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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오피스
오늘 아리스토텔레스의 을 강의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여기 기록합니다.-------------------------- 삼성전자의 노사갈등에 대해 최근 살펴본 몇몇 의견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최근 영업이익에 가장 많이 기여한 집단이 어떤 집단인가를 논하면서 이재용이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 아니다, 삼전 노동자들이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고 서로 주장하는 것을 봤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준거해야 할 철학자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5권, 정의론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누구나 자신이 기여한 것에 비례하여 자신의 몫을 가져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따라서 같은 기여를 한 사람들이 다른 몫을 받거나 다른 기여를 한 사람들이 같은 몫을 받는다면 싸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피지컬 AI 또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휴머노이드 또는 다른 유형의 로봇)이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인터뷰를 접했다. 그는 로봇을 도입함으로써 인류는 곧 '노동의 종말'과 '기본 고소득'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런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며, 현대 자동차 노조는 노조와의 합의 없이 로봇은 단 한 대도 들여올 수 없다고 선포했다. 이에 대한 나의 몇몇 생각을 정말 간략하게 공유해 보고자 한다(이는 내가 더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단상이라는 말이고 이 단상이 마음에 든다면 읽는 이들이 더 생각을 발전시켜 보라는 뜻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아니면 말고). 1. 현대차 노조의 이런 저항은 사실 부질 없는 일이다. 한국에 대해 말하기 전..
사실은 2022년보다 더 전에 쓴 글이지만 정세적 언급을 조금 고치느라 2022년에 마무리한 글입니다. 하지만 이제 2025년이고 트럼프가 재집권을 했으니 또 바꿔야 할 것 같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집니다. 어쨌든 출판을 목적으로 쓴 글이지만 이제는 출판할 생각이 없으므로 여기 그냥 공개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만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다운로드도 가능합니다.여기를 클릭!
이 번역은 2022년에 초역한 것으로 출판사 사정으로 인해 출판이 되지 못했다. 아직 완성된 번역이 아니므로 논의와 인용은 영어 원본에서 하시길 바란다.알튀세르와+동시대인들+초역본.pdf
요즘 형식적 헌정 대 물질적 헌정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데 한번 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형식적 민주주의 대 실질적 민주주의의 대립과 같은 것일까? 보통은 그렇게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질적 헌정은 고대정치를 특징짓는 것이다. 계급적 이해의 관철이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즉 계급의 물질적 이해관계가 헌정에 직접 반영되었다. 이 때문에 고대정치에서 계급투쟁은 정체의 종류를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헤로도투스의 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국가건립에 관련된 일화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심지어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군주정(1인지배)/과두정(소수자지배)/민주정(다수자지배)의 갈등을 중심으로 돌아갔었다. 1789..
이 글은 약 20년 전에 쓴 것이지만, 출판되지는 않은 글입니다. 비트겐슈타인 초기와 후기 사이에는 큰 단절이 있습니다. 이 글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 대해 쓴 글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바디우는 초기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한 듯합니다만, 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이더군요. 이런 저의 관점은 라캉에 대한 또 다른 글에서도 엿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물론 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입장입니다). 어쨌든 카벨을 따라 오스틴과 비트겐슈타인 간의 쟁점을 살펴 봅니다. 즐독 되시길. 카벨의 관점에서 본 오스틴과 비트겐슈타인 최 원 1. 들어가며『이성의 주장들(Claims of Reason)』에서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은 존 랭셔 오스틴(..
* 인터넷 문서의 한계로 고대 그리스어의 소문자 파이는 여기서는 j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라캉적 관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2022)에 대한 몇몇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라캉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라캉과 영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일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라캉은 영화에 대해 거의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후기 세미나 어디에선가 오시나 나기사 감독의 (1976)에 대해 ‘이 영화는 일본에서만 나올 수 있는 영화였다’는 짧은 언급을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것이 전부다. 아마도 사람들이 라캉을 영화와 자꾸 관련시키는 것은 라캉 자신이 아니라 지젝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지젝은 라캉이 아니다. 우리는 라캉 자신의 관점을 알아보고 그 관점에서 영화를..
* 20년 전, 뉴 스쿨 대학 석사시절 때 썼던 에세이다. 학술지에 출판된 적은 없다. 헤겔은 정신(Spirit)에 도달하기 이전, 의식이 통과하게 되는 그 모든 형상들은 정신 그 자신의 추상적인 자기-분석을 구성할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 역사는 정신과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헤겔은 정신의 그 긴 여행의 출발점에 ‘허구’의 분석, 즉 소포클레스의 문학작품 『안티고네』의 분석을 위치시킨다. 따라서, 앞서의 진술 속에서 ‘실제’(“실제 역사...”)라는 수식어가 의미하는 바는 통상적인 이해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역사는 의식이나 자아(the Self)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객관적’인 역사를 지시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신은 정확히 자아와 세계가 더 이상 그렇게 대립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