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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정치의 종언인가, 종언 없는 정치인가? / 발리바르

marxpino 2021. 9. 29. 10:15

아래 올린 발리바르 인터뷰와 관련해서 일독해 봐야할 텍스트입니다. 십년도 더 전에 번역한 것이고 제 기억으로 <시와 반시>에 실렸던 번역입니다만 자세한 서지 사항은 기억에 없군요. 오래전에 번역한 거라 제가 요즘 사용하는 번역용어들과 차이가 있을 테지만 그냥 그대로 올립니다.


 

정치의 종언인가, 종언 없는 정치인가?

— 맑스와 “공산주의적 정치”의 아포리아

 

에티엔 발리바르 Etienne Balibar

(번역: 최 원)

 

* 2008년 12월 17일 수요일에 연구 집단 “넓은 의미에서의 철학”에서 발표한 이 발표문의 예전 판본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2008년 11월 26~28일에 열린 국제 콜로키움 “공산당 선언 160주년 맑스 사유의 재독해”(Universidad Diego Portales y Universidad Arcis, Santiago de Chile)에서 발표됐다.

 

역자해설

발리바르는 따로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 좌파 철학자로, 현재 프랑스 파리 10대학 명예교수 및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까지 자신의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함께 맑스주의 ‘역사과학’의 대상과 범위를 확정하기 위한 ‘인식론’적 기획에 매달렸지만, 70년대 말부터는 맑스주의의 위기 속에서 맑스주의를 전화하기 위한 이론적 모색을 꾀한다. 특히 그는 맑스주의의 무능력의 중심 원인을 (그것이 자유지상주의와 은밀하게 공유하는) ‘이론적 아나키즘’의 문제에서 찾으면서, 국가사멸론을 비판하고, 국가, 정치, 시민권, 시민권과 민족체의 관계 등에 관한 (맑스주의의 틀을 넘어가는) 분석을 행한다.

기존의 맑스주의가 부르주아적 환상으로 치부하던 시민권의 언어(자유, 평등)를 다시 계급투쟁을 위한 언어로 급진적으로 재전유하기 위해 애쓰면서, 1980년대에 발리바르가 주목한 현상은 유럽 각국의 공산당 및 다양한 노동운동이 사회 안에서 “인민의 호민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전후 유럽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민주적 시민권의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로마사 논고』의 마키아벨리에 준거하여 이를 갈등적 민주주의론(민주주의는 ‘합의’보다는 ‘갈등’에 기초해 있다는 관점)으로 발전시키는데, 여기서 그의 초점은 계급투쟁을 (정치적 시민권과 결합된) 사회적 시민권의 틀 안에서 이론화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발리바르는 해방, 변혁, 시민인륜civilité이라는 서로 환원될 수 없는 정치의 세 개념을 구분하고, 갈등적 민주주의를 이 가운데 특히 ‘시민인륜의 정치’의 맥락에서 새롭게 정식화한다. 시민인륜의 정치란 동일성의 극단적 폭력을 제어하는 정치로서, (종족, 종교, 성, 계급적 소속 등에 관련된) 다양한 동일성들이 서로 갈등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정상적”인 헤게모니 공간을 창출하는 정치를 일컫는다. 이렇게 해서 80년대에는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갈등적 민주주의의 반(反)폭력의 정치로서의 측면이 전면에 부각된다(이러한 논의방향은 사실 마키아벨리의 본래 논의에도 부합하는 것인데, 이에 관해서는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강정인ㆍ안성재 역, 한길사, 2003년, 86쪽 및 100쪽을 보라).

여기 번역한 발리바르의 논문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맑스의 논의, 특히 『공산당 선언』과 『자본』 1권의 논의를 다시 검토하는 논문이다. 이 두 텍스트는 공히 ‘계급투쟁 = 내전’이라는 등식을 중심으로 논의를 조직하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비교가 계발적이 되는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계급투쟁, 내전, 정치 — 이 삼자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 정확히 문제의 핵심이다.

『선언』은 모든 계급투쟁을 “정치적 투쟁”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정치의 종언”이라는 종말론적 전망 속에 기입함으로써, 계급투쟁이 정치에 대해 맺는 관계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맑스는 계급투쟁을 (더욱 비정치적인 통념인) ‘내전’과 동일시함으로써 좀 더 전투적이고 급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이것이 계급투쟁과 정치의 관계의 아포리아를 한층 더 강화한다. 『선언』에서 맑스는 계급투쟁을 “가능한 화해 없는 내전”으로 이해하면서, 계급들이 “사회가 파괴되는 절벽 끝”으로 역사를 몰고 가서 최후의 “결투”를 벌이고, 이를 통해 일거에 모든 착취와 지배의 체계를 종식시키는 “묵시록적” 시나리오에 따라 사고한다(‘혁명적 폭력’을 모든 폭력을 종식시키는 최후의 폭력으로 “상상”하면서).

그러나 『자본』 1권에서 맑스는 ‘정상적 노동일’의 사회적 입법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계급투쟁 = 내전’이라는 동일한 등식의 의미를 완전히 전도시킨다. 내전은 더 이상 계급투쟁의 화해 불가능한 성격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원 불가능한 성격을 지시하며, 무엇보다도 그것은 고정된 두 계급 간의 ‘결투’의 논리에 따라 해석되지 않는다. 계급적 동일성은 계급투쟁 속에서 형성되고 분해되는 것일 따름이며, 더 나아가서 계급 간의 내전은 하나의 ‘역사’를 가지기 때문에, 순수한 계급적 주체들과는 다른 이질적 요소들[배달부들]facteurs의 개입에 의해 매개된다. 곧 국가, 공장감독관들, “시민사회”의 여론 등의 개입이 그것이다. 특히 공장감독관들이 (공장입법 등을 주도함으로써) 착취의 기술자로서 뿐만 아니라 초과-착취의 극단적 폭력을 제한하는 노동자들의 “대변인”으로서의 이중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본』이 들려주는 서사의 “긍정적 주인공”이 되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발리바르는 이를 (마키아벨리적인) 갈등적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의 이론화라고 해석한다.

‘정상적 노동일’을 위한 투쟁이라는 표현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여기서는 계급투쟁을, 극단적 폭력과 초과착취로 점철된 “예외상태”로부터 착취의 정상성 내지 정상화의 형태로 이행하기 위한 투쟁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착취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통제를 규범적 논리가 아닌 세력관계의 논리에 따라 사고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계급투쟁이 ‘시민인륜의 정치’의 탁월한 예가 되는 것은 바로 계급투쟁이 극단적 폭력을 제어하고 정상성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이러한 투쟁으로 이해되는 한에서인 것이다(계급투쟁은 여성의 투쟁이나 다른 소수자의 투쟁들과 마찬가지로 해방, 변혁, 시민인륜 중 어느 하나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사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최종적으로 갈등적 민주주의의 관점을 이론화하는 『자본』의 이러한 정식을 맑스가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맑스는 『선언』의 정식화뿐만 아니라 『자본』의 정식화를 모두 부당화하도록 강제되었는데, 왜냐하면 국민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무장대립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제 내전, 곧 파리 코뮌의 봉기가 현실에서 발발했기 때문이다. 맑스의 질문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발발한 내전의 한복판에 계급투쟁을 어떻게 다시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군사적 대결 속에서 닫혀버린 정치의 공간을 다시 열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으로 바뀐다. 이것은 바로 봉기(또는 해방)의 정치와 시민인륜의 정치의 변증법적 관계를 이해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우리는 이 논문을 통해 “혁명의 문명화”라는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이 문제에 관해서 참조할 수 있는 발리바르의 다른 논문으로는 “Sed intelligere”, Lignes [nouvelle série] 4, 2001와 “Democratic Citizenship or popular Sovereignty?”, We, The People of Europ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4 등이 있다).

 

 

『공산당 선언』(1848)의 2장 끝에서 발견되는 유명한 한 구절에서 출발해볼까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구절은, 맑스가 공산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몇몇 이의제기를 설명하고 반박한 후에 자본주의로부터 무계급 사회로 나아가는 혁명적 수단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에 착수하는 순간에 발견된다(2장의 마지막 구절이 표현하듯이, 이 무계급 사회 안에서는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association이 발생”하는데, 이 연합은 공산주의의 암묵적 정의라고 간주할만한 것이다). 거기서 맑스는 이렇게 쓴다. “노동자 혁명의 첫 번째 단계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으로 구성하는 것,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다.” {주1. 내가 인용하는 번역은 1959년에 출판된 에디숑 소시알Editions Sociales의 것이다(편집자에 의해 “심각하게 재검토되고 아주 많이 개선된” 로라 라파르귀Laura Lafargue의 번역). } [민주주의 쟁취라는 말의] 상응하는 독일어 표현은 die Erkämpfung der Demokratie인데, 이 표현은 전투나 투쟁에 의해 민주주의에 도달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로 해설될 만한 것이고, 따라서 뒤이어 설명되는 수단들은 그 자체로 발본적으로 민주적 성격을 갖거나 또는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용어의 절대적 의미에서 역사 속에 발생하게 만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따라서 맑스가 썼으리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드물지는 않은 정식화들의 일부를 이룬다. 반자본주의적 혁명과정을 민주화(경우에 따라서는 민주주의가 현재까지 취해온 제한된 형태들 하에서의 민주주의 그 자체의 민주화)와 동일시하고, 동시에 계급구조 및 그 구조의 법적ㆍ정치적ㆍ경제적 조건들의 파괴와 동일시하는 정식화들 말이다.이러한 정식의 해석은 당연히 그 맥락을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바로 여기서 곤란한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이것들은 우선 의미론적인 문제들(또는 우리가 오늘날 더 이상 그 의미론적 차원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물론 텍스트 전체에 의해 강조되는 민주주의 쟁취의 이러한 과정과 계급적대를 발생시키는 소유 및 생산의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혁명적 폭력의 필연적 사용 간의 밀접한 연관에 관한 경우가 그렇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권을 이용하여 전체 자본을 부르주아지로부터 조금씩 빼앗는다. 처음에 이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고, 오직 소유법과 생산의 부르주아적 체제의 전제적 침해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정치권력은 또 다른 계급의 억압을 위한 한 계급의 조직된 권력이다.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 속에서 강력하게 계급으로 구성되고, 지배계급이 되어 생산의 구체제를 폭력에 의해 파괴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동시에 계급들 일반을 파괴하고,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 자기 자신의 지배를 파괴할 것이다…….” 비록 그 말이 사용되진 않지만, 맑스 자신과 최소한 일부 맑스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고 부르는 것의 적어도 일부가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대 그 자체의 격화를 통과하거나 또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도식을 따르는 적대의 변증법적 “지양”이라는 관념을 기초하기 위해, 그 텍스트의 독어 원본이 게발트Gewalt[권력/폭력](및 파생형용사 게발트삼gewaltsam)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이중적 의미작용에 기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 문제의 집요함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적으로 동시적이고, 그리고 계기적으로,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 권력이자, 그 확립된 형태 안에 있는 이러한 권력을 전복하는 반-제도적이거나, 어쨌든 법 외적인, 폭력이다. 그리하여 투쟁에 의해 쟁취하는 것이 문제인 “민주주의”는 제도의 편에서, 그리고 그것의 반대편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필시 이 텍스트의 주요한 곤란을 (또는 수수께끼를) 형성하는 것으로 직접 이어지는 것 같은데, 이 곤란은 맑스주의가 상이한 형태 속에서, 그리고 상이한 경향 속에서, 결코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주는 데에 진정 성공하지 못했다고 알려진 것이다. 혁명과정 및 그 사회적 목표들의 달성으로부터 귀결하는 “정치적 국가의 종언”에 대한 텍스트의 준거가 그것이다.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정식들이 우리가 상기한 바 있는 부정의 부정에 대한 준거를 둘러싼다. “발전과정 속에서 일단 계급적 차이들이 사라지고 모든 생산이 연합된 개인들의 손에 집중되면, 공적 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잃게 된다. 옛 부르주아 사회가 계급들 및 계급적대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 연합이 발생하는데, 그 속에서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은……, 운운.” 이러한 정식들은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공적 권력에 대한 준거, 따라서 권위에 대한 준거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정치적”이지 않거나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은 하나의 제도에 대한 준거와 함께,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자체를 넘어 공산주의로까지 운반해가는, 따라서 권력으로서든 폭력으로서든 간에 더 이상 어떤 게발트에도 속하지 않은 평등한 “연합”에 대한 준거를 교차시킨다.

이러한 역설적 응축은 맑스의 텍스트 및 착취의 종언이라는 그의 문제설정의 주요원천 가운데 하나인 1829년 생시몽 학설의 이론적 해명의 핵심을 이루는, “적대”와 “연합”의 대립을 거의 문자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에 의해(부분적으로는 불어 원문을 그대로 베껴 씀으로써) 지탱된다. 그러나 생시몽주의자들의 논변은 적대의 조건들이 적대의 격화에 의해 폐지되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논리에 기초해 있기는커녕, 반대로 적대와 연합이라는 그 두 가지 원칙들이 전(全)역사를 통해 영속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는 관념에 기초한다. 그 두 가지 원칙들은 (특히 생시몽주의자들에 따르면, 민간적 권력과 군사적 권력의 상호침투, 또는 지배와 힘의 상호침투에 뿌리내리고 있는) 적대의 완화[격화가 아니라]가 (산업과 유통, 더 일반적으로는 경제의 평화적 작동들에 뿌리내리고 있는) 연합의 우위로 이어지는 데까지 불비례하여 발전한다.

이렇게 해서 『선언』은 (바로 앞서 1846년에 나왔고, 이 논점에 길을 터준 『철학의 빈곤』과 함께) 맑스가 역사발전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 또는 역사발전을 구성하는, “계급투쟁”이라는 관념 속에서 결합되는 집단행동들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역설하는 텍스트 중 하나이자(이에 관해 『선언』은 1장의 중심구절에서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적 투쟁”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권력”이라는 통념(따라서 국가라는 통념)에 관련된 아주 깊은 모호함을 대가로, “정치의 종언”이라는 종말론적 주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텍스트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포리아는 정치라는 범주의 “다의성”(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정치는 여러가지 의미로 이해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언표할 만한 것)을 상기하거나 또는 최초의 범주의 의미와 기능을 그 발전의 측면에서 전도시키는 변증법적 전진을 상기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아포리아는, 맑스에 의해 소묘되고, 맑스가 현재(이미 역사 속 “내밀한 곳에” 주어져 있는 종말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인식할 가능성으로서의 종말론적 현재)에 특징적이라고 묘사하는, 역사적 현상의 본성을 지시하는 통념들 각각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공산주의이고, 민주주의이며, 무엇보다도 계급투쟁 자체이다. 역사의 동력을 이루고 방향을 지시하는 계급투쟁의 기능은 다음과 같은 사실, 곧 계급투쟁은 “정치”라는 이름 하에 역사 안에서 발견될 만한 “정치” 제도의 어떤 정의들, 어떤 형태들로도 환원될 수 없지만, 전적으로 동시에 그 자신의 고유한 조건들에 대해 행동하고 그 조건들을 변혁할 수 있는 역량capacité을 정치에 최초로 부여하는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계급투쟁은 따라서 “비정치적apolitique” 또는 “반정치적antipolitique”이면서 동시에 “원정치적archipolitique”이거나 “과잉정치적hyperpolitique”이다. 계급투쟁이 정치에 대해 맺는 관계는 구성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종말이자 출발, 또는 재출발을 구성한다. 다른 사람들의 정치 개념들과 비교ㆍ대립시켜 볼만한, “맑스에게서의 정치 개념”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대한 성찰의 모든 불확실함 및 동시에 모든 이점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상황의 곤란은 다음과 같은 이중적 상황에 의해 배가된다.

첫째, 그 곤란은 단지 철학적 해석 또는 범주화의 아카데믹한 문제만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 곤란은 아주 심원하게 맑스주의 자체, 맑스주의가 상황들에 대해 행동할 수 있는 역량과 상황들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조직할 역량을 내부로부터 변질affecte시킨다. 곧 그 곤란은 맑스주의를 변질시켰는데, 왜냐하면 [이제] 맑스주의는 본질적으로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 이는 맑스주의의 역사와 그것의 담론적 구성이 더 이상 어떤 것도 우리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다거나 우리에게는 어떤 비판적 용도도 갖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많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 내가 다른 곳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처럼, 맑스주의, 그리고 이미 맑스의 맑스주의 — 알다시피 맑스는 “확실한 것은 내가 맑스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라는 재담으로 여기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 는, 이론과 실천을 절합하는 언어, 또 계급투쟁과 정치의 관계, 따라서 계급투쟁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반정립적인 담론들 사이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유지하도록 허락하는 언어를 발견하는 데에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문제가 되는 것이 바쿠닌의 것과 같은 반정치적antipolitique 아나키즘이나 자생성주의이든, 아니면 라쌀의 것과 같은 제도적 정치와 “당형태” 안에서 조직되는 정치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 또는 이러한 갈라짐écartèlement은 점점 더 생생해지는 내적 갈등들을 대가로 맑스주의의 역사적 경로 전체를 통해 재생산된다. 그렇게 해서, 맑스주의의 정치 개념은 “역사를 만드는 것은 계급투쟁”이라는 최초의 관념으로 환원되지만, 그것은 곧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고서는 이 투쟁의 특징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측면에서 약점을 이루는 이러한 아포리아는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의 힘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것은 이 아포리아를 청산하는 것을 막아주며, 피상적이고 쓸모없이 역설적인 [이론] 구성construction도 막아준다. 정치의 종언을 예상함으로써, 그리고 예상에 의해 이러한 종언 자체를 어떤 방식으로 “실천함”으로써, 정치를 발본적으로 새로운 기초들 위에 재정초할 것을 계획하는 담론의 주름들 속에 정치 그 자체에 구성적인 어떤 문제가 숨어있는가 하는 질문이 폐부를 찌르듯이 다시 돌발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정세를 이유로 해서든 사회적 역사를 이유로 해서든, 또는 아마도 이 순간 그렇듯이 동시에 둘 다를 이유로 해서든 간에, 계급투쟁이라는 관념이 새롭게 주목되도록 강제되거나, 우회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실제로 충분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러한 정식화들로 돌아오거나 또는 그 정식화들의 의미작용 및 그 결과들을 따져보는 끝없는 과정을 다시 행하도록 압박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내가 후론할 『선언』의 결정적인 구절에서 맑스가 계급투쟁이라는 통념과 내전이라는 통념 사이에 평행을, 심지어 정의상의 등식équation을 수립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내전이라는 관념은 적대, 그리고 권력과 폭력(대항-권력 또는 권력에 대항한 권력으로서의 폭력)의 절합에 대해 적대가 행하는 반작용들에 관련된 정식화들의 의미작용을 지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의 은유라고 할지라도(그러나 또한 불가피하게 문제가 될 것은 은유라는 관념의 의미 자체이다), 이러한 등식은 결과적으로 정치의 종언이라는 역설들을 전위시키고 그것들을 강화한다. 왜냐하면 내전은 — 그것의 고대적 또는 근대적 관념들 속에서 — 정치의 심장부 자체에서 정치의 한계 또는 정치의 불가능성의 조건들을 발생시키는, 계급투쟁 자체보다도 심지어 더 탁월하게 “비정치적인impolitique” 통념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계급투쟁은 내전의 한 형태라는 관념, 또는 심지어 탁월한 의미에서의 내전이라는 관념, 곧 이러저러한 도시[국가]cité 또는 이러저러한 공동체를 단지 일시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에 반해 분할시킬 뿐 아니라, 국가l'Etat 또는 사회 그 자체를 화해불가능하게 분할하는 내전이라는 이러한 관념은 이중구속의 형상으로 제시된다. 계급투쟁은 [정치의] 가능성의 조건이자(내전, 곧 계급투쟁이 없다면, 용어의 강한 의미에서 정치란 없거나, 또는 지배계급들의 몇몇 대표자들을 다른 대표자들로 대체하는 것 외에는 다른 “쟁점enjeu”이 없는 정치적 “게임jeu”의 외양만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불가능성의 조건을 이룬다(왜냐하면 내전의 형상은 발본적 갈라짐 또는 분열Spaltung의 형상이기 때문인데, 이 속에서 정치적 공간은, 그것이 교통으로 직조되어 있든 갈등들로 직조되어 있든 간에, 그 자체로 분해되어 서로 완전히 외적인 또는 양립 불가능한 항들에게만 자리를 남겨두게 된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라면, 계급투쟁과 내전의 등치, 계급투쟁을 그 직접적인 기원들과 원천들을 넘어서, 그 주인공과 형태에 있어서 항상 변형되고 연장되는 “내전”으로 보는 해석이 [맑스주의의] 우회불가능한 “이단점”point d’hérésie을 이루었다고 해서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곧 맑스주의 역사 전체를 통해 맑스주의가 자기분열하게끔 영속적으로 강제하고, 맑스주의를 부인과 억압의 양자택일에 종속시킨 “이단점” 말이다. 내가 이 발표문의 이어지는 부분에서, 정치의 실천 자체에 기입되어 있고, “계급투쟁”과 “내전”의 등식 및 그 계기적인 해석들 주변에 있는, “정치의 종언”으로서의 “정치”라는 맑스의 개념의 아포리아들에 대한 토론에 집중하려고 계획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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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론적 “계기들”의 시기구분을 소묘해볼 수 있는데, 동시에 그것들은 정치적 계기들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의 것들은 가장 오래된 것들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생략할 수 없는 잇따르는 되풀이들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부과한다. 그 계기들은 우리가 맑스에게서 “읽”고 활용하는 말들의 의미 자체에 영향을 끼친다. 그 말들의 의미는 치유불가능하게 “표류”했지만, 분석적으로 그것들을 분리하고, 그렇게 우리의 현재의 견지에서 계열화하거나 관점짓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내 생각으로는 세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는데, 이것들은 전진적으로 근대성에서 포스트-근대성으로 이행하는 담론 구성체들의 역사와 정치ㆍ사회적 세계의 역사에 속한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계기는 맑스가 『선언』의 정식을 그 도발적 발본성 속에서 유지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가 『선언』의 혁명적 시각에 부단히 준거했으며, 어떤 공산주의적 시각을 고정하기 위해,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절합을 고정하기 위해 『선언』이 활용한 말들 자체로 부단히 돌아갔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전과 계급투쟁의] 등식은 순수하고 단순하게 포기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것은 — 적어도 처음에는 — 발본적으로 상이한 역사적 준거와 함께 상이한 용어들로 재정식화되었는데, 이는 실제로 정치와 그 “개념”의 동일시라는 관점에서 그 등식의 의미를 전도시키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맑스가 정치에 대한 하나 개념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며, 더욱이 정치경제학에 대한 하나 비판, 또는 이데올로기나 실천praxis에 대한 하나 철학적 문제설정을 발전시킨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그가 또한 계급투쟁에 대한 하나의 유일한 개념만을 발전시킨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주제에서 하나의 다가적(多價的)이고 다형적인 문제설정을 개방했는데, 그 문제설정의 기초는 계급투쟁의 형태들의 영속적인 대체와 그 형태들의 역사적 효과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질문이다. 내가 여기서 준거하고 있는 것은 특히 (정상적 “노동일”을 위한, 따라서 사회적 입법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관한) 『자본』 1권의 중심적 전개인데, 그 속에서 『선언』의 말들 자체는 그 최초의 용법에 반하여 뒤집어진다. 이러한 면에서, 맑스 자신이 자기 사유의 이러한 내적 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했는지 자문해보는 것은 적절할 테지만, 그 대답 — 많은 결과들을 가져올 — 은 다음과 같은 사실상의 이유 때문에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곧, 역사적 사건들이 극적인 상황들 속에서 맑스로 하여금 『선언』과 『자본』으로부터 유래하는 “계급투쟁”의 두 가지 셰마를 동시에 부당화하도록 이끌었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이는 “맑스주의자들”이 성향과 정세에 따라 이 셰마들 가운데 하나 또는 다른 하나를 계속 인용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 맑스에게 강제되었고, 전적으로 불완전한 답변을 제외한다면 그에게서 직접적으로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던 문제는, 이번에는 (파리 코뮌이 그 전형적 사례를 이루는) 동일한 국민의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무장대립이라는 의미에서의 내전의 상황 속으로 계급투쟁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주목할 만한 두 번째 계기 — 나는 여기서 조금 빨리 진행할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오늘 나의 발표문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는 “전쟁” 또는 “전쟁의 지속”이라는 용어들로 정치를 설명하는 것들인데, 이 설명들은 레닌이 혁명적 시기의 계기들 및 양자택일들을 “전략”의 용어들로 정의하도록 이끌렸던 방식 속에서 자신의 전제를 발견한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포스트-레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여기서 정확히 권력장악이라는 계기를 염두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무엇보다도 권력장악 이후의 계기들, 혁명적 내전이라는 계기 및 “네프”NEP라는 계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네프”에서는 계급투쟁의 “전선들”이 어떤 의미에서 역전되는데, 왜냐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공산주의에 도달하기 위해 사회주의의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어떤 형태를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설명들은, 맑스주의라는 명칭으로 어떤 범위를 지칭하든 간에, 맑스주의 쪽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철학자들이 맑스주의에 대해 취하는 입장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는 독립적으로 그들이 그 문제에 관한 맑스주의의 근본 질문들을 상속하는 바로 그 계기 안에서 정치와 전쟁의 가역성의 효과들을 검토해보는 것이다. 나는 이 계기가 푸코에게까지 연장된다고 생각하는데, 클라우제비츠의 정식을 뒤집어 정치가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지속”이라고 주장할 필요성에 대해 그가 행한 유명한 정식화들은 거꾸로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가 질문하는 지적인 틀을 완전히 재정의했다. 그러나 내가 일반적으로 “포스트-레닌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이 계기는 또한 푸코에 앞선 저자들, 특히 그람시와 칼 슈미트를 포함한다. 나는 레닌주의에 대한 수용과 변형 속에서, 이들이 원거리에서 일종의 대칭적 짝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다양한 되풀이들의 대립 안에서 작동 중인 것은 정치라는 장 안에서의 적대라는 범주의 의미작용 자체에 대한 성찰이요, 적대 없이는 정치가 없으며, 진정 적대, 갈등, 세력관계발전으로서가 아니라면 정치가 없다는 테제의 의미작용 자체에 대한 성찰이다. 이 성찰이, 적어도 우리에게는, 맑스주의에 준거해서만, 그리고 심지어 계급들의 내전이라는 관념이 갖는 함의들의 반복 — 필요한 경우에는 비판과 제한 — 으로서만 정식화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의 것인 세 번째 계기가 있는데, 그 안에서 [내전과 계급투쟁을 등치시키는] 맑스의 등식은 또 다른 유형의 되풀이에 종속된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지구적 내전”이라고 느끼는 상황에 대한 분석의 견지에서 정치의 양태들과 쟁점들에 대해 사고하려고 시도하는 동시대의 담론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이러한 “지구적 내전”은 “때로는 공공연하고 때로는 은폐된 것”이라고 맑스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선언』의 정식화들 안에서처럼 시간적 연속이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리적이거나 사회적 공간 안에서 상이한 형상들의 중첩이 문제라는 점만 제외하면 그렇다). 주로 하트와 네그리의 것과 같은 설명에서 중심적인 이 테마는, 그들이 “삶권력”이라고 부르면서 제안하는 새로운 혁명정치를 정의하는 특징을 (그 자체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다양한 전쟁들로 이루어진) “지구적 내전”과 다중(그들의 저항들 및 소통의 양식들과 함께) 간의 반정립으로부터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러한 테마는 테러리즘과 대항-테러리즘의 발전들 — 서양(특히 미국)의 세계 내 헤게모니에 대한 문제삼기와 다소간 외연을 같이 하는 발전들 — 을 전후하여 나온 다른 저자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적 내전”은 폭력들의 분배를 묘사하기 위한, 그리고 경계들에 대한, 국가에 대한,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폭력들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한 모든 종류의 상이한 셰마들을 함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공통적인 것은 바로 맑스가 파리코뮌 이후 제기한 질문의 반복, 확장, 재정식화가 있다는 것이다. 곧, 계급투쟁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거나, 부정하거나, 휩쓸어버리는 내전 속으로, 어떻게 계급투쟁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정치를) “복귀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 질문은 분명히, 어떤 의미에서 자본주의가 단지 생산적 체계 또는 질서일 뿐 아니라 또한 (인간에 대해, 자연에 대해, 문화에 대해, 공동체에 대해, 시민들에 대해) 파괴적이거나 자기-파괴적인 체계인가 하는 질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제한 없는 축적의 담지자로서 부르주아지의 지배로부터 귀결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그리고 더욱 일반적으로는 사회의, 생존조건들의 분해에 관해 맑스가 『선언』에서 제기한 묵시록적인 질문들과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맑스주의의 궤적이 정치의 비정치적 측면에 대해 무엇을 개념화하도록 허락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끌리는데, 이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 정치의 “또 다른 무대[장면]”라고 불렀던 것이다. {주2. 에티엔 발리바르, 「「정치의 세 개념」, 『대중들의 공포: 맑스 전과 후의 정치와 철학』, 최원/서관모 역, 도서출판 b,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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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나는 이미 말했듯이 이 발표문의 뒷부분에서 이 세 가지 계기들 가운데 첫 번째 계기, 곧 맑스가 『선언』에서 계급투쟁과 내전과의 등가성이라는 테제를 언표한 방식과 맑스가 나중에 그것을 특히 『자본』에서 “정정”한 방식에 집중할 것이다.

글자 그대로 인용을 함으로써 시작할 필요가 있는 두 가지 언표가 여기서는 결정적이다. 그것들은 『공산당 선언』의 1장에 나오는 것이다. 우선 매우 종종 논평되곤 하는, 논의를 여는 유명한 문구들이 있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을 뿐이다. 자유인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장인과 직공, 한마디로 항상 대립하는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때로는 공공연하고 때로는 은폐된, 중단 없는 전투를 벌여왔는데, 이 전투는 항상 전체 사회의 혁명적 변혁으로 종결되든지, 아니면 상쟁하는 두 계급의 공멸로 종결되었다. [……] 봉건 사회의 폐허 위에 세워진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적대들을 폐지하지 않았다. 새로운 계급들, 새로운 억압의 조건들, 새로운 투쟁의 형태들로 과거의 것들을 대체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동일한 테마가 1장 끝에, 내가 앞서 인용한 민주주의 쟁취와 정치의 종언에 대한 정식들이 나오기 바로 전에, 분명히 드러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의 국면들을 개략적으로 소묘함으로써 우리는 다소간 은폐된 내전의 역사를 서술했는데, 그것은 이러한 전쟁이 공공연한 혁명으로 폭발하고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자신의 지배를 정초할 때까지 현사회를 괴롭힌다.”

이러한 정식화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언』의 텍스트를 관통하고 각각 자신의 고유한 계보를 갖는 몇몇 의미론적 계열들의 교차에 그 정식화들을 기입할 필요가 있다. {주3. 유사하게 생시몽주의자들에 의해 대립되어 구성되는 적대와 연합이라는 두 용어는 각각 칸트와 루소에 준거한다. } 그러나 또한 역사적 문서의 자리를 찾아줄 필요가 있다. 『선언』에 몇 달 앞서 『철학의 빈곤』에서 맑스는 (불어로) 똑같이 계급투쟁에 관해 “내전”을 말하고, 프랑스 혁명의 애국적 정식들을 반향하는 조르주 상드Gerge Sand의 웅변적 정식을 인용한다. “전투가 아니라면 죽음이며 유혈투쟁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질문이 불가항력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이런 식이다.” 이와 같은 것이 마지막 계급사회의 폐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진화들이 달성되는 데에 수단이 되는 정치적 혁명들의 법칙이다. “사회적 전쟁”이라는 용어는 그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이 용어는 특히 1844년에 집필되고 1852년에 유고작으로 출판된 발자크Balzac의 소설 『농민들』에서 발견되고, 또 당연히 그것을 “혁명적 독재”라는 통념에 연결한 블랑키와 블랑키주의자들에게서 발견된다. 그 용어는 산업혁명의 영국과 차티스트 운동을, 생활조건들과 감정에 의해 서로 분리된 적대적인 두 개의 국민으로 잘려진 하나의 국민으로 그리는, 디스라엘리Disraëli의 소설 『사이빌 또는 두 개의 국민Sybil or the Two Nations』 (1845) 안에 있는 유명한 정식들을 만들어 냈는데, 이 소설은 과거 노예제 사회들 내에 피부색 구분선color line에 의해 만들어진 인종 관계들 및 분리와 관련하여 오늘날 여전히 인용된다. 같은 시기, 엥엘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 대해 쓴 1844년 논문에서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지를 “두 개의 인종만큼이나 발본적으로 이질적인 두 개의 국민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식화들 전체는 안정stasis 및 폭동tumultum 또는 내전bellum civile에 대한 그리스적이고 로마적인 기억들에 의해 삼투되어 있는데, 로마의 경우 그것은 예외상태 및 일시적 독재라는 테마와 접합되어 있고{주4. Cf. 조르주 아감벤의 최근 저서 『예외상태 Etat d'Exception』(Editions du Seuil 2003).}, 그리스의 경우에는 도시[국가]들의 몰락이라는 테마와 접합되어 있다.{주5. Cf. Nicole Loraux : La cité divisée. Payot 1997.} 1976~77년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의 푸코의 계보학적 작업 이래, 똑 같이 우리는 고전시대의 영국ㆍ프랑스 저술가들이 최초의 정복에 기초한 군주제적 제도들의 기원을 설명하는 수단이 되는 “인종들의 전쟁”이라는 테마체계의 계보 안에 그 정식화들을 위치시키는 법을 배웠다.『선언』 안에서 이러한 테마체계는 전위되고 동시에 일반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외양상의 제도적 안정성의 국면들과 임계적이거나 혁명적인 국면들의 교대를 설명하는, “때로는 공공연하고 때로는 은폐된 내전”이라는 주장을 수단으로 역사의 총체를 설명하는 하나의 도식이 된다. 마침내 그것은 프랑스 혁명의 기억들(“우애가 아니면 죽음을”)을 수단으로, 또 주인과 노예의 대결이라는 헤겔적 도식의 전위를 수단으로 해서, 목숨을 건 투쟁,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용어들로 발본화된다.{주6. 푸코가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정식을 역전시킬 것을 제안함으로써 전투로서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지속”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자기 자신의 계보학에 착수하게 될 것은 바로 이것에 반대해서이다.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de Collège de France 1975-1976, Gallimard-Seuil 2007, p. 16 sq., 146-147.}

 

내 생각에, 이러한 의미심장한 이질적인 계열들로부터 물려받았지만, 전적으로 재구성되는 맑스의 정식의 의미는 우선 “계급투쟁”을 역사개념과 정치개념의 교차로로 만드는, 『선언』에서의 거대한 등가성의 전진적인 구축에 의해 설명된다. 변화로서의 역사는 정치적 행동 안에서만 구체화되고, 본질적으로 정치의 행동의 집합적 “주체들”은 계급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를 두 개의 대적 진영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고, 자본주의가 그 절정으로 몰아가는, “적대들의 단순화”로 역사과정이 귀결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그 진영들이 서로 “동맹”을 맺고 무너뜨림으로써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복잡한 전략적 게임도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벌이는 봉건성과의 전투에서 부르주아지가 원병의 “무장”이라는 명목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역할을 부여한다는 주목할 만한 테마체계 전체인데, 이것이 동시에 산업혁명에 의한 피착취자들의 상태의 발본화가 그들의 “형성”(그들의 “의식”) 방향을 새로운 주인들에 대항하는 쪽으로 전환시킬 때까지 프롤레타리아들의 정치적 교육을 생산한다. 정치는 따라서 대립물 간의 게임으로, 곧 그 변화가 사회상태의 진화에 의해 설명되고, 그 일반적 경향이 생산력 발전에 의해 지시되는, 적대의 발현과 후퇴, 적들의 융합과 분리로 사고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맑스의 담론과 자유주의적 또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적 전통의 담론 간의 대립을 표시하는 또 다른 패러다임에 기입되어 있다. 자본가들 사이에서만큼이나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노동자 자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일반화에 준거하면서 『선언』은 “부르주아지는 영구전쟁 상태를 살아간다”고 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홉스적 의미에서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자연 상태”와 [맑스가 말하는] 경쟁 간의 유비이지만, 그 결과는 주권체의 설립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산업화를 장기적으로 다시 모순들이 돌발하고 마침내 그 존재를 위협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 사회의 조직화 및 평정의 과정[곧 주권체 설립의 과정]으로 간주할 가능성에 대해, 경쟁은 영속적으로 대립해 있다. 뿐만 아니라 경쟁은 임금노동자 계급을 원자화하는 데에 봉사한 후에, 자신들의 생존 자체가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계속되는 투쟁을 위하여 노동자들을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스스로 단결하고 조직화하도록 밀어붙인다. 맑스는 그 투쟁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의 방어의 용어들로 [자신의] 성공들과 실패들(이는 그만큼의 “역사적 전투들”이다)을 인식하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의 방어라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그 투쟁은 노동자들에게는 목표 자체가 된다고, 곧 착취의 사회적 관계들 자체의 변혁을 위해 결정적인 전투인 또 다른 전투를 예비하는 수단이 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러한 테마는 이미 『철학의 빈곤』에서 중심적이었는데, 이로부터 프롤레타리아들은 프루동과 바쿠닌을 따라 아나키즘적이고 생디칼리즘적인 전통들이 찬양하는 사회운동의 비정치주의apolitisme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르주아 혁명으로부터 유래하는 대의제적이고 통치적인 제도들 안에 기입되어 있는 부르주아 정치도 아닌, “정치에 반한 정치une politique contre la politique”를 발명한다는 관념이 유래한다.

따라서 이질적인 두 가지 정치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다른 하나의 이면이거나 또는 하나는 다른 하나의 특징들의 부정에 의해 정의되고, 그리하여 각각은 다른 것에 견주어 “비정치non politique” 또는 “반정치anti-politique”로 나타난다.{주7. 근대 국가권력을 “부르주아 계급의 공동 업무의 단순한 집행위원회”로 만드는 테마를 기억하자.}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직 계급투쟁의 변화들을 종말론적이고 심지어 메시아적인 시각을 포함하는 “거대 서사” 안에 기입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텍스트를 엄격하게 공부하고 단순히 종교적 서사의 세속화를 읽지 않는 것이 필요한데, 왜냐하면 맑스는 계급의 주체로-되기(이것은 『철학의 빈곤』이 헤겔의 용어법을 따라 “즉자계급”에서 “대자계급”으로의 이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를 개별 노동자들 간의 교통의 조건들에 대한 정확한 현상학이라는 견지에서 다시 사고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학은 이데올로기적 갈등들의 역사적 도표에 의해 마지막 장에서 배가될 것인데,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이 말할 것처럼 이 갈등들을 통해서 계급갈등은 “적대에 대한 의식을 얻”고, 『선언』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당”의 구성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주8. 내가 다른 곳에서 제안했던 것처럼, 이것은 “당조직” 또는 당 “장치”에 대립하는 “당의식”의 당이다. (발리바르, 「국가, 당, 이데올로기」, 『역사유물론의 전화』, 서관모 편역). }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역사적 조건들의 진화 자체가 사회를 위해 전부 아니면 전무인 상황, 또는 생사가 갈리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멸이냐 총체적 혁명이냐 하는 선택만을 갖게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계급구성원들이 동일한 주체적 통일성 안에서, 곧 루소가 인민에 대해 말했듯이 “집합적 자아” 안에서, 서로 일치하게 되는 순간은 또한 계급들의 소멸이 임박하고, 그렇게 해서 현재까지 그 용어가 꿈꿨던 역사의 종말이 임박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종말론적 시각을, 위에서 인용한 표현에 입각하여 도입하는 것이 나에게는 핵심적으로 보인다. 곧 “상쟁하는 계급들의 공멸”이라는 표현 말이다. 이 표현은 많은 면에서 “『선언』의 잃어버린 구절”을 이루는 것인데, 그 속에서 “역사는 나쁜 측면에 의해 발전한다”는 『철학의 빈곤』의 테제가 재발견된다. 이 수수께끼 같은 테제를, 궁핍화와 경제적 위기들이 프롤레타리아들의 육체적 실존을 압박하는 죽음의 위협을 1장 끝에서 맑스가 묘사하는 방식(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발전의 어떤 지점에 이르렀을 때 자신을 먹여 살리는 자들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되는 첫 번째 지배계급이라고 주장하면서)과 비교해보면, 맑스의 셰마는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곧, 계급투쟁 과정이 가능한 화해 없는 내전에 견줄 만한 것이라는 사실은 곧바로 역사를 사회가 파괴되는 절벽 끝에 가져다 놓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용어의 모든 의미에서 착취의 “최종” 형태를 표상하는 자본주의와 함께 이러한 [종말론적] 시각이 구체화된다. 그러나 이 순간은 또한 최초로 집합적 주체가 실존하는 순간이며, 사적 소유의 주장과는 발본적으로 이질적인 그 집합적 주체의 정치적 행동이 “민주적 전제despotisme démocratique”라는 필연적으로 이율배반적인 형태들 안에서 착취의 경제체계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체계로서, 또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권력체계로서의 지배의 폐지를 준비한다. 사회적 존재의 생존자체가 문제가 되는 극단적 지점에 도달하면, 폭력은 자신의 가능성의 조건들에 반해 되돌아온다. 적어도 폭력이 그렇게 한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맑스와 엥엘스가 문제의 언표 그 자체 속에 해결책을 기입하면서 현재에 — 묘사적이거나 예견적인 가치만큼이나 수행적 가치를 갖는, 시간 중단의 비시간적 현재에 — 여기서 쓰고 있는 것은 이러한 구원적 상상에 육체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경합적agonistique이거나 적대적일 뿐 아니라 정확히 묵시록적인, 내전을 통한 계급투쟁의 정치적 생성이라는 이러한 관념에 대해, 거의 동일한 용어들로 낯설게 정식화되어 있지만, 이러한 생성의 완전히 다른 표상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는 또 다른 관념을 나는 즉시 대립시키고 싶다. 그 관념은 자본 1권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인데, 여기서 나는 특히 “정상적 노동일을 위한 투쟁”에 대한 8장의 전개들에 준거하고 있다.{주9. 대규모 산업에 대한 뒤이은 절에서 담겨있는 여성들과 아동들의 노동에 반대한 투쟁, 기계주의로부터 유래하는 노동강화에 반대한 투쟁, 또 일반적이고 기술적인 교육을 위한 투쟁에 대해 대응하는 부분에서의 전개들을 대조해봐야 할 것이다. 내가 인용하는 『자본』은 르페브르J.P. Lefebvre의 지도 하에 나온 에디숑 소시알Editions Sociales 1983년 판본을 사용한다(réédition "Quadrige" PUF).} 우리가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정식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여기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에 의해 노동일을 10시간으로 제한하는 — 발리바르] 원칙은 근대 생산양식에 가장 특징적인 창조물을 이루는 산업의 거대한 분야들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겼다. [……] 반세기의 내전을 통해 노동일의 법적 제한과 규제를 점진적으로 제거해야 했던 제조업자들 자신이, 여전히 “자유로운” 착취가 행해지는 영역들에 스스로를 비교하며 우쭐해한다. [……] 공장 유력자들이 불가피한 것들에 종속되고, 그것을 받아들인 후에, 자본의 저항의 힘은 점차 약화되었고,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전투성은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사회의 기층에 자신의 동맹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커져갔다.” (자본 1권, 불어본 p. 330-331; 영어 펭귄 1976년 판 pp. 408-09)

 

좀 더 후에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생산의 몇몇 영역에서의 노동일의 규제의 역사 및 이 규제에 대해 다른 영역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투쟁은 다음과 같은 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한다. 곧 고립된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자로서의 노동자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성숙의 어떤 단계에 이르면 저항 없이 항복하고 만다는 것 말이다. 정상적 노동일의 확립은 따라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장기적이고 격렬한, 다소간 은폐된 내전의 결과이다. 이러한 적대감들이 우선 근대산업의 영역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러한 전쟁이 발생하는 것도 우선 근대산업의 나라인 영국에서이다…….” (불어본 pp. 334-335; 영어본 pp. 412-13)

사람들은 자본의 저자가 이러한 정식화를 우연히 채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눈치 챌 것이다. 사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묘사적이고 분석적인 정확한 맥락 속에 그것을 다시 위치시켜야 한다. 최종분석에서 그 맥락은 상이한 형태들 하에서의 “잉여가치”의 추출의 공리에 준거하며, 따라서 (개별적 또는 사회적) 자본에 의해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을 교환가능하고 축적 가능한 가치로 전환하는 공리에 준거한다. 그러나 더욱 직접적으로, 역사적 구조로부터 정치적 정세로 이행하면서 분석이 구체적이 되는 순간에 또한 조응하는 이러한 담론은 계급투쟁의 “요소들[배달부들]facteurs”의 어떤 배치, 적대와 적대가 포함하는 극단적 폭력의 정도에 대한 어떤 평가, 세력관계 및 따라서 정세 그 자체의 과정상의 역전을 드러내는 표지들에 대한 어떤 진단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장기화된 “내전”으로서의 계급투쟁에 의해 획득된 결과에 대한 성격묘사를 담고 있는데, 거기서 맑스는 사회적 통제라는 통념과 정치권력의 상대적 자율화라는 통념을 역설한다.

계급투쟁의 “요소들[배달부들]”과 관련해서, 맑스는 “적대들의 단순화”라는 통념을 명백히 역전시키거나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기본 계급들 간의 적대의 이원적 구조 안에 사회적이고 또 진정 정치적인 복잡성을 재기입하는, 훨씬 더 복잡한 형상화로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결론적 정식만을 보여준 묘사 전체를 읽어보면 동시에 진행하는 몇몇 과정들의 중첩 또는 과잉결정으로서 이러한 복잡성을 특징지을 수 있다. 이 과정들 중 하나가 한계 없어 보이는 노동의 연장과 강화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노동력의 착취뿐 아니라 초과착취를 향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경향 자체인데, 자본가 계급은 자유주의의 원칙들이라는 명목으로 이 경향의 담지자가 된다. 이러한 구조적 경향으로부터 하나의 적대가 나오고, 맑스는 곧 그것이 극단적 폭력의 세력관계들에 의해 조건지워진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극단적 폭력은 맑스가 “노예주들의 반란”에 비유하는 훼방운동과 조작시도를 수단으로 해서 전력을 다해 [노동일의] 입법시도들에 저항하는 소유자들 쪽에도 놓여있는 만큼, 노동자들 자신들의 육체적ㆍ지적 능력들(그리고 노동자들이 세대를 이어갈 능력)의 온전함을 손상하는, 노동자들이 인종하는 압박 쪽에도 놓여있다.{주10. 그 텍스트는 미국 시민전쟁[내전]과 동시대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그 전쟁에서 맑스는 인터내셔널의 이름으로 매우 단호한 방식으로 입장을 취했다.}

이것이 하나의 핵심적인 테제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그것은 “알튀세르적” 용어들로 말해서 계급의 실존 자체에 대한 계급투쟁의 우위, 따라서 계급의 통일성 자체에 대한 계급투쟁의 우위를 예상한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내전”의 변전들vicissitudes은 주어진 집단들 간의 대립의 국면으로 묘사될 수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집단들의 형성 자체를 쟁점으로 하는 역방향의 운동들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따라서 본질적으로 정치적 현상 또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사회학적 현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노동입법의 전진은 노동자계급의 통일과 상관적이고, 노동입법의 퇴각은 노동자계급의 분열과 상관적이다. 마찬가지의 일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해서도 거꾸로 일어난다. 이들 두 계급 중 어떤 것도 “즉자적으로en soi” 실존하지 않으며 그들의 경향적 형성은 정확히 적계급의 분해를 조건으로, 그리고 상관물로 갖는다. 이는 정치적 주체성 또는 주체화라는 통념이 여기서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주체성, 주체화라는 통념은 물질적 조건들 안에서 복구할 수 있는 존재론적 기초를 더 이상 갖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정세에 의존하는 적대적 과정들로 구성된다는 점이 확인된다는 뜻이다. 암묵적으로, 동일한 것이 이러한 주체성의 표현으로서의 “당parti”이라는 통념에도 적용된다. 이제부터 계급투쟁을 “결투duel”의 형태 또는 거울 대립으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해지며, 내전이라는 통념은 전적으로 특수한 의미작용을 획득한다. 내전은 계급투쟁의 화해불가능한 성격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원불가능한 성격을 지시하고,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만큼 사회 한복판에 있는 분할들을 그것이 전위시키는 방식을 지시한다. “내전”은 하나의 논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 속으로 필연적으로 “순수한” 또는 “절대적인” 주체들로서의 계급들과는 다른 요소들[배달부들]이 개입한다. 우선, 적대적 계급들의 이해 사이에서 일어나고, 또 계급들의 집단적 이해들과 그 계급들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이해들{주11. 이는 단지 부르주아적 자본가들에게만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가치가 없는데, 왜냐하면 경쟁과 초과착취의 조건들 속에서 생존수단들을 얻기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그들의 개인적 경향에 대항해서 그들을 집단적으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주침 및 마침내 만들어지는 평형의 지점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장치appareil로서의 국가가 개입한다. 이어서, “공장감독관들”이 개입하는데, 이들은 초과착취의 형태들과 그것들의 도덕적, 육체적, 사회적 결과들의 고발자들이자 노동입법의 준비자들이다. 자유주의적 또는 “속류적” 경제학자들이 부정적 주인공들이라면, 공장감독관들은 많은 측면에서 맑스가 『자본』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의 긍정적 주인공들이다. 맑스는 공장감독관들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묘사를 하는데, 그것은 공장감독관들을 착취의 기술자들의 기능과 노동자들의 고통의 대변인의 기능의 중간에 위치시키고, 따라서 정치적 갈등의 전략적 지점 또는 이단점에 위치시킨다.{주12. 이러한 묘사를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에 대한 분석 또는 푸코의 “전문적 지식인”에 대한 분석과 비교하는 것이 핵심적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보충적 요소를 개입하게 만드는 데로 이끌어 가는데, 주요한 계급관계에 추가되고, 세력관계의 전도를 설명하는 데에서 근본적 역할을 행하는 보충적 사회 집단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구성되는 여론 또는 이른바 “시민사회”가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맑스가 계급투쟁의 이러한 형태에 부여한 결과를 특징짓는 일로 돌아올 수 있다. 계급투쟁은 역사적 기능에서 그리고 정치적 메커니즘에서 보완적인 두 가지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 역사적 기능 쪽에서 보자면, 맑스는 예외적 체계로부터 (“정상적 노동일”이라는 이름 자체에 기입된) 정상성 또는 정상화[규범화, normalisation]의 형태로의 이행을 주장함으로써, 착취에 대한 사회적 통제 및 착취의 극단적 폭력의 감축의 형태들의 출현에 대해 말하는데, 이것은 [나중에] 푸코가 명시적으로 공장의 규율 및 기계화에 의해 발생하는 노동강화에 대한 저항들에 근거한 상관적 분석을 통해 회상하게 될 분석이다. 더 뒤에서(불어본 p. 540sq) 『자본』은 의외의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설정 한복판에 유기체론적 또는 전체론적holistique 차원을 삽입하면서, 아동노동의 제한과 개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향에 대한 “사회유기체organisme social의 최초의 양심적 반응”이 되는 의무적 초등교육의 부과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사회적 통제의 내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적 법칙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정치적 메커니즘에 완전히 의존하는데, 비록 그 효과들이 어떤 입법이라는 제도적 형태를 취해야 하지만, 사회적 통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세력관계의 용어들 속에서 사고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맥락] 사이를 움직이면서, 그리고 말들 안에 기입되어 있는 가능성들을 이용하여 의미작용을 변화시키면서, 사람들은 여기서 맑스의 글로 여러 차례 되돌아오는 이러한 매력적인 특징을 새로이 보여주는 맑스의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정식을 개입시킬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표현이다. “똑같은 두 권리 사이에서는 힘[force, Gewalt]이 해결한다.”{주13. “자본가는 노동일을 가능한 한 길게 만들고 노동일 이틀을 하루로 만들려고 애쓰면서 자신의 구매자로서의 권리를 원용한다. 다른 한편, 판매된 상품의 특별한 본성은 구매자에 의한 그것의 소비의 제한을 암시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판매자로서의 권리를 원용하면서 노동일을 규정된 정상적 길이로 제한하고자 한다. 여기에 하나의 이율배반, 권리에 대항한 권리의 이율배반이 있는데, 이들 권리 각각은 상품 교환 법의 도장을 받은 자국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두 권리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생산의 역사 안에서 노동일의 규제가 노동일의 제한들을 위한 투쟁으로서 제시되는 것은 이렇게 해서이다. 일반자본가, 곧 자본가 계급과 일반 노동자 또는 노동자 계급을 대립시키는 투쟁.” (éd. citée, p. 261-262).} 독어의 게발트라는 말은 불어나 스페인어에 의해 구별되는 두 가지 의미작용, 곧 “권력”과 “폭력”의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을 사람들은 기억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그 둘의 변증법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맑스는 이미 1848년 혁명의 분석에서 이러한 정식을 이용하여 혁명적 상황에서 그 관념을 정초한 바 있는데, 이는 투쟁이 발본화되고 투쟁이 “부르주아지 독재”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냐의 양자택일과 같은 극단들로 고양되는 때이고, 따라서 예외상태(이것을 맑스는 1851년에 “영구혁명”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주14.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들』이라는 제목 하에 모은 일련의 글들 안에서.}가 정치의 법칙이 되는 때이자, 권력의 제도적 형태가 세력관계에게 또는 억압적 무장력과 대중적 봉기 간의 대결 속에 구현되는 벌거벗은 폭력의 관계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사라지는 때이다. [그러나] 여기서는[『자본』에서는] 폭력의 제도로의 전환에 대한 주장이 법률주의légalisme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동일한 용어들로 거의 반대되는 관념을 갖게 된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법적ㆍ정치적 원칙들이 아니라 세력관계들이며, 이로부터 내전이라는 표현이 유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관계는 제도적 틀 안에서 행사되고, 필요에 따라서는 제도적 틀을 변혁한다. 결론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내전을 하나의 민주화 운동으로서 성격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피착취 대중들을 위해 근본적인 몇몇 권리들을 인정하도록 강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다시, 내전을 “갈등적 민주주의”의 출현으로 성격지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회와 정치로부터 배제된 자들에게는 법적 수단들을 활용함으로써 권력의 게임 안에 포함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화는 형식적 헌정constitution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네그리가 코스탄티노 모르타티Costantino Mortati를 따라 “물질적 헌정”이라고 부르는 것에 속하며, 이것은 규범적 논리가 아니라 사회세력들의 균형을 구체화한다.{주15. 안토니오 네그리, 『제헌권력 Le pouvoir constituant, Essai sur les alternatives de la modernité』, tr. fr. PUF, 1997; C. Mortati : La costituzione in senso materiale, 1940 (rééd. Milano, Giuffrè editore, 1998).} 진실로 이러한 관념은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특히 몽테스키외의 “권력만이 권력을 멈출 수 있다”는 유명한 테제로부터 유래하는데, 이 테제는 폭력 쪽으로 기울 수도 있지만, 제도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주16. [역주 — 다시 말해서, 폭력Gewalt을 멈추기 위해서는 권력Gewalt이 필요하고, 제도권력Gewalt를 멈추기 위해서는 폭력Gewalt이 필요하다는 두 가지 뜻을 모두 갖는다는 말이다.] }

하지만 우리가 계급투쟁으로서의 정치라는 개념이 맑스의 묘사에서 어떤 것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하려고 하면, 고전적인 또 다른 준거가 여기서 필요해진다. 『로마사 논고 — 티투스-리비의 첫 10년에 대한 논고』에서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준거가 그것이다. 1권 4장에서 출발하는 유명한 전개 안에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도시들 내에서의 “큰 사람들[거인들]”(곧 도시의 소유자들과 지주들)과 “작은 사람들[난장이들]”(장인들, 또 임금노동자들)의 갈등을 고대 로마에서의 사회적 갈등이 취했던 형태들과 비교하고, 어떤 조건들에서 적대가 여기서 도시의 자기-파괴가 아니라 도시의 제도들의 공고화 및 도시의 역능puissance(특히 그것의 외적 역능)의 증대를 불러올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알다시피 그는 각 진영의 이해 또는 “기질”의 비대칭성에 대해 역설하는데, 이 비대칭성 때문에 작은 사람들은 억압적 권력을 구축하려는 목표를 갖지 않고 오직 억압적 권력을 제한하거나 또는 큰 사람들에 의해 “억압받지 않으려는” 목표, 곧 자유의 공간을 해방시키려는 목표만을 갖는다.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혼합정체”라는 고전적 통념을 적법성의 몇몇 원칙들을 결합하는 헌정 체제régime로서가 아니라, 세력관계에 기초하고, 따라서 안정적일 때조차 항상 이러한 세력관계의 영속화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발적인 것으로 남게 되는 하나의 상태, 또는 정치적 일들choses politiques의 상태로서 독창적으로 재정식화하게 된다. 그가 보기에, “평민의 호민관”이라는 역설적 제도의 중요성은 정확히 그것이 제도적 형태 안에서 세력관계를 구체화한다는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바로 권력들의 위계의 한복판에 있는 하나의 예외로서, 고위권력의 한복판에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대의[대표]représente하는 모순적 형태로서 말이다. 맑스의 분석들의 의미를 이러한 용어들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노동입법 및 무엇보다도 그것을 강제하도록 이끌었던 과정에 대한 맑스의 분석과 함께, 맑스가 마키아벨리적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의 “혼합정체”의 이론과 같은 것을 구성했다고, 그리고 계급투쟁이 자본주의에 부여하게 되는 “물질적 헌정constitution matérielle”의 이론과 같은 것을 구성했다고 시사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이러한 제안에 대해, 사람들은 분명히 다양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이의는, 내전의 고전적 표상은 본질적으로 국가적 주권체의 출현이나 강화로 이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마키아벨리적] 관점은 계급투쟁이 결국 — 절대적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어떤 장소 또는 어떤 상황에서 — 노동자들의 저항을 사회적 갈등들에 대한 국가적 규제로 통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관념과 전혀 양립불가능하지 않은데, 그러한 국가적 규제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질 수도 있지만, 초과착취의 몇몇 형태들을 기각하는 것을 대가로 정확히 지배의 행사의 “정상적” 조건들을 마련해 줌으로써 최종분석에서는 자본주의적 지배에 봉사하는 쪽으로 기능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맑스가 제안하는 교훈이 아니다. 병합이나 통합을 말할 수 있으려면 사회적 갈등이 적대의 중립화 과정으로, 따라서 슈미트가 나중에 이야기할 것처럼 정치의 중립화 과정으로 기능해야할 것이다. 옳든 그르든 간에, 맑스는 정확히 그 반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규제의 진전은 그것이 영속적으로 강제되어야만 하는 만큼, 그리고 항상 다시 만들어지고 다시 쟁취되어야 할 불안정한 것으로 남는 만큼(항상 민주주의를 우리가 다시 쟁취해야 하듯이) 계급투쟁의 영속화로 나아간다는 것이 그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맑스는 더욱 마키아벨리에 가까운데, 왜냐하면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의미, 보댕과 홉스적 의미에서의, 주권체의 헌정[구성]을 묘사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투쟁의 너머에 우뚝 세워지는 국가를 묘사했다기보다는 투쟁들의 형태를 변화시키거나 그 적용점을 전위시키는 권력을 묘사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바로 맑스에게서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이며, 한 번 더 계급투쟁과 내전의 유비에 주목할 만한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계급투쟁은 전쟁의 문명화의 한 사례가 되며, 이를 통해 화해 불가능한 적대 안에 그 기초가 있는 사회의 문명화의 한 사례가 된다. 계급투쟁은 가능한 몇몇 방향들 사이에서 “보류된 것suspendue”으로, 자기파괴를 향해 있거나 또는 사회적 통제를 향해 있다.

 

*

동일한 용어법의 내부에서 정치의 그만큼 상이한 관념들을 지시하고, 따라서 내가 말했던 것처럼, 맑스주의의 한복판에 있는 정치라는 통념의 발본적 다의성을 드러내는 이론적 방향들을 가지고 실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결론적으로 자문해보는 일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주 간략히 이를 해볼까 한다.

첫째,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이로부터 맑스 자신에게 무슨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물어야 한다. 외양상 맑스는 이 딜레마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인식했다. 그것은 『자본』 1권의 끝에서 그가 계급투쟁의 혁명적 해결방법에 대한 선언의 정식화들을 반복하고, 그것들을 “수탈자들의 수탈”이라는 용어로 번역하며, 성서적 전통의 메시아적 특성을 반복할 때 암시된다. 이러한 “해결책”은 특히 다음과 같은 관념에 기초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목하다시피 순수하게 민족적인 틀 안에 기입되어 있는 노동입법의 분석에서 상기된 “내전”의 형태들은 산업혁명 역사의 어떤 특정 순간 및 특정 장소에 관련되어 있다는 관념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내전”의 형태들은{주17. 이 형태들은 따라서 모종의 방식으로 우리와 좀 더 가까운 “민족적-사회적” 국가[이른바 “복지국가”]가 될 것에 대해 예상한다. (cf. 발리바르, 『입국거주권 Droit de cité. Culture et politique en démocratie』, Editions de l'Aube 1998 (réédition augmentée, PUF collection "Quadrige").} 착취의 국제적 확장에 의해 추월당할 운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착취의 국제적 확장 속에서는 『선언』이 묘사했던 양극화가 재발견될 것이고 계급적 내전이 불가피하게 목숨을 건 투쟁의 형태를 취할 것이다. 정확히 후일의 이러한 축적의 발전들이 투쟁과 집단적 저항의 가능성들의 더욱 발본적인 중화로, 노동조건들과 노동력 재생산의 조건들로부터 개인적이자 집단적인 주체성과 의식의 형태들에까지 이르는 자본주의적 통제의 확장 — 이것이 맑스가 “『자본』의 출판되지 않은 장” 속에서 인식했지만 논리적ㆍ정치적 이유로 제외한 또 다른 가능성이다 — 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가 [맑스에게] 역사적 니힐리즘의 또 다른 형태를 대표하는 이러한 가설을 더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나이브할 것이다. 비록 정세적 한계들 또는 그 가설이 그 안에서 저항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특수한 조건들이라는 질문이 새롭게 제기되겠지만 말이다.

현실적으로 맑스는 진정으로 이러한 딜레마를 대면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당시의 역사가 『선언』과 『자본』에 의해 제안된 그 두 가지 “모델”을 동시에 무효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극적인 상황들로, 특히 파리 코뮌이 그 모델인 실제의 내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계급투쟁을 내전으로 인식함으로써 계급투쟁을 발본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군사화한 사회적 갈등의 한복판에 계급의 요소 또는 계급적 관점을 도입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아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라면 — 그리고 자율화된 국가장치를 파괴할 것을 즉시 계획하는 “노동자 계급의 정부”로서 코뮌의 민주적 구조들의 모범적 가치에 관련된 정식화들의 본래적 중요성이 무엇이든 간에 — 조직된 노동자들의 운동 전략이 그 속에 갇혀있거나 정치를 그 속에 가두는 경향을 갖게 되는 정치의 전통적인 딜레마들로부터 탈출하는 일에 최후 시기의 맑스가 진정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놀랄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또한 — 새로운 일련의 독해들이나 되풀이들이 가져다줄 정정 및 풍부화는 일단 보류하고 — 다음과 같은 이중적 가설을 시사할 수도 있다. 한편, 계급투쟁과 내전이라는 테마들의 결합은 본질적으로 맑스가 그의 정치 개념(나는 그의 잠재적 개념이라고 말할 것이다)에, 정치의 이면이나 또 다른 무대인 비정치적impolitique 차원을 영속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드는 데에 봉사했다. 단지 제도적 무대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과정 전체로서 뿐만 아니라, 극단적 폭력의 고삐를 풀어놓기 위해서든 그것을 통제하고 또 “문명화”하기 위해서든 간에, 극단적 폭력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는 과정으로서의 비정치적 차원을 말이다. 다른 한편, 이러한 이질적인 문제설정들 또는 담론적 연쇄들은, 부분적으로 동음이의어들이지만, 본질적으로 “계급투쟁”을 정치의 고전적 딜레마와 관련하여 세 번째 항 또는 보충대체의 위치에 가져다 놓는 효과를 갖는다. 그 딜레마가 평화와 전쟁의 그것이든 질서와 무질서의 그것이든, 제도와 봉기의 그것이든 간에 말이다. 이는 단지 “계급투쟁”이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것이라는 말일 뿐 아니라 또한 “계급투쟁”이 역사 안에서 예견 불가능한 형태로 틀림없이 돌발한다는 말이다. “계급투쟁”이 원칙적으로 그것의 형식적 대의들을 초과하는 정치의 물질성의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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