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오피스
[번역] 발리바르 인터뷰: 세계화와 문명 본문
오래 전에 번역했던 건데, 도큐멘타 X에 실려 있는 대담입니다. 1부와 2부 중 1부만 번역했습니다.
발리바르 인터뷰: 세계화와 문명
By Jean-François Chevrier, Catherine David, Nadia Tazi
Interview with E. Balibar, "Globalization, Civilization I", Politics-Poetics Documenta X--the Book, (Ostfildern: Cantz, 1997), pp. 774-83.
(번역: 최 원)
제 1 부
장-프랑수아 슈브리에: 맑스주의의 본질적으로 프랑스-독일적 전통 출신이고, 국가의 중요성에 대해 온전히 인식하고 있으며, 페르낭드 브로델의 지정학적이자 인구학적인 분석들에 대해 확신하고 계신 선생님 같은 철학자에게, 시민권(citizenship)이라는 질문이 정확히 안 봐도 알 수 있는 질문은 아닐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 질문을 던지게 되셨는지요? 선생님은 민족국가에 본래적인 인종주의적 구성요소를 식별하신 후에 시민권을 민족적 동일성에서 분리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에티엔 발리바르: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자전적 사실 하나를 회고하고 싶군요. 저는 알튀세르 학파의 구성원이었습니다.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의 근본적 분절들을 조사한 유일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 질문에 강하게 집착했지요.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물리학이나 생물학의 인식론을 연구한 것처럼 맑스주의의 인식론을 연구하라…” 이러한 인식론은 다음처럼 진행합니다. 하나의 주어진 개념적 체계를 취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이 체계가 무엇을 사고할 수 있는가? 무엇을 사고할 수 없는가? 이 체계의 내적 한계들은 어디에 있는가? 단적으로, 어떤 임시변통도, 어떤 브리콜라주(bricolage)도 [허용될 수] 없는 거죠. 국가, 정치, 시민권, 그리고 민족성에 대한 시민권의 관계가 맑스주의 이론에게는 미래의 대상들이 아니라, 아예 접근 불가능한 대상들이라는 것을, 우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거스르면서까지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대상들은 단지 잠정적인 맹목점들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맑스주의 이론화에 있어서의 절대적 한계들입니다. 많이 비난되는 맑스주의의 경제적 환원주의 때문이 아닙니다. 맑스주의의 아나키즘적 요소 때문입니다.
저는 아나키스트가 아닙니다. 반대로, 저는 맑스가 너무 지나치게 아나키스트였다고 생각하고, 맑스 이후의 맑스주의자들이 국가의 사멸이라는 꿈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맑스는 바쿠닌보다 자기가 더 아나키스트적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바쿠닌이 “국가를 타도하자!”고 외치며 국가를 말로만 와해했던 반면, 맑스는 계급투쟁을 활용하면서, 국가를 현실에서 와해하려는 목표를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 다 알고 있지요. 국가의 사멸이라는 담론은 전능한 국가를 옹호하는 실천을 출현시켰습니다. 저는, 국가는 사실 사회적인 기정사실(a social given)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라고 말하고 싶고, 국가는 이질적 요소들의 결합된 작용의 산물--풀란차스가 설명했듯이 하나의 응축, 결정화라는 의미에서--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1/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의 L'Etat, le pouvoir, le socialisme (Paris: PUF, 1981)을 보라.} [이러한 이질적 요소들 가운데에는] 한 편, 경제적 권력이 있고, 다른 한 편 상징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이 있습니다. 맑스주의는 상징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이 경제적 활동의 단순 반영이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가지고 “포획”하려고 했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무대”, 경제적 인과성만큼이나 강력한 또 다른 인과성입니다. 역사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인과 연쇄가 각각 상대편의 무대 위에서 효과들을 생산한다는 것을 관찰합니다. 경제적 경향들은 자신들의 압력을 발휘하지만, 결코 순수하게 경제적인 연역으로부터 기대되는 효과들을 생산하지는 않습니다. 경제적 경향성들은 오직 이데올로기적 힘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효과들을 생산합니다. 반대로, 세계는 관념들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데올로기적 힘들은 그 자체로 효과들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들이 계급투쟁의 몇몇 이음매들에 기입되기 때문에 효과들을 생산합니다. 경제적 원인들을 부인하는 어떤 맑스주의가 오류인 것만큼이나, 이러한 인과적 복잡성을 환원하는 어떤 맑스주의도 필연적으로 오류입니다. 저는 우리가 연역에 의해 체계적으로 작업하는 것보다는 미묘한 진단적 절차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적으로, 맑스주의는 시민권에 대한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맑스주의는 국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민권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개인적 측면과 집단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봉기적” 측면과 “구성적”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권은 국가에 대한 대립(예컨대 시민불복종)과 국가의 민주화, 제도들에 의한 권력 통제 사이의 항상 불안정한 균형입니다. 하지만 맑스주의는 브로델의 친구이자 대화자인 임마뉴엘 월러스틴의 작업을 통해서 세계-경제를 이해합니다. 사실, 맑스 자신에게서 가장 강력했던 관념이 정확히 그것이죠. 자본주의적 발전은 세계적 과정이며, 세계라는 규모에서 연구되고 형태적으로 묘사되어야 한다는 관념 말입니다. 물론 오늘날 “세계화”라는 용어는 도처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이 관념은 맑스주의에게 어떤 발본적 절단도 표시하지 않습니다. 오늘 나이가 50세에서 60세에 이르는 우리는 알제리 독립운동과 베트남 사람들의 투쟁에 연대했던 반제국주의 운동들의 시기에 교육을 마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정치가 자본주의 세력과 반자본주의의 세력에 의해 결정되는 한, 세계 정치의 영역은 세계-체계라는 것을 우리는 오래전에 배웠지요.{주2/ 개론을 위해서는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Historical Capitalism (London: Verso, 1983)을 보라. 월러스틴의 이러한 관념의 완전한 전개는, The Capitalist World-Economy, 1730-1840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9); The Politics of the World-Econom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The Modern World-System, vol. III: The Second Era of Great Expans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1730-1840s (New York: Academic Press, 1988)을 보라.}
슈브리에: 가장 광범위한 차원에서, 시민권이라는 질문은 오늘 우리가 마주한 두 가지 현상에 답합니다. 한편, 우리는 구(舊)민족국가들 안에서 인종주의의 창궐을 목격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너무 놀라게 할 필요는 없는데, 왜냐하면 선생님 자신이 민족국가의 인종주의적 구성요소를 식별하셨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리가 윤곽을 그린 시민권의 재정의가 시급합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서구 유럽 모델의 헤게모니가 사회정치적 규제의 꽤 상이한 원칙들로부터 자본주의적 발전의 규범을 분리함에 따라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맑스는 자본주의와 민족적 국가를 알았지만, 기업가적 국가는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국가의 새로운 형상을 보고 있는데, 이 [기업가적] 국가는 종종 반(反)민주적이거나 전(前)민주적인 형태들을 갖고, 겉으로 보기에는 주민들의 동의를 포함한 채 기능합니다. 저는 특히 아시아의 용들[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 유럽의 모델은 매우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시민권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발리바르: 1980년대 초 이전에 제가 시민권에 대해서 할 말이 별로 없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두 요소들을 결합하면서 시민권에 대한 성찰을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요소는 제 개인적인 독창성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아랍 출신의 프랑스 남자들과 여자들을 일컫는 뵈르들(beurs)의 1983-84년 청년 운동이었습니다. 이들 청년들이 호소했던 가치들과 그들이 활용했던 용어법은 근본적으로 시민권의 가치들과 용어법, 곧 자유와 평등의 연결(conjuncture)에 적합한 결합이었는데, 이 경우 자유는 이른바 “차이에 대한 권리”라는 형태를 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이러한 차이에 대한 권리가 결코 배타적이거나 추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공적 공간에서의 인정에 대한 요구로 제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는 실존한다”고 말하고 있었지요. 이는 “우리는 공화적 정치 체계를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화 안에 스스로를 밀봉하길 원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문화”를 타자들과의 교통의 표현이자 호출(interpellation)로, 도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때 근시안적인 맑스주의자라면 그와 같은 모든 선언들은 정치적 환상, 이데올로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시민권의 용어들로 표현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또 다른, 더 정확하고 더 과학적이라고 가정되는 언어로 재번역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얻을 것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두 번째 결정적인 요소는 공산주의에 대한 성찰 및 세계 일반이 아닌 정확히 프랑스와 같은 국가에서 공산주의가 행한 역사적 역할에 대한 성찰에서 유래합니다. 저는 이러한 성찰이 “호민관 기능”{주3/ 이 관념은 조르주 라보(Georges Lavau)의 저서 A quoi sert le parti communiste français? (Parsi; Fayard, 1981)에서 가져온 것인데, 이 저서는 다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에 준거한다.}이라는 마키아벨리의 통념을 취하고 그것을 몇몇 조건들과 함께 계급투쟁 및 노동자 운동 전체로 확장하면서, 시민권의 재정의를 포함해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사실상, 노동자 운동은 프랑스에서 아나코-생디칼리즘적 전통에 의해 영향 받은 공산주의적 언어를 가지고, 평민적 또는 인민적 호민관으로서의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고, 또한 영국에서는 완전히 상이한 언어를 가지고 그렇게 했지요. 제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인데, 체계는 계급투쟁의 압력 하에서 집단적 참여와 정치적 의식의 형태를 창조함으로써, 지배 계급의 구성원이 아닌 몇몇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지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게임 같은 것을 통해--정치적인 것의 민주적 제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게임 안에서 당신은 혁명 담론을 유지합니다만, 당신의 목표는 개혁(reform)이지요. 당신은 어떤 수준에서 평등한 자들로 간주될 권리와 함께 몇몇 물질적 이익들(퇴직, 보건의료)의 인정을 강제합니다. 맑스는 이러한 담론을 경멸했습니다. 맑스는, 자신들이 평등하다고 노동자들이 믿는 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기만하는 방식이고 노동자들을 매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맑스는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권리들 및 존엄의 박탈 속에서, 집단적 무력함으로의 환원 속에서, 그와 같은 [혁명을 말하지만 개혁을 목표로 하는] 담론의 전적인 부재가 절정에 도달해 있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러한 점에서 봤을 때,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하지 않고 계급투쟁의 테마와 자유(liberty)의 테마를 결합하고 싶은 유혹, 하지만 오히려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 확보되었거나 강제되었던 시민권의 정도도 결코 계급투쟁의 종별적 형태들 바깥에서 확보되거나 강제되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계급투쟁은 그 자체로 정치적 투쟁이지 단지 사회적 투쟁이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두 가지 테마를 결합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습니다--저는 그 유혹을 느꼈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경계들>(1992)을 썼지요.{주4/ Etienne Balibar,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Paris: La Découvert, 1992).} “노동자들은 본성상 정치적”이라는 엥엘스의 말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모델을 둔 것이고, “노동자들은 본성상 시민들”이라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저는 시민권이 중요한 테마라고 부단히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저는 더 이상 그것이 정치의 문제의 유일한 측면이라고 확신하지 못합니다. 폭력, 동일성의 갈등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의 모든 결합은 우리가 다른 차원들을 사고하도록 강제합니다. 사회적 시민권과 정치적 시민권이라는 문제와 더불어, 저는 시민공존(civility)의 문제가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두 가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지요.{주5/ 역주 ― 문장들이 약간 복잡하기 때문에 도식화시켜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여기서 발리바르의 말은, <민주주의의 경계들>(1992)에서는 (자유에 관련된) ‘해방의 정치’와 (계급투쟁에 관련된) ‘변혁의 정치’의 결합을 추구했고, 그러한 방식으로 시민권 테마와 계급투쟁 테마를 결합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다시 ‘시민공존의 정치’를 추가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말로 읽힌다. 시민공존의 정치가 명시적으로 이론화되는 것은 1997년에 출간된 <대중들의 공포>에서다.}
슈브리에: 맞습니다. 정확히 민족국가의 모델들에 관련된 새로운 상대주의와 세계-경제에 의해 유도되는 국가의 새로운 형태들이 우리로 하여금 동일성들의 문제를 더욱 발본적으로 제기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캐서린 데이비드: 그런데 우리는 동일성의 질문이 대략 두 가지 방식에 모델을 두고 있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한 쪽에는 앵글로-아메리카적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동일성을 상속된 품목들(피부색, 사회계급 등)의 어떤 수집목록과 함께 일체를 이룬다고 인식합니다. 다른 쪽에는 전통적이고 변증법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 경향은 동일성을 하나의 과정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동일성의 질문을 정신분석학에서의 주체라는 기초 위에서 재개하고 소수자들의 문제가 간주체적 차원에서 다시 포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미리 확립된 표지들은 가장 강제적인 것도 아니고 가장 활발한 것도 아닙니다.
발리바르: 어떤 경우이든 간에, 동일성이라는 질문은 객관적으로 어려운데, 왜냐하면 그 질문은 동일성에 대해 찬성하는 담론에 의해서도, 그것에 반대하는 담론에 의해서도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편재해 있는, 문화주의인가 보편주의인가라는 추상적 이원대립은 완전히 불모적입니다. 제가 인용하고 싶[은 철학자이]고, 또 “동일성”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성”과 “되기[생성]”라는 용어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데에서 그 엄청난 지혜(intelligence)가 발견되는 들뢰즈의 작업들조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성들의 분해 또는 적어도 동일성들의 유동성이라는 환상에 의해 귀신들린 듯이 괴롭힘을 당합니다. 실로, 당신이 그 실존하는 모델들을 상기시켰던 문화적이거나 종족문화적인 동일성들이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유일한 것들은 아닙니다. 종교 그 자체가 정확히 문화는 아닙니다(Bildung이라는 의미에서건 Kultur라는 의미에서건 간에 말입니다). 민족성 역시 문화가 아니죠. 종교와 민족성은 상징적인 것에 가까운, 객관적이고 주체적인 동일성들입니다. 반면 문화는 대개 상상적인 것과 관련되지요. 이를 전제로, 어떤 주어진 집단이 왜 다른 집단들에 대해서 지배적인가라는 질문, 또 왜 그 집단이 다른 집단들을 길들이는(domesticating) 데에 성공하는가라는 질문은 역사적 질문입니다. 연역적 답변을 줄 수 없는 것이지요. 저는 먼저, 이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각들은 종족중심적 편견들에 의해 항상 왜곡되어 있다고 여기고 싶습니다. 동일성들의 지정은 완전히 [타자를 향해] 투사적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동일성은 타자 안에서는 보이지만 자기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요.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동일성이 권력화(empowerment)의 슬로건이 되는 국면으로 이행한 후일 텐데, 이 경우 동일성은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으로, 또는 동시에 둘 다로 변합니다. 이것의 극단적인 형태는 자기-인종화(self-racialization)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동일화의 과정에 대해 말씀하실 때, 당신과 상당히 동의합니다. 실로 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항상 동일화의 현상들이며, 그것들은 종족적 동일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디아 타지: 선생님은 동일성이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방식에 위기라는 바로 그 맥락이 영향을 끼친다고 보지는 않으시는지요? 동일성이라는 질문과 육체라는 질문 사이엔 어떤 유비가 있지 않을까요? 아무도 자신이 아프지 않은 한은 건강이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에서 말이죠.
발리바르: 해체(deconstruction)와 유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위기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하면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가? 그것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 아는가? 물론, 고통, 불안, 질병은 소리 없이 표현되거나 폭력적으로 표현되고, 그것들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사회적이거나 집단적인 삶의 영역에서, 그리고 그것의 문화적이고 미학적인 차원들에서,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그 불안을, 어떤 언어로, 어떤 이유에서 표현하는지 따위를 묻도록 강제됩니다.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이러한 진단들이 정식화되는지도요.
확실한 것은 “정상성”은 동일성들의 위계화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관련된 집단의 동의와 함께 정확히 정상성을 제조하는--예컨대, 보편 종교들이나 민주적 세속주의와 같은--중대한 헤게모니적, 합리적, 정치-철학적 메커니즘들은 전체주의적인 메커니즘들이 아닙니다. 만일 모든 지배가 전체주의와 혼동되어 있다면, 당신은 결국 그 둘 앞에서 어쩔 줄 모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메커니즘들이 위기로 들어설 때, 역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불안정하게 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위기와 유기적 국면들의(또는 “정상성”의 국면들의) 순환적 이어짐이 더 이상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인식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계화 그 자체는 종교적 보편성이 여전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그것은 부단히 위기에 처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을 깨닫도록 우리를 강제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동시에, 세속적 보편성--곧 민족국가를 원칙으로 하고 권리, 과학, 교육 및 시민권이라는 수단에 의한 개인들의 형성을 원칙으로 하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이거나 법-정치적인 보편성--역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단적으로, 이 두 위기 중 하나가 시작 중이고, 다른 하나가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들이 겹쳐지고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를 부인함으로써 다른 하나를 피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이 붕괴하는 바로 그 만큼 종교적인 것이 복귀하는 것을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반대로 민주적 근본주의로 돌아서는데, 왜냐하면 종교적인 것으로부터의 위협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개인적 동일성이라는 문제의 중대한 측면은 확실히 이러한 메커니즘들이 무엇보다도 집단적 동일성들의 구축을 위한 메커니즘들이라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보수적으로 보일 위험을 무릅쓰고 저는, 동일성들의 절대적 부유(fluctuation),{주6/ 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Minneapolis and Londo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8).} 동일성들의 아나키는 전체주의나 절대적 강제만큼이나 관련 주체에게 살아갈만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제 견해로는, 동일화의 메커니즘은 항상 똑같습니다. 민족적 또는 의사-민족적 공동체의 이상화가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살벌하고 가장 야만적이거나 가장 억압적인 형태들이 보통 “애국주의(patriotism)”와 연결된 이상주의(idealism)를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애국주의, 민족주의, 종족중심주의, 문화주의의 현상들을, 마치 그것들 모두가 모든 곳에서 동일한 효과들을 생산한다는 듯이, 한데 융합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 단 번에 영원히 그어질 수 있는 구분선이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이제 무엇보다도 역사가들뿐만 아니라 정치 철학자들 가운데에서 보이는 놀라운 것은, 그들이 모두 동일한 본질주의적 추론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곧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다른 것이며 두 가지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이런 관념은 특히 프랑스에 널리 퍼져있는데, 프랑스에서 애국주의는 그 자신의 보편주의로 물들어있고, 그것이 “인권의 아버지 땅”에 대해 갖고 있는 연결에 의해 물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의 정치적 성찰에 재료를 제공하는 것은 이론적 도식이 아니라, 구체적 환경에 대한 분석입니다. 왜냐하면 구체적 환경이 헤게모니적 동일성들을 결정하는 것이고, 해방적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와 억압적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 사이에 구분선을 긋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튀세르가 말했듯이, “모든 것은 조건들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월러스틴이 즉각적으로 세계적인 브로델의 모델들을 채택한 것은 상당히 올바른데, 그 모델들 안에서 정치 형태는 자체로 고립되어 연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몇몇 구체적인 조건들의 산물인 한에서만 연구됩니다. 유럽적 유형의 민족국가는 단지 몇몇 조건들 하에서만 세계체계의 피지배 지역들에 스스로를 강제할 수 있었던 반면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있었던 정치 형태입니다. 그것은 “불균등 발전”에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요. 반면 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의 정치적 교의는 한 곳에서 가능하면 모든 곳에서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마도 오늘날 상황은 역전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족국가가 “주변적”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슈브리에: 그러나 세계화라는 맥락에서 민족국가의 형태가 재활성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도시국가들, 지역적 현상들의 강력한 복귀를 목격합니다. 오래된 형태들이 전개됨에 따라 모든 종류의 새로운 실체들(entities)이 함께 엮이고 있고, 아시아에서 많이 발전되어온 새로운 차원들이 그렇게 되고 있지요. 상관적으로, 국가의 정의는 객관적 전위(displacement)를 경험하게 되는데, 국가라는 통념은 점점 더 민족이라는 통념으로부터, 그렇다고 완전히 무로 환원되지는 않으면서, 멀어지고 있어요. 하나의 국가임이 틀림없는 싱가포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로스앤젤리스라는 예를 취할 수도 있는데, 거기에서 중국-“미국”적 공동체는 심지어 미국적 민족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참여도 열망하지 않으면서, 미국 민족 영토의 어떤 곳만큼이나 홍콩과 싱가포르와의 경제적 네트워크 안에서도 기능합니다. 이 공동체의 동일성은 용어의 문화적 의미에서 미국적인데, 적어도 미국적 문화가 잡종화의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또 현실적으로 이 공동체는 전혀 민족국가의 형식적 셰마 안에서 스스로를 구성하지 않고, 경제적 이해들과 문화적 동일화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스스로를 구성하지요. 이것은 동일성들의 문제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는 서양에서 우리의 것인 철학적 언어를 가지고 이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수단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까? 서양적이자 일차적으로 유럽적인 시민 모델은, 타자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이상과 함께, 우리가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게 해줍니까?
발리바르: 당신에게 대답함에 있어 제가 갖는 곤란은 이주에 관해, 그리고 민족국가의 위기에 관해 자신의 관점들을 표현하는 모든 사람들처럼, 저도 단지 현재 관찰할 수 있는 경향으로부터 판단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점 때문에 생깁니다. 그러나 모든 경향은 “반경향들(counter-tendencies)”을 불러냅니다. 어떤 하나의 경향도 결코 완전히 실현되지 않는데, 거의 이것은 어떤 “유물론자”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 법칙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제가 어떤 특권화된, 진단적이거나 예상적인 도구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작업은 [다른 사람들의 작업 이후에] 이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고, 그것은 해체주의적, 거의 “탈무드적”이며, 그것은 우리 동시대인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적용하는 범주들에 관여합니다. 이 점에서 공론을 놀라게 하는 것은, 캘리포니아의 아시아 공동체들이 거의 포스트민족적 시대에 가있다는 사실인데, 그것은 그 공동체들이 위치해 있고 그들을 결정하며 그들에게 기능을 할당하는 그 공간이 더 이상 미국적 민족공간이 아니라 관(貫)-태평양 공간(trans-Pacific space)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이는 그들의 독특한 위치가 세계의 미래를 예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적 동일성들이 더 이상 헤게모니적이지 않으며, 더 이상 공동체 유대들의 체계를 “규제”하는 유일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많은 표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슈브리에: 선생님이 어떤 근본적인 재분배를 고려하기로 선택하신다고 해도, 종족정치적 동일성이 또한 문제가 되는 유럽적 차원은 여전히 존속합니다.
발리바르: 최근에 저는 “새로운 시민권”이라는 테마에 대해 프랑스-아랍 사회학자들 및 투사들과 함께 한 논쟁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새로운 시민권”이라 함은 국가의 틀을 흘러 넘치고, 따라서 또한 순수하게 민족적 틀도, 그것의 아래와 그것의 위로 동시에 흐르면서 흘러넘치는 시민권을 말합니다.{주7/ Saïd Bouamama, Albano Coreiro, and Michel Roux, La citoyenneté dans tous ses états: de l'immigration à la nouvelle citoyenneté (Paris: l'Harmattan, 1992).} 한편, 당신은 프랑스어로 연합적 운동과 시민사회라는 용어들로 번역되는 Bürgerinitiativen[시민주도, 시민발의]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당신은 유럽적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 때문에 저는 유럽적 시민권을 이론화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곧, 유럽적 시민권은 가능한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하며, 그것의 반대자들은 어디에 있는가?{주8/ 브루노 테레(Bruno Theret)에 의해 편집된 저서, L'Etat, la finance et le social: Souveraineté nationale et communauté européenne (Paris: La Découverte, 1995)를 보라.} 유럽적 시민권의 반대자는 각 유럽 국가의 민족주의입니다. 그리고 저는 만일 민족주의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기존의 상태에 만족한 채 남아있다면, 우선 그 결과는 유럽적 수준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이고,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은 실패를 향해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애썼습니다. 저는 1980년대에 그랬듯이 여전히 이주자들의 선거권들에 대해 저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유럽적 수준에서 공적 또는 정치적 영역의 문제가 유일하게 시민권의 문제인지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심지어 시민권을 선거권과 신분증이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저는 “그람시적”이라고 잘못 일컬어지는 진부함을, 문제는 단지 정치적일뿐 아니라 문화적이라고 말하면서 습관적 보충물을 추가하는 데에 놓여 있는 진부함을 피하고 싶습니다.이 경우, 철학자는 브리콜라주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오래된 개념들을 새로운 형상화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현재적으로 저는 문화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함께 가지 않는다는 관념을 가지고 시작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우리가 다뤘던, 관-태평양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캘리포니아-아시아적 공동체들의 사례로 되돌아가 봅시다. 이제 아시아적 문명은 세계역사가 생산해 낸 가장 강력한 문명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됩니다. 그것은 종별적인 사회적 유대의 상징들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항과 내적 일관성의 도구인 것은 나중에 적응과 경제적 팽창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언급은 역사를 통해 모든 종류의 공동체들에 다 적용되는 말입니다. 1930년대에 로레인에 살던 카톨릭 교도인 폴랜드 광부에게 진실이었던 것은 태평양 지역에서 유통의 국제화라는 틀 속에서 이주하고, 또 그렇게 해서 미국적 공간의 어떤 폐쇄들을 파열시켜 열어내는 중국인에게도 역시 진실이거나 또는 더욱 진실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문화적”이라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할 것을 심지어 더욱 필수적으로 만듭니다.
근본적으로, “문화적”이라는 말은 한 집단의 생활양식들과 그 집단의 자기-인정(self-recognition)의 거울인 표상들 사이의 긴밀한 적합성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문화적 거리”니 “문화적 위기”니 “문화적 폭발”이니 따위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요. 이제 저는 그 길이 어디로도 귀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론적 브리콜라주를 위해서, 대신 저는 라캉의 세 가지 기능들에 의해 영감을 받은 모델을 사용하려고 시도합니다. 실재적인 것, 상징적인 것, 상상적인 것 말입니다. 만일 실재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이라면, 사회적, 인간적 집단들의 재구조화를 위한 어떤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과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계급투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만, 계급투쟁은 상대적으로 더욱 원경(遠景)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날 “실재적인 것”의 중대한 현상은 세계화인데, 이는 더욱 더 많은 소수자들이 있다는 것, 집단들의 집단적 이해들은 더 이상 국가들 내에 주로 위치해 있지 않고, 더욱 넓은 공간 안에 있으며, 그것들은 강력하게 재구조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관민족화에 잘 적응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반응들을 보일 것을 예상할 수 있지요.
다른 한편, 이른바 “문화적” 현상들이 있는데, 이는 제가 볼 때 구분들이 극히 중요해지는 곳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미국화에 대해 말할 때, 가장 강력한 마찰의 지점들은 문화적 수준에 위치해 있지 않지요. 왜냐하면 유럽적 문화가 있듯이 미국적 문화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슈브리에: 이들 마찰의 지점들이란 미국인들이 대중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합니까? 대중예술(pop art)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및 미디어 규범과의 동일화에 의해 결정된 어떤 생활양식 말입니다.
발리바르: 맞습니다. 제 주머니 책 라캉에서 그것은 제가 상상적인 것, 동일화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살벌한 것은 상상적인 것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상징적인 것으로부터, 곧 인간 주체의 정의를 위한 근본적인 표준으로부터 오는데, 그것은 항상 보편적인 것을 자임하며 결코 고립해서 실존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저는 “유럽의 경계들”에 대한 텍스트를 썼는데,{주9/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1995.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 La crainte des masses>(Paris: Galilée, 1997)에 재수록.} 당시 영국에서는 뜨겁게 논쟁된 재판이 막 종결되었을 때였지요. 6세와 7세의 두 어린아이에 대해, 그 보다 더 어린 세 번째 아이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습니다. 그 텍스트에서 저는 어떻게 이 재판이 인간 주체성에 대한 특정한 인식 속에 명시적으로 기입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재판이 어린이란 무엇인가, 성인이란 무엇인가, 교육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처벌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 속에 명시적으로 기입되어 있는지를 강조했는데, 그런 질문들은 영국의 법적 전통과 프랑스의 지배적인 전통이 [상호 간의] 절대적 몰이해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제가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상징적 차이 또는 차별적인 문명의 특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저는 [상이한] 법적 체계들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관념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동일한 유형의 다른 예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편 앵글로-아메리카적 인식과 다른 한편 프랑스-독일적 인식이 있는 형사법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상품유통에 관한 법을 통일하는 것은 항상 가능할 것입니다. 반대로, 서로 대립하는 두 전통 속에서 “범죄들”과 “처벌들”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보편적인 것의 한 복판에 균열들이 있는데, 이 균열들은 이주, 국제결혼(mixed marriage), 다문화주의 따위의 문제들에서 “문화적 거리”라는 문구가 갖는 의미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이지요. 왜냐하면, 이러한 [상징적 균열들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갈등들이 화해불가능한 지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념화의 두 번째 수준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성들 간의 관계들이 어떻게 정의되는가라는 질문이 절대적으로 결정적일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럴 듯합니다. 남성적 지배가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다고 하지만, 세계에는 물론이고 유럽 안에서조차 성에 대한 단 하나의 인식이나 일의적인 정의는 없다는 것이 분명하지요.요컨대, 동일성들의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들 가운데 하나라면, 이는 그 문제가 동일한 수준에 위치해 있지 않은 질문들을 작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사회정치적 위계(예컨대 국가)에 자신을 맞추는가? 어떻게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의식적으로, 스피노자가 말한 바 있듯이, “무엇이 분노를 일으키는가”라든지, 또는 무엇이 잔혹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희생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가를 아는 것과 같은 상징적 질문들에 대해서 자신의 주체적 위치를 선택하는가?
슈브리에: 많은 관찰자들은 문명의 위기라는 관념 또는 헌팅턴처럼 문명들의 갈등(타자들, 특히 아시아적 타자들과 대립하는 서양)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면서, 선생님이 구분한 두 수준을 융합합니다.
발리바르: 이와 같은 것들은 모든 언어들에서, 심지어 가장 가까운 언어들 안에서조차, 동일한 방식의 울림을 갖지 않습니다. 예컨대 저는 해방, 변혁, 시민공존(civility)이라는 세 가지 정치적 개념들에 대한 텍스트를 썼습니다. 시민권이 아니라 “시민인륜”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 개념이 직접적으로 국가의 실존이나 국가의 특수한 형태들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해방(인권선언, 미국의 권리장전 등)도 변혁(맑스적 방식으로는 계급투쟁, 푸코에게는 해방의 전략들)도 아닌 어떤 정치의 실천(a practice of politics)에 연결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지요. 저는 이 텍스트의 발췌본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기 위해 넘겨줬는데, 이탈리아어에서 씨빌리따(civiltà)는 “시민공존(civility)”과 “문명(civilization)”을 모두 번역합니다. 그리고 실로 씨빌리따라는 용어가 특히 흥미로운 까닭은, 그 문제가 제도들과 사회세력들 사이의 균형이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어떤 예술(art)의 활용이라는 문제까지 가리키는, 르네상스로부터 유래하는 어떤 전통을 그것이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행사와 창조의 실천 말이지요.
저는 “문화”에 대한 토론들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이해하는 것이 씨빌리따의 문제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문화는 중앙화된 교육과 함께 가는 관념이고, 지식인과 무지자의 위계와 함께 가는 관념, 개인적 기호의 형성에 대한 국가 통제의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체계와 함께 가는 관념,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시장 및 따라서 문화상품들의 소비와 함께 가는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별되는 민족 전통들이 있고, “문화”라는 단어를 둘러싼 매우 폭력적인 충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와 문화적 단일성은 오늘날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장에서 인정(recognition)의 매우 강력한 기호들입니다. 그러나 그 영역에서 그것은 문명의 문제도 아니고 예술의 문제도 아니지요(조형예술이건, 문학예술이건, 정치예술이건 간에 말입니다).
슈브리에: 동일성의 고정화들은 상징적이고 기념비적인 표상들을 추구합니다. 민족주의는 항상 과시적인 기념물들을 생산해 냈습니다. 적어도 다다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의 전복적 차원은 이러한 상징들 및 고정화들과 유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동일성에 대한 사회적이거나 성적이거나 또 다른 모든 상이한 유희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모델들 안에서 동일성에 대한 유희의 어떤 활용을 봅니까?
발리바르: 나는 그 점에 있어서 여전히 매우 브레히트적이거나, 또는 오히려 브레히트적 셰마를 이중적 의미에서 재도입하고 싶습니다. 첫째, 동일화나 소격[거리화, distancing]이라는 질문은 단지 연극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예술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 그것은 단지 스펙터클과 관객의 문제가 아닙니다. 브레히트 및 브레히트에 대한 알튀세르의 해석들은 관객들이 배우가 구현하는 인물과 반드시 동일화하는 식으로 배우의 연기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오히려 연극적 사건 그 자체가--어쨌든 서양 전통에서는 그렇습니다--분리(dissociation)와 이미지의 원거리에서의 현시(現示)와 그리고 단일한 시나리오 또는 의식의 “순간” 속에서의 배우와 관객의 공유된 함축을 동시에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배우는 그/녀가 함축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보여주지요. 관객이 그와 마찬가지로 함축되어야 한다는 것은 순수하게 소비주의적이지 않을 실천으로부터 우리가 기대해 볼만한 것입니다. 이론가들은 항상 교통의 양식으로서의 예술이란 폭력 또는 불안 또는 공포(terror)의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해왔고, 질문해야 되는 것은 왜 그러한 활동이 필수적인가, 왜 가장 먼 고대로부터 존속해 왔지만 부단히 재발명되고 혁명화되는 형태 안에서 그러한 활동이 필수적인가라고 말해왔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정확히 예술이 문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곧 예술은 문화적 보충물, “사회적 유대”를 위한 인공보조물(prosthetic)이라는 의미에서의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슈브리에: 선생님이 지시하고 있는 것은 예술적 제도, 제도화된 예술작품이 아니라 예술의 돌발, 예술적 사건, 예술이라 불릴 사물의 발명과 같은 것이로군요.
발리바르: 그것은 예술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대상으로서의, 생산물로서의, 또는 제도 내의 실천으로서의 예술은 여전히 사건을 창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집단과 새로운 출발 사이, 공동체와 불화(discord) 또는 적어도 논쟁(debate) 사이의 모순입니다.
데이비드: 문화제도와 문화사업의 힘이 이토록 강력한 오늘날, 이런 [예술의] 돌발이 어디에 있습니까?
슈브리에: 선생님과 같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철학자들이 예술에 대해 말하게 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군요. 이미 푸코는,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예술적 제도가 아니라 반대로 주체화의 과정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발리바르: 예술의 생산에는 우리를 매혹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술들의 종합의 불가능성과 각 예술이 자율적이 되지 못하는 불가능성과 같은 것 말입니다. 예컨대, 영화와 연극은 매우 가깝고 동시에 기능하는 방식 상 서로 대립해 있는데, 이는 각자가 상대편의 결여라고 말해질 정도로까지 그렇습니다. 몇 년에 걸쳐서 우리는 소외의 테마에서 타자성의 테마로 움직여 왔습니다. 기호는 뒤집어졌지요.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을 소외시키는 문제 또는 자신의 소외를 극복하는 문제가 아니라 타자성으로부터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아는 문제입니다. 포스트-니체적인 전통 전체--특히 저는 들뢰즈의 <메저키즘 Presentation of Sacher Masoch>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는 타자성과 유희해야 한다고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누가 타자성과 유희하는지, 어떻게, 그리고 어떤 수단들을 가지고 유희하는지에 대해 제기됩니다. 그 수단들은 필연적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재현(representation)의 수단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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