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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맑스, <공산주의 선언> 1882년 러시아판 서문

marxpino 2021. 10. 28. 22:48

사이토에 따르면, 말년의 맑스가 러시아에 대해 쓴 텍스트는 그의 생태주의적 관점을 명확히 드러낸다고 한다. 여기 번역해 올리는 공산주의 선언의 러시아판 서문은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공산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겨있다고 알려져 있는 텍스트다(이는 과거에 1980년대 말 한국의 사구체 논쟁 당시에 이미 논의가 된 바도 있다). 그리고 사이토는 이를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잔뜩 기대를 하며 읽어봤지만, 사이토가 얼마간 자의적으로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텍스트 외에 러시아의 자술리치에게 맑스가 보낸 서신도 사이토가 비슷하게 논하는데, 검토해 봤지만 농촌 코뮌(사실 봉건제 붕괴 후에 1~2세기 정도 존재하다 대부분 붕괴했지만 러시아 등에서 살아남은 농촌 코뮌을 가리킨다)이 도래할 공산주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 정도가 담겨 있을 뿐이다. 딱히 생태주의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금 사이토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읽고 있는데,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어쨌든 여기 공산주의 선언 러시아판 서문(영역본)을 초벌 번역해서 올린다.


 

 

<공산주의 선언> 1882년 러시아판 서문

 

<공산주의 선언>의 첫 번째 러시아판은 바쿠닌에 의해 번역되었고 일찍이 콜로코Koloko의 인쇄소[자유 러시아 인쇄소Free Russian Printing House]에 의해 1860년대에 출판되었다. 당시 서구는 그 판본에 대해 단지 문헌적 호기심만 가질 수 있었다. 오늘날 이 같은 관점은 불가능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이 당시(1847년 12월) 얼마나 제한된 영역만을 차지했었는가는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반대당들[야당]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에 관련된 [선언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인다. 정확히 러시아와 미국이 여기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당시 러시아[짜르]는 모든 유럽적 반동의 마지막 거대한 예비군을 이루었으며, 미국은 이민을 통해 유럽의 잉여 프롤레타리아적 노동력을 빨아들였다. 양 나라는 유럽에 원재료를 공급했고 동시에 유럽의 산업 생산물 판매를 위한 시장이었다. 따라서 양 나라는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기존 유럽 체계의 기둥들이었다. 

 

오늘날 사정은 매우 다르다! 정확히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은 거대한 농업 생산을 위해 북미로 향하고, 이로 인한 경쟁 때문에 크고 작은 유럽의 토지 소유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동시에 이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은 서구 유럽, 특히 영국이 지금까지 누려오던 산업독점을 곧 깨버릴 것이 틀림없는 규모로, 정력적으로, 미국으로 하여금 엄청난 산업자원들을 개발/착취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두 상황[미국의 농업에서와 산업에서의 발전]은 미국 자체에 대해 혁명적인 방식으로 반작용한다. 점차, [미국의] 전체 정치 헌정의 기초인 농부들의 중소 규모 토지의 소유가 거대 농장의 경쟁에 굴복하고 있다. 동시에 자본의 엄청난 집중이 처음으로 산업적 지역에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 1848~49년의 혁명 기간 동안 유럽의 군주들 뿐 아니라 유럽의 부르주아지는 [당시 막] 각성하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의 유일한 구원을 러시아의 개입에서 발견했다. 짜르가 유럽적 반동의 대장이라고 선언됐다. 오늘날 짜르는 가치나Gatchina에 혁명의 전범으로 잡혀 있고, 러시아는 유럽적 혁명 행위의 전위vanguard를 이룬다.

 

<공산주의 선언>은 현대 부르주아 소유의 필연적이고 임박한 해체 선언을 그 목표로 가졌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한 빠르게 피어나는 자본주의적 사취와 부르주아 소유의 맞은편에서 소농들이 토지의 반 이상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많이 붕괴되긴 했지만, 러시아의 옵쉬키나Obshchina라는 태고의 토지 공유 형태는 곧바로 공산주의적 공유라는 상위의 형태로 이행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정반대로, 그것은 먼저 서구의 역사적 진화와 같은 해체과정을 통과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가능한 유일한 답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 혁명이 서구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위한 신호가 되고, 그리하여 양쪽이 서로를 보완한다면, 러시아의 현재 토지 공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을 위한 출발점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1882년 1월 21일, 런던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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