 생산 영역은 항상 불안정한 계급간 세력관계 속에 있는 만큼 어떤 정상화나 규범화(normalization)가 상당히 곤란한 장소로 나타나는 반면, 재생산 영역은 근본적으로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정상화가 가능하며 특히 국가(또는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이라고 부른 것)에 의한 개입이 용이해지는 장소로 나타난다.

 

두 번째는 사회적 적대를 국제관계 또는 국가 간 관계로 전위시킨 데에서 발견되며, 냉전 시기와 탈냉전의 시기에 그것은 각각 상이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냉전시기에는 양대 진영으로의 세계분할이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쟁에 소비에트적 혁명의 위험이라는 지지물을 제공함으로써, 민족적 자본주의의 정치적 대표들로 하여금 조직된 노동자 계급과의 모종의 타협을 추구하도록 유도했고, 더욱 중요하게는 사회적 진보를 위한 부르주아지 자신의 모델을 발전시키도록 추동했다고 한다면, 냉전이 종식되고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가 시작된 후에는 공포가 편을 바꾸어 나타나게 되는데, 이제 자본가들은 더 이상 혁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반면 오히려 노동자들이야말로 이주자들과의 경쟁을 두려워하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근대적 시민권과 계급투쟁의 얽힘의 이러한 특이한 양상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이끌어내고 싶어 한다. 곧 사회적 시민권의 위기 또는 와해의 요인을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자본가들의 반격이라는 외적 요인에서 찾는 데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지만, 사실 그것은 (그러한 외적 요인과 함께) 사회적 시민권이 종래에 조직되던 방식 자체에 내적인 어떤 모순으로부터 야기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특히 민족국가로서의 근대국가)라는 문제를 맹목점에 놓아둠으로써 사회적 시민권이 ‘정상성’에 의해 침식되는 상황에 대해 노동자 운동이 전혀 반작용하지 못하고 묵인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노동자 운동은 생산과 재생산의 자본주의적 분할 그 자체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성의 부불의 가사노동 및 성적 위계구조, 핵가족이라는 가족형태 자체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성격 등에 대해 사실상 어떤 의미 있는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에조차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했으며, 민족국가 경계 내부에서 자신들이 누리는 사회적 권리가 그 경계 외부에서 진행되는 식민지에 대한 수탈을 기반으로 한 특권일 수 있다는 문제에 대해서도 눈을 감음으로써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초민족적 자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어떠한 힘 있는 국제적 연대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무능력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점점 더 국수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취약해져 가는 자신의 몰락을 무력하게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20세기 노동자 운동에게만 특별히 해당되는 어떤 전략적 오류의 문제이기만 할까? 발리바르는 시야를 좀 더 확장하여 그것을 모든 해방 운동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의 문제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여전히 노동자 운동을 경유하여 말한다면, 먼저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투쟁이 근대적 시민권의 역사에서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배계급은 이를 끊임없이 부인하거나 또는 진실을 거꾸로 뒤집어서 노동자들의 조직된 투쟁은 민주주의에 대해 전체주의적인 위협이 될 뿐이라고 악선전하기를 멈추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지배계급이 퍼뜨리는 이와 같은 편견은 명확히 거부하면서도,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계급운동이 본성상 대항국가, 대항권력, 그리고 대항폭력으로 이끄는 내적인 권위주의로부터 면역되어 있다고 믿을 수도 없으며, 노동자 계급이 그 자체로 보편성의 무제약적이고 무조건적인 원칙을 대표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러한 한계는 단순히 우연적인 어떤 불리한 물질적 조건에 의해 야기되거나 사람들의 “부패” 및 “타락”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억압에 대한 저항과 반대의 운동은 항상 “대항공동체의 출현과 구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내적인 필연성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대항공동체는 그것이 투쟁하는 공동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의 ‘공동체’인 한에서 모종의 배제와 위계구조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노동자 운동만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모든 봉기의 계기들은 유한한 것일 수밖에 없으며, 어디에도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해방적 보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4. 주체 이후에 오는 것은 누구인가?

그런데 이렇게 어떠한 개별적인 봉기도 절대적으로 보편적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는 단지 이상과 현실 간의 격차로 인해 그러한 것이 아니라(만일 그러한 것이라면 ‘어떤 구성/헌정도 절대적으로 보편적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봉기라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한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다시 말해서, 평등자유명제라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같은 것은 없는가? 평등자유명제에 입각한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수자의 정치, 다시 말해서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소수자의 정치라는 차원을 아우를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두 가지 종류의 정치를 궁극적으로 접합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발리바르는 ‘주체 이후에 오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비교적 최근이라고 볼 수 있는 2014년 11월 13일~14일에 콜롬비아 대학 매종 프랑세즈(Colombia Maison Française)에서 열렸던 컨퍼런스에서 종전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주는 페이퍼를 발표한 바 있는데, 그 페이퍼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주체 이후에 오는 것이 낯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Can We Say: After the Subject Comes the Stranger?)」. 주지하다시피 1989년에 장-뤽 낭시(Jean-Luc Nancy)가 당대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물었던 질문, ‘주체 이후에 오는 것은 누구인가?’에 대해 발리바르는 ‘주체 이후에는 시민이 온다’고 답한 바 있었다. 곧 ‘주체 이후’적이라는 상황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며, 그때 주체를 대신해서 온 것은 시민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발리바르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질문 안에 있는 sujet 또는 subject를 의도적으로 예속된 주체로서의 ‘신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일 지금 그가 주체 이후에 오는 것은 ‘낯선 사람’ 또는 ‘이방인’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시민-주체’ 이후에 오는 것은 ‘낯선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주체가 근본적으로 평등자유명제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후에 오는 ‘낯선 사람’은 그 명제를 초과하는 어떤 존재를 지시할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해서, 평등자유 명제에 입각한 정치가 다수자를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초과하는 이러한 낯선 사람이라는 형상은 소수자에 연결되어 있는 어떤 존재들 또는 다수자가 구현하는 ‘정상성’의 기준에서 이탈해 있는 ‘비정상인들’(미셸 푸코)을 의미할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2011년에 나온 󰡔시민 주체󰡕라는 저서의 결론을 이루고 있는 「부르주아적 보편성과 인간학적 차이들」이 논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며, 󰡔평등자유명제󰡕에 실려 있는 「평등자유명제에 대한 새로운 성찰들」의 마지막에 가서 자신은 아직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거듭 밝히며 논의했던 것도 이 문제였다. 그것은 ‘인간성’을 규정하는 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편성에 대한 우리의 사고의 지평에서 배제할 수 없지만, 동시에 그것이 ‘차이’이기 때문에 보편성의 담론이라는 관점에서는 해명이 곤란해지는 인간학적 차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의 차이, 인종적 차이, 성적 차이, 지적 차이(또는 지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의 차이) 등과 같은 인간학적 차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것들이 어떤 보편성의 하위 범주인 특수성으로 분류될 수 없고 오히려 항상 인간적 보편성 자체가 스스로와 일치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만큼의 간격들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20세기 후반의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범주가 인간이라는 보편성에 대해 남성이라는 대칭적 범주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 또 다른 특수 혹은 또 다른 절반의 범주가 아니라 인간 보편성으로 단언되는 것이 사실은 남성적인 것임을 폭로하면서 여성이라는 범주를 또 다른 보편성으로 제시함으로써만 남성권력에 대한 실질적 저항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바꿔 말해서 여성은 단순히 남성과 다름없는 역량을 지닌 존재로 규정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남성과 다른 역량을 지닌 존재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인데, 성적 차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인간 보편성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근저로부터 뒤흔든다. 발리바르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소수자들은 단지 “부정적” 권리들이나 자유들, 곧 특정한 무능력 또는 억압적 제약들의 폐지를 요구할 뿐인 것은 아니다. 더욱 근본적으로 소수자들은 정치적인 것의 개조에 기여할 가능성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그들은 평등자유 명제를 심오하게 “전복한다”. 이는 또한 그들이 자기 자신의 부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예상할 수 없는 미래 쪽으로 그 명제를 투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포스트모던한 인간학적 차이들의 문제에 대한 발리바르의 천착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이미 평등자유명제를 처음으로 정식화했던 텍스트에서부터 성적 차이와 지적 차이를 인권과 시민권의 근대적 변증법을 넘어가는 포스트모던한 문제로 제기했었다. 그러나 최근 저서와 논문에서 그는 몇몇 또 다른 차이들을 목록에 추가하면서 훨씬 더 발본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룰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평등자유명제에 입각한 다수자적 정치와 인간학적 차이에 입각한 소수자적 정치의 종합은 물론 접합(articulation)마저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다수자적 정치는 시민적 규범(normes)의 생산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공동체로서 실현할 수 있는데, 이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규범을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것을 배제하는 메커니즘을 설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배제는 신분제적인 고대 정치에서처럼 시민적 공간과 비시민적 공간(예컨대 가족oikos)을 나누고 상이한 인간 집단들을 구분하고 위계화하여 귀속시키는 ‘외적 배제’의 양상을 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 배제’ 또는 ‘포함적 배제’의 양상을 띠기 때문에 단순한 평등에의 요구만으로는 극복이 곤란하다.

 

이 점에서 발리바르는 “비정상인들”에 대한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의 설명에 주목한다. 푸코에 따르면 중세에 나병환자를 통제하던 권력의 방식과 17 ‧ 18세기에 역병을 통제하던 권력의 방식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나병환자에 대한 통제가 환자들의 공동체 외부로의 배제(나환자촌으로의 배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역병 환자에 대한 통제는 그들을 공동체 바깥으로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병이 발생한 마을의 공간을 구획하여 나누고 그 안에서 환자들을 격리하여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푸코는 “핵심적으로 서양에는 개인들의 통제를 위해 단 두 개의 주요한 모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나병환자의 배제이고 다른 하나는 역병의 희생자들의 포함이라는 모델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포함의 모델을 근대적인 “정상화의 권력”의 본질로 파악한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법적 “억압” 또는 “금지”에 의해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주체가 규범에 따라 스스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규율권력의 새로운 통치술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정상화의 권력은 19세기에 정상과 비정상 구분의 전문가로서의 의사(특히 정신의학자)와 재판관의 역사적 수렴을 통해서 하나의 지식-권력으로 발전되는데, 그것은 공식적인 법을 수단으로 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공식적 법의 아래쪽에서(또는 그 법이 사례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사법”의 영역에서) 미시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이러한 ‘포함적 배제’의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 그리고 더 나아가 비정상성과 범죄성(범죄적 비정상성)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정상화의 권력에 대한 저항은 따라서 법 앞에서의 평등의 요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게 되는데, 더욱 곤란한 것은 이러한 경계들을 나누지 않고서는 시민적 공동체를 생산하는 것 자체가 좀처럼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실제로 근대의 세 가지 주요 정치사상으로서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유토피아주의(사회주의 및 아나키즘)는 비정상성과 범죄성의 구분이라는 문제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어떤 자가 정신이상이거나 범죄적이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지 동시에 둘 다일 수는 없다’라는 이접(disjonction)의 모델을 따라 사고한다면(따라서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정신이상자는 범죄자로 처벌될 수 없다), 보수주의는 ‘그는 정신이상이며 동시에 범죄적이다’라는 결합(conjonction)의 모델을 따라 비정상인들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그리고 모든 범죄자를 정신이상자로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유토피아주의는 ‘어떤 사람도 그 자체로는 정신이상도 아니고 범죄적이지도 않다’(곧 그는 단지 사회적인 환경 내지 조건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는 동시적 부정(négation simultanée)의 모델을 주장한다. 이 가운데 보수주의와 유토피아주의는 실천적으로 제도화가 불가능한 입장(또는 제도화한다면 극단적인 폭력으로 나타날만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유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안정적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입장은 비정상성과 범죄성을 분리함으로써 시민들이 스스로 또는 심지어 민주적으로 그러한 분리의 기준을 논의하고 집단적 차별과 배제를 실천할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이로 인해 자유주의적 입장 내부로 보수주의와 유토피아주의가 경향적으로 복귀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이러한 인간학적 차이는 그것을 기각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정의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중구속’ 상태에 묶여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발리바르는 시민들의 공동체의 이러한 “불가능한(impossible)” 또는 “비정치적/서투른(impolitique)” 성격은 사실적 또는 물질적 불가능성의 의미에서 이해되기 보다는 공동체와 시민권을 건설하는 일은 동시에 공동체와 시민권을 해체(déconstruire)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평등자유명제 그 자체가 취소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여전히 유한한 정치이며 어떤 이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정치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또 다른 정치를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라는 관념과 연결한다.

 

내가 포스트모던한 계기 또는 근대성 자체의 포스트모던한 측면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서 … 인간학적 차이들은 모호하고, 문제적이고 그 의미 내에서 정의하고 고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 규율과 격리의 모든 제도들(군대, 학교, 가족, 병원, 감옥 등)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결코 진정으로 국지화가 가능하지 않고 영토화되지 않으며 경계들 안에, 단순히 이분법적인 공간들 안에 가두어질 수 없다. 그것들은 또 다른 맥락에서 푸코가 말한 것처럼 본질적으로 “헤테로토피아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적어도 공식적이고 명시적으로는 시민을 재생산하는 긍정적 역할, 인간 본성과 인간 사회에 내속적인 시민적 또는 정치적 권력을 현실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성을 초과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발리바르의 탐구는 앞으로 그의 연구의 커다란 축을 이루지 않을까 예상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현재까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내가 보기에 발리바르는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주체’라는 범주를 ‘역사의 주체’는 물론 심지어 ‘정치의 주체’라는 제한된 의미로도 적어도 일괄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행위자’나 ‘담지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고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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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Democratic Citizenship?: Balibar's Discourse on Democracy

Won Choi*

The aim of this paper is to, following Balibar's recent discussions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and other texts, elucidate the antinomical structure of the apparently self-evident idea of democratic citizenship and think about conditions of historical combinations of citizenship and democracy. As is well shown in the usage of the ancient Greek term isonomia in Herodotus's The Histories, democracy is understood as a principle of anarchy. It is only by including this dangerous principle, which can lead to its own death, as its intrinsic moment that political community may avoid another death of its own, which Balibar calls a programmed death. Hence democratic citizenship exists only as a very unstable, conflictual, and conjunctural formation and thus has diverse historical figures. In modern times, it produced two figures of modernity. This paper examines the contents and limits of such modern figures of citizenship, and furthermore explores what should be thought about for a new invention of postmodern democratic citizenship.

Key Words: Balibar, Democracy, Citizenship, Social Citizenship, Modernity, Post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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