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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비판 기능과 유희 기능의 종합을 위한 성찰: 알튀세르와 블랑쇼를 중심으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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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비판 기능과 유희 기능의 종합을 위한 성찰: 알튀세르와 블랑쇼를 중심으로

marxpino 2021. 6. 27. 13:35

이 글은 <안과밖> 2019년 봄호에 출판되었던 글입니다. 여기 공개하는 판본은 편집 이전 본이니, 논의나 인용은 출판본으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예술의 비판 기능과 유희 기능의 종합을 위한 성찰

알튀세르와 블랑쇼를 중심으로

 

최 원(단국대)

 

 

이 글은 이른바 ‘정동 이론’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예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특히 예술의 비판 기능과 유희 기능의 종합이라는 오래된 난제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를 성찰해 보기 위한 글이다. {주1/ ‘정동 이론’에 대한 비판으로서 우리가 준거로 삼는 논의에 대해서는 최원 [‘정동 이론’ 비판: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의 쟁점을 중심으로], {문화/ 과학} 통권86호(2016 여름)를 보라. 이 논문은 최원, 『라캉 또는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적 반역과 반폭력의 정치를 위하여』(난장, 2016)에 부록으로 재출판됐는데, 단행본에 실린 판본은 내용은 거의 같지만 추기가 붙어 있고 몇몇 표현들이 수정됐다.} 우리는 논의의 쟁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우선 ‘정동 이론’을 옹호하는 관점에서 동일한 질문들에 답하려고 시도한바 있는 심광현의 「영화적 미메시스와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주2/ 심광현 [영화적 미메시스와 이데올로기: 브레히트적 영화와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현행화를 중심으로], {문화/과학} 통권92호(2017 겨울).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논의로는 다음이 있다. 김성호 [미학에 이르는 길: 스피노자와 예술], {안과밖} 통권43호(2017 하반기). 여기서 우리가 김성호의 논의를 직접 다룰 수는 없지만, 이 글 전체는 김성호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만 이 자리에서 지적하자면, 알튀세르는 예술이 과학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 한 것이 아니라 예술과 과학은 상이한 실천이라고 말한 것이다. 반면 김성호 자신은 알튀세르의 논의를 과학을 향한 목적론적 예술관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도르노의 ‘현현(apparition)’ 개념을 통해, 곧 “현상의 총체성을 깨뜨리는 이 중지의 순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마치 약속처럼, 철저히 부정적인 형식으로 출현하는 것”(128면)으로서의 ‘현현’ 개념을 통해 예술을 부정신학적 초월성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실천이라고 보는 신학을 향한 목적론적 예술관을 펼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김성호 자신이 46번 각주에서 말하듯이 현현이라는 용어는 그 신학적 함의(“고대사회에서의 신의 출현의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알튀세르(Louis Althusser)를 따라 예술이 정치, 과학, 철학 등 다른 실천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한 블랑쇼(Maurice Blanchot)를 따라 예술적 유희의 종별성(specificity)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다. 라캉(Jacques Lacan),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심지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까지도 그 길에서 우리의 길동무가 되어줄 것이다.

 

 

1. ‘정동 이론’ 비판에서 예술의 문제로: 심광현의 비판에 답함

 

우리는 정서(affect)란 ‘신체의 변용과 그것에 대한 관념’을 지칭한다는 스피노자의 정서 개념에 기초해서 볼 때, 정서란 알튀세르가 이론화했던 바의 이데올로기와 다른 것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광현은 이를 뇌 과학에 준거해 비판한다. 심광현은 “이데올로기와 정동[affect]은 …… 양자택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1차 의식에 해당하는 정동・정서・기분은 신체의 변용을 즉각 감지/판정하는 ‘뇌간-시상하부’(파충류의 뇌)와 ‘변연계’(포유류의 뇌)의 회로의 연결망 속에서 발생”하는 반면, 이데올로기는 “1차 의식이 타당하지 못한 언어적・비언어적인 표상・관념(신피질, 즉 인류의 뇌)과 결합해 형성되는 고차 의식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양자는 “발생 층위”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주3/ 심광현 [영화적 미메시스와 이데올로기] 390~391면. 하지만 이렇게 ‘정동’을 이데올로기와 분리시키면서 그것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은 심광현에게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정동이론에 일반화 되어 있는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동이론은 신체를 관념으로부터 부단히 분리시킨다.} 뇌 과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런 비판에 대해 뇌 과학의 관점에서 답할 수 없다. 다만 나는 뇌 과학이 정말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사용하는지, 뇌 과학이 정말 ‘이데올로기’란 신피질에서 발생하는 고차 의식이라고 주장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뇌 과학의 어떤 논의와 유비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심광현 자신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물론, 뇌 과학의 어떤 개념들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역시 뇌 과학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므로, 여기서는 심광현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만 간단히 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마도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 자신의 관점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심광현은 “이데올로기의 작동 층위와 정동의 작동 층위[는] 서로 다르다”고 말하면서, 기본적으로 알튀세르 또한 이 문제를 마찬가지로 봤다고 주장한다.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가 군주 내의 심급 가운데 하나로 거론한 ‘여우’를 “더할 나위 없이 신체이며 신체의 해방된 역능”이라고 규정할 뿐더러, “이 신체의 무의식적 역능”으로서의 여우는 “오이디푸스 속에서 환상들 …… 의 하나의 배치 형태(configuration)로 ‘묶이지’ 않는다”고 서술하는데, 이런 진술이야말로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의 심급(오이디푸스적 배치 형태)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의 ‘정동’의 심급(신체의 무의식적 역능)을 가정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광현의 이런 주장은 쉽게 반박될 수 있다. 왜냐하면 알튀세르는 심광현이 인용하는 바로 그 구절에 조금 앞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모든 것은 군주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들 …… 에 대해 유지하는 거리에 관련된다. …… 우리는 이 제어의 ‘창조자’의 수수께끼 같은 형상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바로 여우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켄타우르스의 첫째 형상 속에서) 인간이나 짐승처럼 ‘도덕적’이거나 아니면 ‘강력적’(强力的/fort)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야수적인 지성(intelligence), 즉 무의식적인 지성, 지성 그 자체인 책략 속에서 군주의 지성을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지성 이상의 것인 지성이다. …… 지금 이야기한 것이 뜻하는 바는 …… 군주 안에, 그의 감정들 사이에 어떤 공백, 어떤 무, 어떤 극단적이고 한계적인 거리가 군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마키아벨리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군주가 지닌 이런 여우의 역능이 군주의 사회적 이미지 즉 공적 이미지에 관련된다고 말하거니와, 나는 그것을 제1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 부를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적 장치는 실로 하나의 장치이고,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구조이며, 그 목표는 인민에 대한 공적인 영향들이다. 따라서 자연히 그것은 물질적 실존을 갖는다. 군주의 의복, 그의 주변 장식, 호화로운 삶과 궁전, 군주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 인민들에게 증오나 사랑이 없이 두려움과 존경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정권의 모든 의식儀式들, 군주의 담론의 제스처 및 양식 같은 것들이 그것이며, 오늘날에는 시덥잖은 대중매체와 같은 것들이 이에 추가된다. 이 점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주4/ 루이 알튀세르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 『철학과 맑스주의: 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 서관모・백승욱 편역(새길 1996) 188~189면.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알튀세르는 여우를 이데올로기와 구분되는 ‘정동’의 심급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확히 이데올로기의 심급으로 다루고 있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자신이 말하는 신체란 군주의 생물학적 신체 또는 그의 뇌의 특정 부위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물질적 실존’을 갖는 이데올로기적 ‘장치,’ 즉 군주의 의복, 주변 장식, 궁전, 군대, 의식, 담론의 제스처 및 양식 등을 가리킨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같은 글의 앞부분에서 알튀세르가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멘스’(mens) 개념을 재발견하면서, “정신은 신체의 인상(impressions)과 신체의 운동의 영향을 받는 한에서만 사고할 뿐이며, 따라서 정신은 신체와 더불어서 사고할 뿐만 아니라 신체 속에서 사고” {주5/ 알튀세르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 177면.} 한다고 말할 때에도, 여기서 신체란 단순히 어떤 개체의 생물학적 신체 또는 그 신체의 특정 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선 안 되고, 또한 이른바 멘스도 그런 신체 부위에서 발생하는 (심광현이 말하는 바의) ‘정동’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되어선 안 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체란 ‘과개체적(跨個體的, transindividual)인 것으로서의 신체’ 또는 오히려 문제의 신체가 포함되어 있는 서로 인과 작용하고 있는 ‘신체들의 네트워크’를 가리키며, 멘스란 바로 이 신체들의 ‘배치 형태’ 자체이다. 따라서 이 신체들의 네트워크를 하나의 ‘배치 형태’(신체들 속에 구현되어 있는 하나의 사유)에서 더 능동적인 또 다른 ‘배치 형태’(신체들 속에 구현되어 있는 또 다른 사유)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멘스를 변화시키는 것, 즉 알튀세르가 슬픈 정념에서 기쁜 능동으로 나아가는 ‘신체 역능의 해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요컨대 알튀세르는 여기서, 우리는 오로지 우리의 신체가 주변의 다른 신체들과 맺고 있는 인과적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만 우리가 상상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스피노자의 유물론적 테제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200피트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태양은 그것이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적합한 관념을 획득한 뒤에도 여전히 200피트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상상되는데, 왜냐하면 스피노자에게서 상상의 변화는 적합한 관념의 단순한 획득이 아니라 그 적합한 관념의 신체들 안으로의 물질적 재기입(즉 또 다른 배치 형태, 또 다른 멘스의 실현)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주6/ 스피노자 『윤리학』, 강영계 역(서광사 1990) 제2부의 정리 35의 주석을 보라.} 당연히 알튀세르에게도 이데올로기는 계몽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장치의 개조를 통해서만 해체・재구성될 수 있을 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이데올로기를 사유하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던 기존의 용어들 가운데 사라져야 할 용어, 그것을 대체하는 용어, 새롭게 등장하는 용어를 분류하면서(이런 용어들의 변화는 주지하다시피 바로 인식론적 절단의 표지이다), 사라져야 할 용어로 ‘관념들’을 든다. {주7/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역(솔 1991) 114면. 이 한국어판은 ‘관념들’(idées)을 ‘사고들’이라고 잘못 번역해 놨다.} 즉 이데올로기는 관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장치들이라는 신체를 가지고 있는 믿음, 장치들 속에 있는 믿음, 심지어 장치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장치가 나를 위해, 나를 대신해서 생각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정동’을 뇌간-시상하부와 변연계에서 발생하는 신체 변용에 대한 즉각적 판단으로서의 1차 의식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데올로기는 그 1차 의식이 “타당하지 못한 언어적・비언어적인 표상・관념(신피질, 즉 인류의 뇌)과 결합해 형성되는 고차 의식”{주8/ 심광현 [영화적 미메시스와 이데올로기] 391면. 강조는 인용자.}이라고 주장할 때, 심광현이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과 완전히 무관한 것이다.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의 신체는 나의 생물학적 신체나 뇌의 특정 부위가 아니라, 정확히 장치로서 내 바깥에 실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는 신체의 변용에 사후적으로 추가되는 관념이 아니라, 내 바깥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실천의 효과로서 내 안에서 생산되는 상상인 것이다. 즉 이런 의미의 상상은 내 신체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신체 간의 배치 형태 자체이지 거기에 외적으로 추가되는 관념이 아니라는 말이다(스피노자가 정서를 “신체의 변용과 그것에 대한 관념”이라고 말했을 때에도 거기서 관념이란 신체의 변용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심광현은 알튀세르라면 단번에 거부했을 생물학주의의 함의를 가지고 있는 이런 유사-뇌 과학적 논의를 통해 ‘정동’과 이데올로기를 그토록 갈라놓으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이는, 로버트 스탬(Robert Stam)을 따라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연극에 대해 행하는 자신의 비판적 재전유를 정당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심광현에 따르면 스탬은 브레히트의 연극이 “유희적이고 공격적이며 또한 교훈적”이지만, 종종 유희적인 측면이 배제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때 영화 텍스트는 “공격적인 사회 비판과 철학적인 성찰적 학습”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한다. 브레히트 연극의 이런 지성주의적 편향을 교정하기 위한 대안으로 스탬은 ‘유토피아적 리얼리즘’을 제안하는데,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적 리얼리즘이란 “혁명적 바람과 냉정한 비판, 찬양과 탈신비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가능성에 대한 직감과 한계에 대한 자각 등의 이중적 움직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즉 사회에 대한 공격적이거나 비판적인 냉정한 성찰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드러내는 리얼리즘이 유토피아적 충동을 실현하는 새로운 동일시와 결합할 때 그것이 곧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다. 스탬은 “그리스 항아리건 혁명 영화의 형태이건 간에 예술이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실용적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이런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한다. 동일시 자체를 포기할 경우 우리는 동일시에 연결된 예술 작품의 유희 기능까지 잃게 되기 때문에, 예술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기존의 동일시를 비판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비착취적 동일시”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9/ 심광현 [영화적 미메시스와 이데올로기] 374~375면.} 이렇게 봤을 때, 심광현이 ‘정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려고 그토록 애쓰는 것은, 맑스주의적인 예술 실천의 핵심을 유희로서의 ‘정동’과 새로운 ‘진보 이데올로기’(그가 ‘타당한 관념’이라고 부르는 것)의 결합으로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심광현에 따르면, ‘정동’은 예술 작품이 제시하는 이 타당한 관념과 결합함으로써 슬픈 감정에서 기쁜 감정으로 전위될 수 있다.

물론 심광현이 이런 방식으로 예술, 특히 영화와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다시 현행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려고 하는 것은 그간의 문화연구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논의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됨에 따라 영화에 대한 사유 및 실천이 탈정치화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는 커다란 문제점으로 여겨질 만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심광현의 논의는 예술 작품의 비판 기능과 유희 기능을 사실상 내용과 형식(또는 표현)의 관계로 보며 그 양자의 결합을 외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다소간 상투적인 생각으로 귀결되는 것 같고, 더 나아가 예술을 과잉-정치화하는 방향으로, 즉 예술을 (더 타당한) 이데올로기 생산의 실천으로 바라보는 역편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게 만든다.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비판적 이데올로기의 내용물이 담기는 ‘정동’이라는 유희의 그릇이 있는 셈이다. 어떤 내용이 거기에 담기는가에 따라 ‘정동’은 슬픔의 반복적 재생산이 되거나 기쁨으로의 신체 역량의 이행이 된다. 그러나 만일 알튀세르가 스피노자를 따라 말하듯이 정서라는 것은 단순히 타당한 관념(또는 거의 용어 모순으로 들리는 ‘타당한 관념과의 동일시’)을 획득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신체를 둘러싼 신체들의 인과 작용의 네트워크 자체를 변형함으로써만 슬픔에서 기쁨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기쁜 능동으로 이행할 수 있다면, 이는 단순히 새로운 진보 이데올로기의 관념을 ‘정동’이라는 그릇에 담는 문제일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역의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만일 신체들의 인과적 네트워크의 변형만이 기쁜 능동의 정서를 생산하는 치유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과연 우리가 예술적 실천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그런 효과를 생산한다고 볼 수 있을까? 바꿔 말해서, 예술적 실천이 신체들의 인과적 네트워크를 실제로 변형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정치 과학, 또는 정치와 과학의 결합된 실천이 아닐까? 예술 작품은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둘러싼 신체들의 네트워크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우리는 동일한 현실, 즉 동일한 신체들의 네트워크 안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너무나 단순한 이유에서 그렇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예술의 유희 기능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모종의 치유 효과를 생산하는 데 있다는 너무나 자명하게 받아들여지곤 하는 생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예술 작품이 스피노자적 의미에서의 치유 효과, 곧 기쁜 능동의 정서를 생산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예술 작품의 유희 기능을 매우 제한적이고 획일적으로 이해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예컨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햄릿>(Hamlet)은 관객들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히스테릭한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니콜라스 아브라함(Nicolas Abraham)과 마리아 토록(Maria Torok)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이 히스테릭한 상태에서 관객들이 빠져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 <햄릿>의 원작에 없던 제6막을 자신들이 직접 쓰려고 시도했을 정도로 말이다. {주10/ Nicolas Abraham and Maria Torok, The Shell and the Kernel, vol.1, trans. Nicholas T. Rand (Chicago: The University Chicago Press 1994).} 이는 <햄릿>이 뛰어난 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뜻일까? 그러나 정작 알튀세르는 동일시의 효과에 의존하는 고전적인 드라마 작가의 범주에서 몰리에르(Molière)와 함께 셰익스피어를 제외하면서 그를 오히려 브레히트와의 연속선상에서 보고자 했다. 나는 지금 예술 작품의 유희 기능과 비판 기능은 아무 관련도 갖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이다. 나는 오히려 이 양자를 분리해서 사고해서는 안 되며, 그것들을 이론적이고 내적인 방식으로 통일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고 여긴다. 단적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어떤 종류의 유희가 그 자체로 비판적이 될 수 있는가? 어떤 유희가 비판적 내용과 결합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유희가 그 자체로 비판의 효과를 생산하는가?사실 알튀세르는 브레히트의 연극론을 검토하면서 이 모든 문제를 사유했던 것 같다. 정치와 과학과 철학과 예술의 관계라는 문제, 그리고 예술의 유희 기능과 비판 기능의 관계라는 문제를. 비록 완전히 성공적이진 못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2. 완성되지 못한 알튀세르의 연극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알튀세르는 1962년에 조르조 스트렐러(Gergio Strehler)가 연출한 피콜로 극단(Piccolo Theatro)의 파리 공연 <우리의 밀라노>(El nost Milan)를 관람하고 「피콜로 극단: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유물론적 연극에 대한 노트)」를 썼는데, 이 글은 1965년에 출판된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인 『맑스를 위하여』에 재수록됐다. 이 글을 읽은 피콜로 극단은 1968년 4월 1일에 있을 토론회에 알튀세르를 초청했고, 알튀세르는 이 토론회에서 발표할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이다. 하지만 막상 이 흥미로운 글은 미완성으로 남아 알튀세르 사후에 유고작으로 출판되기 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이 글을 대신해 알튀세르는 피콜로 극단의 책임자인 파올로 그라시(Paolo Grassi)에게 편지를 보냈고, 알튀세르가 참여한 토론회 에서는 이 편지만이 스트렐러에 의해 이탈리아어로 낭독됐다. {주11/ 알튀세르의 두 개의 텍스트는 모두 번역되어 『웹진 인-무브』의 ‘알튀세르를 번역 하자’ 카테고리에 실려 있다(http://en-movement.net/category, 2018년 1월 10일 접속).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는 이종현이, 「파올로 그라시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찬선이 옮겼다. 이 글에서 이 두 텍스트로부터 인용시 따로 면수를 밝히지 않는다.}

우리는 왜 알튀세르가 원래 발표하려고 계획한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를 미완성으로 놔두게 됐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논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알튀세르가 연극, 더 나아가 예술이 다른 실천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튀세르는 브레히트가 1953년에 가졌던 「어느 사회주의적 대담」의 제법 긴 한 구절을 인용하고, 그 요점을 네 가지로 간추린다.

1. 연극은 존재한다(이는 역사적, 문화적 사실이다).

2. 브레히트는 연극의 고전적 규칙들을, 곧 연극을 폐기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이는 연극이 삶이 아니며, 과학이 아니며, 정치(특히 선전선동)가 아니라는 말이다.

3. 연극은 유희(jeu)인데, 중의적 의미로 그렇다. 먼저 연극은 연기(jeu)이며, 따라서 삶・과학・정치, 요컨대 현실은 연극 안에 직접 현존(present in person)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재현(represent)된다. 둘째, 연극은 ‘헐거운 공간(jeu)’(움직일 수 있는, 노는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변화가 도입될 수 있다.

4. 브레히트가 연극이라는 ‘유희/공간’(jeu)에 도입한 변화를 인도했던 것은 맑스주의 철학이다(특히 포이어바흐에 대한 맑스[Karl Marx]의 11번째 테제).

이 요점들 안에서 알튀세르는 브레히트를 따라서, ‘현실’ 또는 ‘삶’ 과 나란히 과학과 정치를 배치하고, 연극 또는 예술을 따로 배치하면서 그것을 철학과 관련시킨다. 연극 안에서 삶, 과학, 정치는 직접 현존하지 않고 다만 재현될 뿐이다. 이는 연극이 과학과 정치와는 상이한 위상의 실천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오히려 철학과 관련시킬 만한 어떤 것이다. 연극이 과학과 정치가 아니라는 말은 연극이 삶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그것이 신체들의 인과적 네트워크를 실제로 변화시키는 실천이 아니라는 뜻이다. 연극은 신체들의 인과적 네트워크를 변화시킬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 네트워크는 연극 안에 직접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재현될 뿐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경우에도 유사하게 말할 수 있다. 철학은 신체들의 인과적 네트워크를 변화시킬 수 없는 실천인데, 왜냐하면 철학은 과학과 달리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주12/ Louis 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trans. Ben Brewster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1) 58면.}  그렇다면 우리는 연극 또는 예술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회적 실천들의 공간적 은유로서의) 토픽 상의 위치로 볼 때, 정치와 과학보다는 철학에 더 가까운 자리를 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알튀세르는 이어지는 부분에서 이렇게 덧붙이며, 철학자 맑스와 예술가 브레히트 사이의 유사점에 대해 논한다. “저에게 무한한 충격을 줬던 것은 바로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일으킨 혁명과 맑스가 철학에서 일으킨 혁명 사이의 일종의 유사성입니다.” 알튀세르에게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것이 바로 정치와 과학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튀세르는 “철학은 이론의 영역에서 정치를 대표(재현)하고 …… 정치에서 과학성을 대표(재현)한다”고 「레닌과 철학」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주13/ 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65면.}  그렇다면 우리는 연극이나 예술 또한 바로 정치와 과학 사이에 위치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튀세르의 글에서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논점이다. 두 번째 논점은 알튀세르가 철학과 연극이 정치에 대해 맺는 관계를 설명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철학과 연극은 근본적으로 정치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이 결정을 지우기 위해, 이 결정을 부정하기 위해, 정치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붓”는다. 철학과 연극은 사실은 고도로 정치적이지만 자신들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탈-부인(de-negate)함으로써 정치적 이 된다.{주14/ 나는 정신분석의 개념인 denegation을 ‘탈-부인’이라고 옮기는 것이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개념의 핵심은 강한 부정이 오히려 긍정을 더욱 더 가시화시키는 ‘부정의 부정’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 자신은 세계를 ‘해석’만 한다고 말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탈-부인한다면, 연극은 “저녁에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연극, 식도락적 연극, 단순한 미학적 쾌락의 연극”을 상연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탈-부인한다. 수치스런 철학이 ‘관조의 병’을 앓고 있다면, 수치스런 연극은 ‘미학주의의 병, 연극성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수치스런 병에 대해 맑스와 브레히트는 각각 ‘새로운 실천’으 로 각자의 영역에 개입해 들어간다. 알튀세르는 맑스와 브레히트가 새로운 철학(‘실천 철학’), 새로운 연극(‘실천 연극’)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 연극의 새로운 실천을 수행했다고 말한다. 맑스가 세계를 해석만 하는 철학에 맞서 세계의 변혁에 도움이 되는 ‘철학의 새로운 실천’을 수행했다면, 브레히트는 기존의 연극이 생산하는 미학적 쾌락 효과를 비판하고 그 안에 균열과 거리를 창출해내는 ‘생소화 효과’(소격 효과, Verfremdungseffekt)를 생산함으로써 세계의 변혁에 도움이 되는 ‘연극의 새로운 실천’을 수행했다.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를 알튀세르는 새롭게 “자리이동의 효과, 거리내기의 효과”라고 부르자고 제안하는데, 이는 알튀세르가 보기에 그 효과의 핵심이 관객들이 보고자하고, 볼 것을 기대하는 중심적 드라마를 무대의 가장자리나 심지어 무대의 바깥으로 옮겨놓고, 관객들의 시야에서 통상적으로 사라지는 어떤 것을 오히려 무대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주15/ 피콜로 극단의 연극 『우리의 밀라노』에 대한 알튀세르의 분석의 핵심도 바로 이런 “자리이동, 거리내기 효과”에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최원 『라캉 또는 알튀세르』 제4장.}

통상적 연극에서 사라지지만 반대로 브레히트적 무대 위에서는 폭로되는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뒤에서 다시 논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알튀세르가 철학과 연극/예술 간의 유사성을 논하는 것은 정확히 여기까지라는 사실, 철학과 연극은 그 모든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상이한 실천이라고 그가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알튀세르는 브레히트가 연극을 이론주의적 또는 지성주의적으로 사고하는 한계 속에 갇혀 있었다고 지적한다. 다소 길지만 인용해보자.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비슷해 보인다 하더라도 연극은 철학이 아니고, 연극의 재료는 철학의 재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극은 예술이고, 철학은 이론입니다. / 브레히트는 이 지점에서 한계에 도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연극이 정치와 과학을 보여줘야 하지만 그럼에도 연극은 연극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연극은 종별적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어떤 점에서 연극이 종별적인 무엇이 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이 연극으로 하여금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연극이게 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히트는 우리에게 몇 가지 실정적인 암시들을 줍니다. 예를 들어 그는 연극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으로 배우들의 행동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연극의 고유함은 바로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연극은 즐겁게 해줘야(divertir)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연극의 고유함은 관객을 즐겁게 해주면서 중요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즐겁게 할 수 있을까요?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해 브레히트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설명을 합니다. 그는 ‘보여주는 것’과 알게 하는 것(과학)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브레히트에게는 Aufkläer[계몽주의자]다운 측면이 있습니다. 가령 “과학적 시대의 연극”이라는 주제가 그렇습니다.) 그는 즐거움을 하나의 기쁨(joie), 즉 무언가를 이해하는 기쁨, 세계의 변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기쁨, 변혁의 기쁨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의 변혁과 관객의 변혁, 근대의 과학과 연극이 관객에게 보라고 준 객관적 인식을 직접적인 관계로 두고 단락하는(en court-circuit)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난점들에 부닥칩니다. 브레히트도 직접 그 근본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연극의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과학도 아니고, 삶도 아니며 관객을 당황시키고 그의 기대를 저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실망이 어떻게 동시에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연극이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즐거움과 이런 기쁨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알튀세르는 연극이 주는 즐거움, 다시 말해서 연극의 유희 기능을 변혁의 기쁨이나 세계의 변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기쁨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연극의 유희 기능을 여전히 지성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마치 연극이 과학이라는 듯이, 마치 연극이 삶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연극이 주는 즐거움(유희)과, 관객을 당황시키고 관객의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브레히트적 연극이 주는 실망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일까? 세계의 변혁이 아닌 ‘관객의 변혁’이라고 알튀세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 수 있을까? 브레히트의 난점을 알튀세르 자신은 극복할 수 있었을까?

알튀세르는 브레히트의 실천에 보충이 될 만한 몇몇 이론적 설명을 제시해보겠다고 말하지만,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카타르시스 효과에 대한 고전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의 용어로 풀어 설명하는 데서 멈출 뿐, 논의를 더 이상 앞으로 밀고 나가지 못한다. 에세이는 바로 여기서 미완성인 채로 급작스럽게 중단된다. 앞서 말했듯이, 알튀세르는 이 에세이 대신 파올로 그라시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1968년 3월 6일에 쓴 이 편지는, 유고집 편집자인 프랑수아 마트롱(François Matheron)에 따르면, 알튀세르가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 원작, 조르조 스트렐러 연출의 연극 <두 주인을 섬기는 하인, 아를르캥>(Arlequin, serviteur de deux maîtres)을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의 라 코뮌(la commune) 극장에서 관람하고 당일 밤과 이튿날에 걸쳐 작성한 것이다. 이 짧은 편지가 흥미로운 것은 그 주제 때문이다. 거기서 알튀세르는 아를르캥이라는 인물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활발함’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는데, 이 활발함은 연극이 주는 즐거움, 유희라는 주제에 직접 연결될 만한 것이다. 마치 자신이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를 이어 쓰고 있다는 듯이 자신이 답하지 못한 채 놓아둔 연극이 주는 즐거움 또는 유희의 문제를 ‘활발함’이라는 다른 용어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 또한 분명하다. 이 편지에 브레히트는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따라서 브레히트적 연극이 주는 ‘실망’에 대한 논의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브레히트적 실망이 논의에서 사라진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 활발함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이라고 간주할 만한 설명이다. 왜냐하면 알튀세르는 아를르캥의 활발함을 (두 주인을 섬긴다는 그 이중적 제스처를 따라) 이중의 활발함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굶주림’이라는 욕구(need)의 차원뿐 아니라 욕망(desire)의 차원, (sexuality)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아를르캥이 보여주는 활발함은 단순한 굶주림이 아니라 굶주림에 대한 굶주림(avoir faim d’avoir faim)으로서 ‘리비도의 활발함’이라고 규정하는데, 여기서 알튀세르가 사용하는 ‘굶주림에 대한 굶주림’이라는 표현은 사실 라캉이 인간 욕망을 ‘욕망에 대한 욕망’이라고 규정한 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le désir de l’homme est le désir de l’Autre)라고 말하는데, 이는 인간은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인간은 대타자가 자신을 욕망하길 욕망한다, 인간은 대타자의 사랑을 욕망한다는 뜻이다. {주16/ 라캉은 “le désir de l’Autre”에서 de는 목적격의 속격이 아니라 주격의 속격임을 분명히 한다. 곧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대타자의 욕망에 대한 것이다. Jacques Lacan, “The Subversion of the Subject and the Dialectic of Desire in the Freudian Unconscious,” Érits: The First Complete Edition in English, trans. Bruce Fink (New York: W. W. Norton & Co. 2006).} 이런 욕망의 차원은 욕구의 차원에 기대어 나타나지만 욕구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 차원을 획득하게 되며, 이것이 인간을 규정한다. 왜냐하면 라캉이 스피노자를 따라 말하듯이 인간의 본질은 ‘욕망’(cupiditas)이기 때문이다. {주17/ 스피노자 『윤리학』 제3부 정리 4의 주석과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 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역(새물결, 2008)의 결론을 이루는 제20장을 보라.}

하지만 알튀세르는 자신의 편지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언급하면서도 라캉을 언급하진 않는다. 왜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당시 알튀세르와 라캉이 맺었던 이론적 동맹이 좌초되고 있었던 사정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라캉은 1969년에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떠나 팡테옹(Panthéon)에 위치한 파리 법대(Faculté de droit)로 세미나 장소를 옮긴 이후 처음으로 가진 세미나에서 알튀세르를 실명으로 비판했으며,{주18/ Jacques Lacan, D’un Autre à l’autre: Le séinaire livre XVI (1968-69) (Paris: Seuil 2006)의 제1~2장을 보라.} 알튀세르 자신은 이미 1966년에 쓴 「담론 이론에 대한 세 편의 노트」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대 한 비판을 행한 바 있었다.{주19/ Louis Althusser, “Three Notes on the Theory of Discourses,” The Humanist Controversy and Other Writings, trans. G. M. Goshgarian (London: Verso 2003) 33~84면. 이 글은 당시에 공개되지 않았고 유고작으로 출판됐지만, 알튀세르의 이런 비판에 대해 라캉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최원 『라캉 또는 알튀세르』 제3장.} 그렇지만 알튀세르가 「파올로 그라시에게 보낸 편지」에서 욕망에 대한 라캉의 정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한 손에 브레히트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 정신분석학(프로이트만이 아니라 라캉)을 들고 있는 알튀세르를 보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면 브레히트적 연극이 주는 ‘실망’과 연극/예술이 주는 ‘즐거움’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어쩌면 정신분석학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튀세르가 머뭇거리며 멈춰선 그 길을 나는 우리가 한 번 가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그것이 어떤 길인지, 정말 갈 수 있는 길인지, 아니면 종국에는 막혀 있는 길인지, 또 그것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길인지, 아니면 우리를 끝내 배신할 길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알튀세르는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의 마지막 부분에서 연극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논하며 이렇게 말한다. “왜 연극이 관객을 즐겁게 하는지 알려면 매우 독특한 종류의 쾌락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쾌락은 바로 위험하지 않은 불과 함께 노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이중적 계약 조건과 함께 하는 쾌락입니다. 1. 불은 무대 위에 있고 연극의 작품은 언제나 불을 끄기 때문에 불은 위험하지 않다. 2. 불이 있을 때, 그 불은 언제나 이웃에게 있다”(강조는 인용자). 이것은 확실히 관객 자신이 직접 겪는 것은 아니지만(따라서 위험하지 않다) 자신이 동일시하는 ‘이웃’의 몰락 또는 죽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배출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 효과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명은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힌트를 던져주는데, 그것은 바로 연극이 주는 즐거움이 어떤 불(fire), 다시 말해서 어떤 죽음과 관련된 쾌락이라는 점이다. 그런 쾌락 개념이 존재하는가? 정신분석학은 이런 독특한 종류의 쾌락을 ‘쾌락 원칙을 넘어’ 가는 ‘죽음 충동’과 연관시켰으며, 특히 라캉은 거기에 주이상스(jouissance)라는 이름을 붙여준 바 있다.

주이상스는 생물학적 욕구의 만족에서 오는 쾌락(pleasure)과는 종류에서 구분되는 고통의 향유를 가리키며, 거기에는 매우 강한 성적 뉘앙스가 들어가 있다. 알튀세르는 욕구와 구분되는 욕망(그리고 삶의 에너지로서의 ‘리비도’)에 대해 말했지만, 어쩌면 알튀세르에게 정작 필요했던 것은 쾌락과 구분되는 주이상스라는 개념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주이상스는 적어도 필요, 효용, 가치, 상품, 생산, 생활이라는 욕구의 질서의 바깥, (푸코[Michel Foucault]를 패러디하자면) ‘생명권력’의 바깥, (하이데거를 패러디하자면) ‘일상성’의 바깥, 곧 세계의 바깥을 가리키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연극/예술이 주는 즐거움을 주이상스라고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연극/예술의 경험을 욕구의 만족에 연관된 품의 소비와 범주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가능성(브레히트의 말로 표현하자면 “저녁에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연극, 식도락적 연극, 단순한 미학적 쾌락의 연극,” 심광현의 말로 표현하자면 “할리우드의 오락성”과 구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가능성은 물론 알튀세르가 말하듯이 카타르시스로 퇴행할 수도 있지만(이것이 고전적 비극의 길이다), 또한 그런 퇴행에 대해 비판적인 비-카타르시스적 효과의 생산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주이상스로서 파악된 예술의 유희는 그 자체로 욕구의 질서에 대한 비판, 세계에 대한 비판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이미 잠재적으로 비판적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술적 유희를 죽음과 관련시키면서, 예술의 유희 기능과 비판 기능 간의 대립물의 일치(unity of the opposites)를 주이상스 개념을 통해 이론화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다. 브레히트적 연극이 주는 실망이 무엇보다 세계에 대한 실망, 삶에 대한 실망인 한에서, 그것은 주이상스로서의 예술적 유희와 더 이상 개념적으로 대립하지 않을 이론적 가능성을 갖게 된다고 말이다. 우리는 다음 절에서 블랑쇼의 예술론을 살펴볼 것인데, 왜냐하면 블랑쇼는 예술 작품, 특히 문학 작품의 중심적 문제가 ‘죽음’이라고 보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카타르시스로 귀결되지 않고 오히려 카타르시스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매우 보기 드문 이론가였기 때문이다.

 

 

3. 블랑쇼: 죽음으로서의 ‘문학의 공간’

본질적 예술은 일상 세계, 욕구의 세계에 대한 비판이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이 점을 단번에 간파했으며, 미를 (그러나 또한 숭고를) 이해관계의 부재(disinterestedness)로 규정했다. 즉 어떤 유용성의 관점도 미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멋지게 디자인됐다고 할지라도 가구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이해관계 또는 유용성의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기 때문이다. 욕구의 질서에서 빠져나온 것, 쓸모로부터 빠져나온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 이는 아름다울 수 있는 사물의 종류와 그렇지 못한 사물의 종류가 애초에 나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물이건 간에 그것이 욕구와 쓸모로부터 빠져나올 때 아름다워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가구조차 자신의 쓸모에서 빠져나왔을 때 아름다워질 수 있다.{주20/ 라캉은 승화(숭고미[sublimation])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리하여, 제가 여러분께 줄 수 있는 승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승화는 어떤 대상을 …… 사물[das Ding(실재로서의 사물)]의 존엄함으로 들어 올립니다.” Jacques Lacan,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Seminar VII, 1959~60), trans. Dennis Porter (New York: W. W. Norton & Co. 1992) 112면. 그러면서 라캉은 심지어 성냥곽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심광현이 준거하는) 스탬의 주장과 달리, “그리스 항아리건 혁명 영화의 형태이건 간에 예술이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실용적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항아리건 혁명 영화의 형태이건 간에 그것들이 자신의 실용성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할 때에만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리스 항아리가 무엇인가를 담아두기 위한 용기로 실제로 사용되던 당시에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그렇게 사용되지 않게 됐을 때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프로퍼갠더 영화가 아름답지 않고 추한 것도 바로 그것의 실용성 때문이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것, 본래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 내에서의 용도에서 벗어난 것,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것, 그런 것만이 아름답다. 블랑쇼는 이렇게 사물이 자신의 용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곧 기능하고 있음)에서 벗어나 죽을 때 그것은 이미지가 된다고 말한다. “언뜻 보기에 이미지는 시신을 닮지 않았다. 하지만 시신의 낯섦은 또한 이미지의 그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주21/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이달승 역(그린비, 2010) 373면.} 그러나 이렇게 이미지가 된 사물이 매혹적인 까닭은 그 이미지가 이상적이거나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응시하는 것, 응시하도록 강제되는 것, 따라서 우리가 “보지 않는 것의 불가능성”을 느낄 정도로 매혹되는 것은 이미지 자체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미지 뒤에 존재하는 무한의 깊이” 때문이다. {주22/ 블랑쇼 『문학의 공간』 32면.}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화가이자 서로 절친한 친구였던 제욱시스(Zeuxis)와 파라시오스(Parrhasius)의 내기에 대해 논하면서 라캉 또한 응시(gaze)의 이런 성격에 대해 강조했다. 비록 제욱시스는 날아가는 새들로 하여금 자신이 벽에 그린 포도나무의 이미지를 향해 달려들다 벽에 부딪혀 떨어지게 만들었지만,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의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지 보기 위해 그 위에 덧씌워진 베일을 걷어내려고 하다가 그 베일 자체가 그림임을 깨닫고 자신의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제욱시스 자신은 단지 완전한 이미지를 그렸을 뿐이지만, 파라시오스는 자신으로 하여금 그 이미지 뒤에 있는 것을 욕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23/ 라캉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160면. } 라캉이 ‘오브제 프티 아’(objet petit a)라고 부른 이미지 뒤에 무한의 깊이로 있는 것, 그것은 그 대상에 매혹되어 바라보는 주체 자신의 죽음(실재)이다.

블랑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대상 이후에 오는 대상의 모방(미메시스)이 아닐 뿐더러, {주24/ 미메시스라는 의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능성은 발터 벤야민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 「미메시스 능력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선집 6』, 최성만 역(도서출판 길 2013) 209~216면. 이 선집에 실려 있는 관련 주제들에 대한 논문들도 빠짐없이 검토해야 할 것이다.}  대상 그 자체가 자신의 쓸모에서 빠져나옴으로써 중성화되는 것만도 아니고, 오히려 세계 그 자체가 사라지는 순간을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화폭의 자유로 나아가기 위해 그가 이런 사용을 밀쳐 두고 대상을 중성화하는 것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 오히려 극단적 전복을 통해 예술가는 이미 작품의 요구에 속해 있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서 예술가는 결코 그 대상을 용도에서 벗어났을 때의 모습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대상을 작품의 요구가 스치는 지점으로 삼아, 결과적으로 가능한 것이 미미해지고 가치와 효용의 개념이 사라지며 그리고 세계가 ‘용해되는’ 순간으로 삼는다. 그것은 그가 이미 어떤 다른 시간에, 별도의 시간에 속해 있고, 시간의 작업을 벗어나 매혹이 위협하는 본질적 고독의 시련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런 근원적 소속감에서 작품의 요구에 응하면서 그가 일상 세계의 대상들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그 용도를 중성화해 그것들을 정화시키고, 지속적 양식화를 통해 대상들이 화폭이 되는 순간적 균형 상태로 고양시키는 것 같은 그런 지점에 다가섰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해서 우리가 기술한 거절과 기피의 움직임을 통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세계를 떠나 예술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나 예술로부터 세계의 중성화된 외현처럼 보이는 것으로 …… 나아간다. {주25/ 블랑쇼 『문학의 공간』 54~55면. 강조는 인용자.}

그러므로 단순히 하나 또는 몇몇 사물이 자신의 쓸모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가치와 효용이 지배하는 세계 그 자체의 ‘용해’를 그 어떤 사물들의 이미지를 매개로 드러내는 것이 문제이다. 예술가는 이편에 있는 낮의 세계, 가치와 효용의 세계의 바깥으로서의 죽음(밤)과 본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자이다.

그런데 사실 예술과 죽음의 이런 관계에 먼저 천착했던 것은 하이데거였다. 우리는 하이데거에 대한 블랑쇼의 비판을 통해 예술이 죽음에 대해 맺는 관계가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데, 이로부터 우리는 예술이 카타르시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죽음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이데거는 현존재(Dasein)를 염려(care)의 구조를 가고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현존재는 세계 내에 던져진 존재(Being thrown in the world)로서 전통이 규정하는 바의 ‘일상성’ 속에 잠겨 있는 존재이지만, 또한 자기 자신을 앞서 나가는 존재(Being ahead of itself) 또는 기투적 존재(projected Being)로서 자신의 가능성들에 대해 관심을 두고 걱정하는 실존적 불안(anxiety)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특히 죽음은 현존재가 가진 그 모든 가능성의 파괴를 의미하는바, 현존재의 절대적 한계, 절대적 불가능성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하이데거는 바로 이 절대적 불가능성으로서의 죽음이 현존재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가능성, 실로 마지막일 기회로 남아 있는 한에서 그것은 “가능성들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역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현존재는 자신의 죽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존적 행위로 만들어냄으로써 그 죽음을 자기 자신에게 고유한 본래적 죽음으로 만들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26/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trans. John Macquarrie and Edward Robinson (San Francisco: Harper Collins Publishers 1962) 294면.}  하이데거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영웅들(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에게서 보는 것이 바로 그런 실존적 결단으로서의 죽음, 자살이라는 행위이다. {주27/ Martin Heidegger, An Introduction to Metaphysics, trans. Ralph Manheim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7), 특히 제4장을 보라.}

블랑쇼는 이런 하이데거의 사유를 비판하면서, 죽음에 대한 작가의 관계를 이중적 관계로 파악한다. 작가는 하이데거가 말하듯이 자신에게 고유한 본래적 죽음을 죽기 위해서 작품을 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무능력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존재이다. ‘이중의 죽음’이 있다. 나는 나의 목숨에 대해 결정할 수 있으며, 행위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내가 다룰 수 있는 죽음이다. 그러나 그렇게 나와는 전혀 관계하지 않는 죽음, 나와는 무관하고 나에게 무관심한 죽음, 나의 결정과 행위 능력 바깥에 여전히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는 또 다른 죽음이 있다. 이것이 내가 다룰 수 없는 죽음이다. 이 또 다른 죽음은 전유할 수 없는 것인데, 이를 전유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죽음과 혼동하는 것이 바로 내가 나를 죽일 수 있다고 믿는 자살이다. {주28/ 블랑쇼 『문학의 공간』 140~141면.}

왜 죽음을 전유할 수 없는가? 왜냐하면 “죽음은 결코 현재에 속하지 않”으며, 절대적 타자인 ‘미래’로서 항상 저 너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어코 자살의 행위를 감행할 수 있지만, 그 행위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자(죽은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타자”이다. {주29/ 블랑쇼『문학의 공간』 141면.} “어느 누구도 아닌 자가 된 나, 타자가 된 타인.” {주30/ 블랑쇼 『문학의 공간』 25면.}  이런 더 이상 내가 아닌, 타자가 된 타인이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죽음의 공간은 그러나 하이데거가 생각하듯이 무(nothingness)의 공간이 아니다(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문제이다). 그것은 블랑쇼의 친구이기도 했던 레비나스가 ‘일리아’(il y a)라고 불렀던 공간, 즉 모든 존재자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 또는 존재함의 사실만이 무심하고 온전히 남아 있는 공간, 또는 블랑쇼 자신의 표현을 사용하면 “이것은 …… 이다”(Il est ……)만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모든 가능한 존재자를 유예시키고서도 끝내 제거할 수 없고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 것에 마주하게 된다. 무엇이 남는가? ‘이것은 …… 이다’라는 이 말 자체.” {주31/ 블랑쇼 『문학의 공간』 51면. 이런 ‘일리아’ 또는 ‘일레’라는 개념은 이후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에게서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이 된다. 모든 개체들(기계들)로의 분화가 시작되기 이전의 ‘알’이자 모든 개체들의 ‘죽음 본능’의 최종 귀결로서의 ‘기관 없는 신체.’ } 이런 ‘일리아’ 또는 ‘일레’로서의 죽음의 공간은 내가 자살할지라도 그 행위에 의해 전혀 영향받지 않고 끄떡없이 건재해 있는 공간이며, 나는 내가 아닌 타자가 되어 그 공간 안에 귀속되어 ‘누군가’(l’on)로 있게 된다. “무는 불가능하다.” {주 32/ Emmanuel Levinas, Time and the Other, trans. Richard A. Cohen (Pittsburgh: Duquesne University Press 1987) 73면.}  내가 무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독백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의 경험이 끔찍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아니라 자신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잠’ 속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악몽을 꾸고 있을 가능성, 즉 죽음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바로 그 가능성이다. “실제로,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죽음의 잠 속에서, 우리에게 꿈이 찾아든다면…….” {주33/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3막 1장. 블랑쇼는 이 대사를 이미지와 관련시켜 논한다. 블랑쇼 앞의 책 371면. 다른 한편, 레비나스는 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햄릿에 대해 논한다. Levinas, op. cit. 50면.}  블랑쇼는 내가 타자가 되는 이런 비인칭의 익명적 공간으로서의 죽음이야말로 ‘문학의 공간’의 본질이며, 작품은 바로 거기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자신의 죽음을 가질 수 없는 만큼이나 자신이 쓴 작품도 가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쓴다는 것은 내가 아닌 타자가 되는 것, 곧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주34/ 블랑쇼 『문학의 공간』 17면.}

쓴다는 것 그것은 말을 나에게 결합시키는 연관을 깨트리는 것, 나로 하여금 ‘너’를 향해 말하게 하면서 이 말이 너로부터 받아들이는 동의 가운데 나에게 말하게 하는 그런 관계를 깨트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은 너에게 말을 걸고, 말은 너에게서 끝나기에 나에게서 시작하는 말 걸기이기 때문이다. 쓴다는 것은 이런 연관을 끊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언어를 세계의 흐름으로부터 회수하는 것이요, 언어로부터 언어가 능력이 되게 하는 것을 몰수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통해, 내가 말할 때, 말해지는 것은 세계이고, 노동, 활동 그리고 시간을 통해 건립되는 것은 낮이다. 쓴다는 것은 끝나지 않는 것, 끊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작가는 ‘나’를 말하기를 거절한다. 카프카는 놀랍게도 홀린 듯이 기뻐하며 ‘나’를 ‘그’로 대체할 수 있었을 때 문학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주35/ 블랑쇼 『문학의 공간』 22면.}

블랑쇼는 “죽을 수 있기 위해 글을 쓰”지만, “글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작가가 죽음과 맺는 이런 이중 구속(double bind)의 관계를 표현한다. 자신에게 고유한 본래적 죽음을 죽을 수 있기 위해선 글을 써야하지만, 글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기 때문에 그 글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주36/ 블랑쇼 『문학의 공간』 123면. 말이 아닌 글, 쓰는 자의 죽음으로서의 글, 글쓰기가 죽음과 맺는 본질적 관계에 대한 이런 블랑쇼의 성찰은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흔적으로서의 글쓰기(écriture)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따라서 어떤 목적지(죽음)가 있지만 우리는 그곳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며, 우리는 지금 길을 가고 있지만 그 길은 그 목적지로 통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찾아 사막에서 40년을 헤맸던 바로 그 경험(그러나 정말 40년이었을까? 유대인들은 늘 헤매고 있지 않은가? 이 방황을 종식시키려는 시오니즘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비-유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에 대해 생각하며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헤매던 것이 바로 이 ‘길 없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목적지 없는 길’ 위에서인데, 블랑쇼는 “이런 관점, 곧 비탄의 관점에서, 본질적인 것은 가나안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카프카에게 “이주는 사막을 목표로 하고, 이제 진정한 약속의 땅은 사막으로의 다가감”이 된다고 말한다. {주37/ 블랑쇼,『문학의 공간』 98면.}

블랑쇼에 따르면, 카프카는 이 지난한 방황의 길 위에서 작가가 저지를 수 있는 “두 개의 중대한 과오”에 대해 자신의 일기장에 적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무관심이라면, 다른 하나는 초조함이다(이 가운데 ‘본질적 과오’는 전자가 아닌 후자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무관심은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추고 욕구의 질서 속에서, 세계의 규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블랑쇼는 바로 『소송』(The Trial)의 요제프 K(Joseph K)의 삶이 그러하다고 말한다. 요제프 K는 자신에게 느닷없이 날아든 법정의 소환장에 의해 강제되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도 그 관료제의 규칙 안에서 그 관료제를 자신이 이길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죽어간다. 반면 초조한 자는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강박적으로 재촉하는 자이며, 그 사례는, 블랑쇼에 따르면, 『성』의 측량사 K에게서 발견될 수 있다. 측량사 K는 들어갈 수 없는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관심하기는커녕 계속해서 움직이며, 실패에서 실패로 나아가는데, “정해지지 않은 것”을 끝내려 하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부재의 깊이를 즉각적인 것처럼, 이미 현전하는 것처럼 잡으려고” 하는 이 초조함이 바로 그의 본질적 과오이다. 잡을 수 없는 죽음을 현재로서, 자신의 것으로서 잡고자 하는 과오, 바로 하이데거적인 과오 말이다. {주38/ 블랑쇼 『문학의 공간』 101~102면.}

죽음과의 관계 속에서 작가가 저지를 수 있는 두 가지 과오를 피할 수 있는 작가의 덕목을 블랑쇼는 말년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보여준 참을성에 대한 사유 안에서 찾는다. “다른 시간을, 신속한 계획을 통해 달려갈 수 있는 어떤 목표도 우리에게 부여하지 않는 끝을 볼 수 없는 다른 작업”으로서의 참을성. {주39/ 블랑쇼 『문학의 공간』 178면.}  무관심과 참을성은 다르다. 왜냐하면 초조해하지 않으면 참을성을 가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초조해하면서도 결코 조급하게 자살적 행위에 돌입하지 않고, 죽음과의 관계를 천천히 견디는 일, 그것이 참을성이다. 작가가 참을성을 갖고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죽음을 단순히 알 수 없는 낯선 신비로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삶 속으로 그 죽음을 가지고 들어와 그것을 천천히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 죽음이 언제 완성될 수 있는지를 모르는 채로, 죽음의 완성이란 늘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우연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릴케는 삶 자체 내에서 이와 흡사한 순화 과정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죽음은 우리가 그 속에 살게 될 환영 같은 모습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삶과 하나의 전체를, 두 영역이 통일된 넓은 공간을 이룬다. 삶에의 믿음, 그리고 삶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죽음에의 믿음. 우리가 죽음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삶의 무겁고 힘든 면을 거부하는 것과 같고, 삶에서 최소한의 부분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과 같다 — 그리하여 우리의 즐거움 또한 최소한이 될 것이다.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무시무시함에 동의하지 않는 자, 환희의 외침으로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우리 삶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권능을 결코 소유하지 못하고, 삶의 바깥에 남아, 결정이 내릴 때 죽은 자도 산 자도 되지 못하리라.” {주40/ 블랑쇼 『문학의 공간』 181~182면. 강조는 인용자.}

이렇게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죽음을 참을성 있게 견디며 천천히 죽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삶을 열심히 산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삶의 질서, 욕구의 질서, 낮의 세계의 질서로 환원될 수 없는 죽음을 도처에서 목격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술은 세계가 통상적으로 인정하는 “아름다운 사물들”만을 추구할 때 스스로를 배신하게 된다. “예술이 사물들에서 출발한다면, 구분 없는 모든 사물들에서 출발”해야만 하고, “선택하지 않고, 바로 선택의 거절 속에서 출발”해야만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사물들을 빠짐없이 봐야 하는 것이다. 블랑쇼는 휴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로부터 릴케가 배워온 것이 이것이었다고 말하면서 호프만슈탈이 그의 1907년 시론 『시인과 그의 시대』에서 말한 것을 인용해오는데, 거기서 호프만슈탈은 시인은 “눈꺼풀이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적어도 두 가지 죽음이 있다. 한편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하이데거가 읽어내는 자살적인 실존적 결단으로서의 조급한 죽음이 있으며 이런 죽음은 관객들의 감정의 배출로서의 카타르시스를 가능하게 한다. 다른 한편에는 삶 속에 들어와 있지만 은폐되어 있고 가려져 있는 죽음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도하면서, 기록하면서, 천천히 죽어가는 느린 죽음이 있으며 이런 죽음은 죽음의 전유 불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불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이 두 가지 죽음은 블랑쇼에게는 그 자체로 계급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자살하는 자는 왕족이나 귀족에 속하는 영웅들이다. 그러나 블랑쇼가 말하는 죽음의 본질에 충실한 죽음, 느린 죽음은 그런 영웅들의 죽음이 아니다. 블랑쇼는 “죽을 수 있기 위해 글을 쓰는” 카프카와,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을 작품에 자신을 맡기”기 위해,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 글을 쓰는 앙드레 지드(André Gide)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인간이 작품을 통해 자신을 영예롭게 하려 하고 이런 행위 속에 자신을 영속화시키면서 작품 가운데 활동하는 …… 것은 확실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 예술은 하나의 기억할 만한 역사로의 통합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 영웅들, 위대한 전쟁 용사들 또한 죽음을 벗어나 안전한 곳에 자리한다. 이들은 민중들의 기억 속에 기록된다. 이들은 본보기이며 행동하는 현전들이다. 이런 형태의 개인주의는 곧 만족스러운 것이 못 된 다. …… 필요한 것은 우상이라는 나른한 영원 속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변화에 협력하기 위해 바뀌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름 없이 행동하는 것이지 다분히 한가로운 이름으로 남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살아남고자 하는 창조자의 꿈은 비겁할 뿐 아니라 그릇된 것이다. {주41/ 블랑쇼 『문학의 공간』 124면.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우리가 알튀세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왜냐하면 사실 이것이 처음부터 우리의 논의에 걸려 있던 내기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앞에서 알튀세르가 철학과 예술(연극)을 정치와 과학 사이에 위치시키면서, 예술이나 철학은 정치나 과학이 아니며, 단지 정치나 과학을 재현/상연/대표하는 어떤 실천이라고 말했던 것을 살펴봤다. 알튀세르는 1967년에 고등사범학교에서 자신의 제자들인 마슈레(Pierre Macherey), 발리바르(Etienne Balibar), 르노(François Regnault), 페쇠(Michel Pêcheux), 피샹(Michel Pichon), 바디우(Alain Badiou) 등과 함께 “과학을 위한 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강의를 조직했는데, 그 시리즈의 서문 격을 이루는 강의가 바로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이었다(이 강의는 1974년에 책으로 출판된다). 알튀세르는 거기서 철학이 어떤 실천인가에 대해 논하면서, “철학은 매우 상이하면서 특이한 방법으로 넘어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우물에 빠진 탈레스만이 아니라 철학 자체가 넘어지고 추락하며 실수하고 실패한다는 것이다. 관념론 철학자들은 이런 자신의 희극적 넘어짐을 넘어짐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러나 알튀세르에 따르면 유물론적 철학자 또는 오히려 공산주의적 철학자는 넘어지면서 자신이 만들어내는 효과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철학자이다. “우리의 경우(나의 경우) 우리는 넘어지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대미문의 방법으로 넘어질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다른 많은 철학자들과 구별되게 하는 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개입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완벽히 압니다.” {주42/ 알튀세르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 김용선 역(인간사랑, 1993) 28면. 강조는 인용자.}

이런 사라짐을 알튀세르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익명성,’ 즉 블랑쇼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름 없이 행동하는 것”의 문제와 연결시켰다.

나는 푸코가 ‘저자’라는 아주 근대적인 개념에 대해 비판을 하고 나서, 마치 내가 어두운 감방의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그가 감옥에 갇힌 자들을 위한 투쟁 활동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푸코의 깊은 겸허함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에티엔 발리바르가 나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이 다름 아니라 내가 내 이름에 대한 모든 선전에 대항해 끊임없이 펼치는 맹렬한 반대임을 알고 있다. 나는 고등사범학교의 오래된 아파트에 박힌 채 거의 외출하지 않아 야만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외면상의 이런 야만스런 은둔을 고수한 것은 그 속에서 나의 운명, 게다가 마음의 평화까지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익명성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책을 독자들 손에 맡기는 지금 역시,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서지만 익명성 속으로 결정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주43/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역(돌베게 1993[초판]) 239면. 강조는 원저자.}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공산주의적 철학자와 공산주의적 예술가의 어떤 수렴이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공산주의적 예술가란, 그렇다면, 바로 자신의 개입 속으로, 자신의 효과들 속으로 사라지는 ‘사라지는 매개자’(프레드릭 제머슨[Frederic Jameson])의 역할을 하는 자라고. {주44/ 발리바르는 “사라지는 매개자”를 공산주의자 자체의 정의로 만든다.}  단, 공산주의적 철학자와 공산주의적 예술가는 상이한 재료를 가지고 그런 사라지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철학자가 이론의 재료를 가지고 그것을 한다면, 예술가는 블랑쇼가 말하는 ‘이미지’(언어를 포함한)를 가지고 그것을 한다. 블랑쇼 또한 ‘거친 말’과 ‘본질적 말’을 구분해 전자를 일상의 쓸모를 실현하기 위한 말, 의미를 서로에게 전달하기 위한 소통의 말이라고 한다면, ‘본질적 말’은 그런 쓸모에 의해 은폐된 말의 본질적 차원을 다시 드러내는 시적인 말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시적인 말은 그때 단지 일상적 언어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언어와도 대립된다라고 지적한다.{주45/ 블랑쇼 『문학의 공간』 44~45면.}

나는 본질적으로 예술이 행하는 실천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 아니요,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세계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며(이는 과학의 일이기에), 세계 변혁을 위한 대안적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세계에 드리워져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베일에 의해 가려져 있는 타자로서의 죽음 또는 오히려 죽음들을 눈 감지 않고 목도하고 기록하고 폭로하는 일, 그리하여 관객들을 ‘의심하는 관객들’로 변혁하는 일인 것 같다. 알튀세르가 『우리의 밀라노』를 관람하고 나오다가 경험했듯이 “불현듯이, 저항할 수 없도록” 질문을 던짐으로써 연극 속에서 “미완된 질문”을 관객들 스스로가 물어보고, 그리하여 “무언의 담화의 도래”를 찾도록 권유하는 일, {주46/ 알튀세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관모 역(후마니타스 2017) 262~263면.} 요컨대 그것은 의심의 실천인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무대의 바깥, 세계의 바깥이 있다는 것을 누설하는 작업. 만일 철학이 사유를 통해 세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예술이 이미지로서의 신체 또는 신체의 이미지화를 통해 세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신체적 의심의 실천이라고 생각해보고 싶다. 신체들을 세계 내에 체계적으로 존재하는 유용성, 효용, 가치, (자본주의가 그 정점을 이루는) 생산의 질서에서 분리시켜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나타나게 만듦으로써, 이 주어진 세계의 유일무이함(또는 대안 없음)을 의심하고, 이 세계가 ‘용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그 비판적 담화를 찾아 나서도록 추동하는 실천 말이다.

 

 

4. 결론을 대신해: 알튀세르와 블랑쇼의 이단점?

앞에서 언급했듯이, 브레히트적 연극(서사극)은 통상적으로 연극의 무대에서 단순한 배경으로 처리되면서 비-가시화되는 어떤 것을 무대의 한복판에 위치시킨다. 나는 이것을 다른 곳에서 알튀세르적 의미에서의 ‘실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47/ 최원 『라캉 또는 알튀세르』 제4장.} 실재와 이데올로기(상상과 상징)의 이중 구조를 무대에 모두 올려 상연할 뿐만 아니라, 관객이 무대의 중심에서 보길 기대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멜로드라마를 무대의 가장자리에(à la cantonade),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는 실재를 오히려 무대의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브레히트적 연극은 드라마 내에 내적인 거리(또는 균열)를 만들어내는 “거리내기, 자리이동의 효과”를 생산한다.

그렇다면 알튀세르가 분석한 연극 『우리의 밀라노』에서 그렇게 무대의 중심에 자리잡는 이 ‘실재’란 무엇인가? 물론 그것은 알다시피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19세기 말 밀라노 지역의 하층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삶이 또한 그들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지 않는가? 니나가 사랑했던 어떤 젊은 광대의 죽음만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숟가락을 들어 한 끼의 죽음을 조금씩 입에 떠 넣는 그 모든 이들의 느린 죽음. 이 ‘죽음’에 또 다른 죽음이 대립해 있다. 우선 니나를 돈으로 유혹하려고 하다가 니나의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토가소의 죽음이 있고, 또한 아마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갈 니나의 아버지 자신의 죽음이 있다. 이 두 번째 그룹의 죽음은 첫 번째 그룹의 죽음과 그 성격이 판이하다. 두 번째 그룹의 죽음이 그 조급성(니나의 아버지의 불안과 초조함)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멜로드라마적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면, 첫 번째 그룹의 죽음은 연극의 통상적 무대에서 단지 시대적 배경의 묘사로서 처리되지만 사실은 이 세계 내 우리 삶의 도처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그런 죽음, 바로 ‘민중’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니나가 연극의 마지막에 야간 부녀 보호소에 찾아온 아버지에게 맞서면서 그의 세계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계임을 고발하고 비판할 때, 이는 이 첫 번째 그룹의 죽음, ‘민중’의 죽음이 무대의 중심에서 느리지만 집요하게 그려지지 않았다면 그 어떤 전복적 성격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복은 그러나, 알튀세르에 따르면, 아직 어떤 인식(과학적 인식)이 아니다. 니나가 아버지와 헤어진 이후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낮의 세계’로 떠날 때, 그 낮의 세계란 “진짜 세계 …… 틀림없이 돈의 세계이며 또한 비참을 생산하고 비참에 ‘극적’ 의식까지도 부여하는 세계인 진짜 세계”이기 때문이다. {주48/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245면.} 니나는 혁명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혁명적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니나는 ‘낮의 세계’에서 그 비참하지만 보이지 않던 죽음들, 그 밤의 죽음들을 이제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면서, 견디면서, 자본주의적 세계를 다르게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알튀세르가 브레히트나 스트렐러를 따라 관심을 기울이는 이런 느리지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죽음들에 대해 블랑쇼는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는가? 블랑쇼가 말하는 죽음은 조급한 영웅적 죽음(왕족과 귀족들의 죽음)은 아니지만, 여전히 작가의 죽음이다. 이 차이가 그 자체로 알튀세르와 블랑쇼의 돌이킬 수 없는 발산의 지점을 이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죽음을 소재로 삼는가 하는 문제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와 관련된 진정한 이단점(point of heresy)은 어떤 공산주의인가 하는 문제일 것 같다(우리는 비교적 최근에 공산주의가 하나가 아님을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이단점 안에는 예술(문학, 연극)이 정치 및 과학과 맺는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의 차이, 그리고 다른 한편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쟁점은 내가 보기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논의를 하기에 앞서 먼저 고백컨대, 나는 이 이단점에 대해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블랑쇼에 대해 깊이 알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단지 이 이단점에 대한 나의 생각을 아주 개략적으로 소묘하는 것에 만족하고자 한다.

먼저, 예술이 정치 및 과학과 맺는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의 발산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판단하기에 블랑쇼에게 (정치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학은 그 종별성 자체가 좀처럼 인정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그의 또 다른 절친한 친구였던 바타이유(Georges Bataille)가, 니체(Friedrich Nietzsche)를 따라, 모든 이질성을 동질성으로 환원하는 기존의 과학들은 단지 “노예적 태도”의 산물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타자학(heterology)이라는 이름 아래 “완전히 타자인 것에 대한 과학”을 제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는데,{주49/ Georges Bataille, Vision of Excess: Selected Writings, 1927-1939, ed. Allan Stoekl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5) 97면.} 타자학으로서의 이런 과학은 사실상 문학과의 경계 자체가 모호한 것이다. 블랑쇼는 『우정』이라는 텍스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작가도, 심지어 맑스조차, 지식으로 돌아오듯이 글쓰기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과학이 문학이 되게끔 인도하는 것과 동일한 운동에 의해서만 문학은 …… 과학이 되기 때문이다.” {주50/ Maurice Blanchot, Friendship, trans. Elizabeth Rottenberg,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100면.} 이 때문에 블랑쇼의 공산주의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및 역사과학(역사유물론)보다는 바타이유적인 일반 경제론(낭비의 경제)과 관련을 맺으면서 부정성으로서의 공산주의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알튀세르에게도 공산주의는 절대적 부정성이지만, 그것은 늘 역사유물론과 극단적인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이렇게 말한다.

[알튀세르는] 우리로 하여금 ‘공산주의’라는 통념 자체의 핵심을 지배하는 더욱 더 엄청난 긴장을 직시하도록 강제한다. 왜냐하면 그 통념은 우리에게 철학적으로 가장 대립되는 속성들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즉 절대적 유물론(공산주의의 정치적 개념과 관련된 조건 자체)과 절대적 부정성(공산주의에서 모든 ‘현실주의적’ 이미지를 제거하기 위한 유토피아적 조건)에 동시에 준거하는 속성들 말이다. 공산주의는 한정된 하나의 ‘생산양식’임과 동시에 모든 형태의 인간적 예속의 보편적이고 무한정인 ‘파괴’(항상 이미 시작된, 그러나 결코 종말을 갖지 않을 그런 파괴)여야 한다. {주51/ 에티엔 발리바르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윤소영 역(이론 1993) 172면. 강조는 원저자.}

두 번째 발산은 시간에 대한 이해를 둘러싼 차이이다. 블랑쇼의 시간관은 내게 종말론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알튀세르는 종말론을 목적론과 마찬가지로 강하게 비판한다. 현재로서 경험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죽음’(분명 도래하고 있지만 내가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이 블랑쇼의 시간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현재로서 도래할 수 없는 미래, 도래할 것이면서도 동시에 현재가 될 수 없는 구원자로서의 메시아, 자크 데리다 식으로 표현하자면, 내용이 없는 텅 빈 약속의 형식으로서의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으로 환유되는 것이다. 반면 알튀세르의 시간관은 이런 절대 미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 그 자체가 스스로에 대해 비동시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워런 몬탁은 자신의 탁월한 연구서, 『알튀세르와 동시대인들』의 마지막 장에서 알튀세르가 아직 정확히 맑스주의자가 되기 이전에, 그러니까 알튀세르가 가톨릭 신자였던 시절에 썼던 (출판을 목적으로 했던) 최초의 에세이인 「좋은 감정들의 인터내셔널」을 논하면서, 거기에는 종말론에 대한 매우 뛰어난 비판이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주52/ 워런 몬탁 『알튀세르와 동시대인들』, 최원 역(도서출판 난장)(근간).}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 프랑스의 일부 지식인들 ― 카뮈(Albert Camus), 말로(André Malraux), 마르셀(Gabriel Marcel), 쾨스틀러(Arthur Koestler) ― 은 그들이 서로 갖고 있던 그 모든 정치적・종교적・이론적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기 시작했는데(이 동맹이 바로 알튀세르가 조롱 섞어 ‘좋은 감정들의 인터내셔널’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동맹은 원자폭탄의 등장(그리고 그것의 실제 사용)으로 인해 가능해진 인류의 절멸적 종말 앞에서는 계급적 차이를 비롯한 다양한 입장 차이들이 무의미하며, 이제 ‘보편적 인류’의 이름으로 싸우는 투쟁만이 정당하다는 생각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런 종말론에 반대하면서, 미래에 도래할지도 모르는 인류의 죽음이 아니라 지금 당장 현실에서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의 죽음을 보라고 일갈한다. 봐야 할 것은, 알튀세르에 따르면, 미래의 종말이 아니라 현재 자체 안에 감춰져 있는 또 다른 현재, 아무런 희망 없는 감옥과도 같은 현재인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보지 않고 이런 감옥으로서의 현재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모든 정치적 실천의 봉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알튀세르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그들의 조건이 객관적이기에, 창살들이 진짜이기에, 도망칠 수 있다. 진짜 창살은 부서질 수 있다. 우리에게 자유를!”이라고 말한다. {주53/ Louis Althusser, “The International of Decent Feelings,” The Spectre of Hegel: Early Writings, trans. G. M. Goshgarian (London: Verso 1997) 25면.} 오히려 ‘미래’에 도래할 인류의 종말이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거기서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없는 감옥, 정치적 실천들의 봉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런 이단점을 놓고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가? 아마도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죽음과 맺는 관계가 단 하나만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문학의 공간』에서 블랑쇼는 별로 논하지 않지만, 우리는 코미디가 죽음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다. 2014년에 개봉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영화 <버드맨>(Birdman)의 주인공 리건 톰슨(Riggan Thomson)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사력을 다해 연극단을 이끌며 간신히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어떤 유명 평론가의 악평이 신문 칼럼란에 실리고, 공연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로 인해 자신과 자신의 연극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는 악운이 지속되자, 이에 절망해 자살을 결심한다. 무대용 소품이 아닌 진짜 피스톨을 들고 무대에 올라가 마지막으로 비애에 찬 긴 독백을 마친 후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화면은 블랙 아웃되는데, 당혹감과 함께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 짧지만 긴장으로 가득 찬 검은 스크린에 이어지는 장면에서 우리는 느닷없이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서 카메라는 머리 전체를 붕대로 칭칭 감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비추다가 방향을 돌려 병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한 편의 뉴스를 보여주는데, 그 뉴스를 통해 우리는, 리건 톰슨이 전날 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코를 쐈으며, 뿐만 아니라 그것이 새로운 사실주의를 보여주는 예술적 행위였다고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고,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려지는 것은 분명 블랑쇼가 지속적으로 말하는 죽음의 우연성(곧 결코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계획하거나 결정할 수 없으며 죽음은 항상 아직 우연의 영역에 남아 있다는 것)이지만, 오히려 코미디는 우리의 유한성을 블랑쇼가 말하는 심각함이나 슬픔, 비탄이 아닌 웃음과 함께 폭로한다. 우리가 이 장면에서 웃고 있을 때, 우리는 마치 우리가 죽음과 함께 깔깔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어쩌면 코미디란 우리 곁에 와 있는 죽음이 웃는 소리를 들려주는 그런 장르가 아닐까?

몬탁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블랑쇼만큼이나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의 시 한 편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다. 「한 번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폐지하지 않으리라」(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 하지만 알튀세르와 블랑쇼가 이 폐지될 수 없는 우연을 말하는 방식은 유사하면서도 아마 결코 같지는 않을 것이다. 본래 우연은 스스로와도 다르게 생기지 않았던가?

 

영문초록

This paper, while taking a position of criticizing the 'affect theory', aims to provide an answer to the age old difficult question of how the critique-function and the enjoyment-function of art can be synthesized. This paper first critically reviews Kwang-Hyun Shim's recent essay that tries to answer the same question from the standpoint of the affect theory. Following Louis Althusser's discussion of Bertolt Brecht, this paper puts into question Shim's idea that is also commonly shared by many: namely, the idea that the essential function of art consists in offering art viewers healing effects. According to Althusser, art cannot produce healing effects unlike other practices such as politics or science, since it does not approach life as present in person but only in the mode of representation. In this regard, art is much closer to philosophy than to politics or science. However, Althusser also points out that Brecht failed to comprehend the specificity of the enjoyment that art works provide, ending up in an intellectualist notion of art. This paper argues that, in order to properly understand the enjoyment-function of art which does not contradict its critique-function, it is necessary to introduce the psychoanalytic concept of jouissance that Jacques Lacan developed. According to him, jouissance qua enjoyment of pain should be completely distinguished from pleasure resulting from a satisfaction of needs. Jouissance rather has an essential relationship with death. Understood as jouissance, the artistic enjoyment in itself comes to be able to perform a function of criticizing the life world dominated by needs, efficiency, production, etc. This paper finally explores Maurice Blanchot's theory that views the space of literature as that of death, and draws a conclusion that art is not a practice offering a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world or, even less, an alternative progressive ideology, but must be conceived as a practice of doubt revealing that there is an outside of the world of n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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